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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버이날 전날밤51호/가대人 2010. 2. 18. 19:29
한혜진 회계학전공
잠드신 엄마아빠를 확인하고 나서야(피곤하셔서 10시면 주무시는 부모님) 미리사둔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편지를 가지런히 식탁에 두고 왔다. 혹시나 중간에 물이라도 드시러 나왔다가 내 편지를 미리 발견하시면 어쩌나 하는 기분 좋은 노파심으로 잠을 청했다. 새삼 어버이날 이라며 생색내는 내 모습에 조금은 멋쩍어지기도 했다.
내일 집에 들어오는 길엔 케익과 참외를 사와야겠다. 빵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아빠와 참외하나면 삼복더위도 거뜬하다는 소박한 엄마를 위해. 문득 엄마아빠가 좋아하시는 이 흔하디흔한 음식이 빨리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민망함을 어찌 추스렸을까 생각하니 잠시 아찔해졌다. 하마터면 23년이 허무해질 뻔 했으니 말이다.
나보다 먼저 출근하시는 아빠엄마가 편지를 읽으실 쯤 난 자고 있겠지만 왠지 모를 쑥쓰러움에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뒤척일 것 같다.
#2.새벽
이 시간까지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울어 물리적으로 부어버린 감기지 않는 눈 때문인지, 아니면 한없이 짓누르는 압박감에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는 무디지 못한 나의 마음 때문인지 알 수 가 없다. 이 또한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뒤틀려 버린 건지 근원조차 알 수 없는 사치스러운 감정놀음 때문인건지...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는 지금 이 신새벽이 왠지 굉장한 능력을 감추고 있는 시간 같이 느껴진다. 이대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좀 더 버티면 , 잠 많은 네가 용케도 잘 버틴다며 누군가가 금일봉과 같은 답을 줄 것만 같아서 잠들 수 가 없다.
곧 해가 뜨면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 들이 다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두려움에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붙잡아두고 곱씹고 싶다.
날이 밝아버리면 곧 햇살의 달콤함에 취해 오늘 새벽 나의 치열함과 방황을 그대로 방치해 두겠지. 그리나 나의 안일함에 공격해오는 야속함과 실망감이 다시 한번 날 새벽에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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