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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방황으로의 방향은 없다51호/가대人 2010. 2. 18. 19:31
박은영 국제학부 06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봄이다. 졸린 눈과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침기온의 쌀쌀함과 지각과의 사투 속에 많은 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학교 정문을 통과한다.
오전 수업이 끝난 나른한 오후, ‘따사로운 햇살 속에 무기력한 나를 발견할 때면 가끔씩 자기파괴 욕구가 솟구치곤 한다.’ 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까 아니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까.
비정상국가인 북한에 대해 논문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정신이 무엇이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려드는 것 같다. 자꾸 중압감에 시달리는 내 자신은 이미 비정상 카테고리에 속했다.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방황 사이, 나에게로의 전환점은 갑작스레 다가온 영광의 만찬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존경하는 교수님을 통해 가톨릭대에서 특강을 마치신 국방부 전 정책기획국장 이셨던 박사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자리에 감히 내가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나와 함께한 친구도 얼굴의 기쁨을 감추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내 논문의 지긋한 골칫거리인 북한에 대해서 여쭈어보기 위해 떨리는 입을 열었다. 박사님께서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중 한가지로, 다른 나라들의 역사적 검증을 토대로 북한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셨다. 러시아의 스탈린에서 민주주의의 고르바쵸프까지 또 중국의 모택동에서 개혁, 개방정책의 등소평까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박정희 독재체제에서 전두환, 보통사람들의 사회 노태우 그리고 그 이후까지의 변화와 특성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즉 박사님의 핵심은 절대적 독재체제에서부터 평화적선거와 개방,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가 바로 역사적 진화체계이며 그것이 역사의 지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도 그러한 단계를 밟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검증에서 도출된 결론이었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화제가 되자 박사님과 교수님은 그것에 대해 두 분의 견해를 공유하셨다. 그 순간, 철학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경청만 해야 했던 나는, 배움에 소홀함에 대한 후회와 자극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역사와 철학을 알면 세상을 알 수 있다는 박사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여태까지 세상을 얼마나 알려고 노력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굴복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의 결실인 그분들의 박학다식함과 지혜 그리고 계속되는 도전정신은, 정말이지 젊은이들이 이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 열정과 살아온 삶의 자세를 똑 닮아버리리라 다짐했다.
더 이상 내가 잉여인간이라 느끼지 않도록, 이 세상에 직립해야한다는 현실이 서글프지 않도록 말이다.
박사님은 마지막으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남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것” 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보시며 “저 친구들이 아직 어려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이러한 값진 만찬이 이루어진 곳은, 학교와 멀지않은 숲속에 자리 잡은 어느 식당이었다.
봄날의 붉게 익어버린 단풍이 살랑거리는 정자에서,
푸근한 고양이가 파를 다듬는 아주머니 옆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광경에 미소 지으며,
돌아가는 길에 연못깊이가 문득 궁금해 돌을 던져보고,
만찬 후, 나는 그렇게 머뭇머뭇 거리며 아쉬운 발길을 되돌렸다.
식당에서 약 150미터 가량을 지나 다시 학교 앞 현실 세계로 돌아와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 하나하나 나의 선택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내 자신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남아있고, 그것을 치유한다는 미명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상처를 내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나도 후에 시간이 흘러 지긋한 나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볼 때 누군가에게 상처받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후회 없이 도전하는 인생을 살았으며, 누군가에게 행여 실수로나마 상처준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았음을 느끼는 인생이었다면 참 좋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리는 방황의 시대에서 극복의 방법은 사랑과 배움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늘 가장 크게 느낀 바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역사적 검증을 통해서 나아가라. 우리도 자신의 역사를 검증해보라.
그러면 내 자신이 나아갈 ‘방황’이 아니라 ‘방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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