-
강남만 있고, 성모가 없는 ‘강남성모병원’51호/뫼비우스의 띠 2010. 2. 18. 19:51
미모사 사회학전공 07
9월 30일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앞에 작은 촛불 몇 개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조금씩 모여드는 촛불 하나, 둘…….
성심교정에서 한창 진행 중이던 150주년 기념관에서 벌어진 임금탈취와 부당해고가 일어나났었다. 이러한 일이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공사장과 나의 기억 속에서도 잠잠해질 무렵.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인 즉슨 성신교정에 있는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계약해지로 인해 투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급하게 역곡에서 기나긴 전철을 타고 강남땅을 밞았다. 지하철 출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빽빽한 고층건물을 지나니 하얀색의 병원이 나왔다. 한참을 찾아 정문에 도착한 나는 시끄럽게 투쟁가가 울리고 많은 선전 깃발이 있을 줄 알았지만 조합원 약 여섯 분이 조그맣게 촛불을 켜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뒷자리로 가고 싶었지만 인원이 많지 않아 눈에 띄었다. 촛불을 밝히고 계신 조합원분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가톨릭대 성심교정에서 재학 중인 ㅇㅇㅇ 입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깜짝 놀라신다. 같은 학교에서 학생이 찾아왔다고,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강남 성모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던 분들인데 2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9월 30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2006년 직접고용 비정규직에서 2006년 10월 파견직으로 전환 된 후 정확히 2년 만에 발표된 해고 통보였다. 병원은 노동자들을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하는 의무를 피하기 위해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파견법과 비정규직 법을 만들고 실행한 국회와 정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해고한 성모병원은 28명의 노동자들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녀들과 함께하는 투쟁
'아뿔싸. 나의 고난 길도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가톨릭대 병원의 노동탄압의 유명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었다. 2002년 같은 곳에서 농성중이였던 노동자들을 용역깡패 고용해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경찰력을 투입해 진압하고 심지어 성당에 피신한 노동자들을 연행해 가버린 일도 있었던 가톨릭대 병원이었다.. ‘힘없는 자 나에게 오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공허하게 느껴졌을 그 날들……. 조합원분들 역시 이러한 유명세를 잘 알고 계셨고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이 투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하셨지만 모두들 흐트러짐 없이 승리를 확신하시며 희망차게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내가 처음 간 날인 2008년 9월 17일 새벽에 천막농성을 시작하자마자 병원은 사설용역업체 직원인 일명 '용역깡패'를 고용해 폭력을 동원하여 이미 농성장을 강제 철거했다. 그 후 연이어 18, 22일 이 같은 사태는 다시 재현되었다.
해고한 지 얼마 안되어 병원에는 A수술실에 들어 갈 환자가 B수술실에 들어가는가 하며,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급하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치료가 급한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녀들이 담당하고 있는 간호보조업무는 환자의 진료와 치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보조하는 것인데 업무상 직접 환자를 대면하기도 하며 간호보조업무의 안정성과 숙련도는 환자의 진료, 치료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병원은 '이윤'에 눈이 멀어 이러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그/녀들을 2년 전에 파견직으로 전환했고, 2년 후인 지금에 와서 그/녀들을 해고한 것이다. 강남성모병원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으리으리한 새 건물과 생명을 존중한다는 병원 소개이다. 하지만 ‘성모’ 병원은 ‘생명 존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너무나도 파렴치하고 악질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끊임없는 위기, 그리고 보호법이 아닌 보호법
계속되는 폭력사태에 조합원들은 병원로비 안에서 농성을 계속하시며 서명운동과 피켓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아픈 분들이 쉬는 공간이기 때문에 구호 등은 자제하며 농성을 진행하였고 더 이상 강남성모병원이 '성모'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많은 환자분들과 가족 분들이 하루에 몇 백 명이 넘게 정당한 그/녀들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셨다. 하지만 얼마 못가 또 우리는 질질 끌려 나와야했다. 아침 9시 외래진료가 시작되기 전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보조원, 간호사, 사무처장, 인사관리과 사람들, 그리고 수녀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팔,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우리들을 무참히 밖으로 내보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저것들 빨리 갖다 치워버려!" 라는 어느 수녀님의 고함소리…… 그 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그 고함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이다.
며칠이 흐르고 강남성모병원은 조합원들에게 ‘점유 및 사용방해 금지가처분’을 제기하였다. 이제는 병원에 부당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일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천막을 철거하고, 집회, 문화제, 선전전 등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병원 측이 직접 작성한 가처분신청서 증거자료 중 ‘파견직 천막농성관련 상황’이라는 문서는 병원의 악질적 만행을 또다시 증명하였다. 비정규노동자들의 농성에 대해 병원 측과 파견업체가 상황 대책회의를 꾸리고 언제, 어떻게 침탈을 계획하고 실행 했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소상히 기록한 것이다. 연대하러 온 단체와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감시사찰하고 심지어 병원 밖에서 진행된 행사에 누가 오고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며 정규직에게 비정규직 투쟁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명백히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지배·개입’ 행위에 해당한다. 결국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병원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병원 측은 그동안 행해온, 파렴치한 불법·범죄행위들을 낱낱이 자백한 것이다.
교황청은 1890년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장려하였다. 이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성을 가톨릭 교리 또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도 조합원들은 보호 받을 수 없었다. 왜 가톨릭대 병원은 노동조합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것 인가? 이름은 '비정규직보호법' 이지만 직접고용의 의무를 회피하는 병원의 탈법적인 행위에는 아무런 제재가 되지 않는 법이었다. 또한 법원은 조합원들의 업무가 파견법상 금지되는 업종에 해당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파견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들이 강남성모병원에 대하여 직접고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이 이에 응하여 파견노동자들과 실제로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병원에 대하여 과태료의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 파견노동자들이 곧바로 병원의 근로자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해 2007년 개정 파견법에 의해 ‘직접고용 간주’에서 ‘직접고용 의무’로 약화된 규정이, 실제로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결정은 결국 파견법이 불법파견을 규제할 수도 없고 파견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도 없다는 해묵은 진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사용자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고, 노동자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조차도 ‘법에 의해’ 금지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다시금 명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되었다. 병원은 정규직지부와의 교섭을 앞두고 비정규직의 투쟁에 정규직지부가 함께 한다면 교섭을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이런 병원의 행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가로막고 이간질을 시키기 위한 것으로 비정규직을 고립시키기 위한 대부분의 고용자들의 악질적인 수법이었다. 가톨릭재단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정규직으로부터 외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분들은 자신을, 서로를 의지하며 꿋꿋하게 버텨나갔다. 현재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의 투쟁은 병원이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고 좋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 하에 3개월의 평화기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조합원분들은 다른 비정규직, 용산참사 사건현장에 연대하며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4월 말이면 약속했던 3월의 시간이 끝나지만 병원은 약속과 달리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선의 해결책, 바로 그 곳에 너와 나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투쟁은 벌써 200일을 훌쩍 넘기며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처럼 장기적인 투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학생, 지역시민, 시민단체 등에서 많은 관심과 연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 시점이다. 그리고 아마 그 시간들이 더욱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가톨릭대 150주년 기념관에서처럼 이 투쟁이 학생들의 기억 속으로 잊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과 불합리한 학교 행정, 학생 자치권에 대한 개입을 해왔던 가톨릭대학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손쉽게 해고하는 가톨릭대학교를 보아왔다. 정녕 가톨릭정신은 어디 간 것인가? 진리, 사랑, 봉사의 이념이, 故 김수환 추기경이 실천한 낮은 자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강남성모병원의 이윤추구를 위한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되길 원치 않는다.
요즘 학생들은 신자유주의 체제, 그리고 몰아닥친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무한경쟁에 내몰렸다. 때문에 학생들에게 요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연대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를 준다는 뜻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속담이 이야기 하듯이 때에 맞지 않는 제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신여대의 학생들이 부당하게 해고된 청소용역노동자분들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14일의 고된 싸움 끝에 승리하였던 것처럼 대학생들의 연대는 비정규직 싸움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학생들의 움직임이야 말로 사회에 나가 좋은 노동조건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예비노동자로서의 진정한 자기준비가 아닐까 한다.
*이후의 과정은 참세상,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8명, 무기계약 복직' 기사를 참조
'51호 > 뫼비우스의 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 경제위기, 신자유주의의 위기인가? (0) 2010.02.18 선거와 민주주의 ― 선거는 우리를 주인으로 만드는가 (0) 2010.02.18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까요? (0) 201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