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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의 2박 3일 체류기51호/가대人 2010. 2. 18. 19:29
장혁 국사학전공 08
2009.02.01 15:30 기내 안
40분 전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로 처음 가보는 배낭여행이다. 그렇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1달 동안 여행준비를 했으나 준비를 할수록 초조함만 더해갔다. 그래도 친구가 이것저것 많이 알아본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게 여행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여행을 갈지 모르기에 갈 수 있을 때 가려 했다. 그 생각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또한 이 친구라면 여행파트너로도 괜찮으리라 여겼기에 더욱 여행을 가고자 했다.
처음 하는 배낭여행이라고 어머니와 형이 많은 도움을 줬다. 집에 가는 길에 성의표시로 기념품이나 몇 개 사가야 할 듯싶다.
2009.02.01 15:45
비행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타고 나니 그렇지만도 않다. 승무원이 주는 간식을 먹으면서 여행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친구가 가져온 책을 읽으려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상당히 많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추려내기가 힘들다. 한국에서 준비를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처음 보는 내용들처럼 보인다. 여행루트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마침 나오는 기내방송, 식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메뉴는 비빔밥과 치킨 두 가지였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비빔밥도 궁금했지만 좀 전에 공항에서 먹었기에 다른 것을 먹기로 했다.
2009.02.01 16:50
예상했던 것보다 기내식은 맛이 괜찮았다.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학식에서 이런 음식을 판다면 가좋사에 항의성 글들이 잔뜩 올라올 듯싶다. 기내식을 먹고 난 뒤에 제공된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그리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옆에 앉은 친구는 다음에는 다시는 커피를 먹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커피가 아닌 홍차를 마시리라 다짐했다.
기내식에 대한 욕(!)을 하다가 문득 밖을 내려다보니 사막이 있었다. 기내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현재 이 비행기가 중국 북경을 지나서 몽골 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밖의 경치는…커피 맛보단 낫다. 이제 다시 여행준비를 시작해야겠다.
2009.02.01 17:45
점심을 먹은 지도 어느덧 1시간이나 지났다. 비행기는 현재 몽골 상공을 날고 있다고 모니터에 표시되어있다. 혹시나 해서 신문을 읽었는데 딱히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없었다.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숙면을 취하고 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수영이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탄지 얼마나 됐다고 다들 피곤한걸까…. 나만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2009.02.01 20:00
기내식을 먹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구하다 낮잠 [사실 낮인지 밤인지도 잘 모르겠다.] 을 잔 뒤 일어나보니 저녁 7시였다. 친구가 읽다 만 책을 펼쳐들어 읽어봤는데 역시나 필요한 정보를 추려내기가 쉽지 않다.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현지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찾기란 어려울 듯싶다. 20시 현재[한국시각] 비행기는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다.
2009.02.01 21:20
1시간 동안 여행책자를 보면 볼수록 머리가 아프다. 이래서야 현지에서 쇼핑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2009.02.01 23:35
약 2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했다. 상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든다.
천장에 붙어있는 모니터에선 계속 영상물을 틀어준다. 하지만 제목도 모르는 영화와 드라마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차라리 집에서 보다 만 꽃보다 남자 재방송을 틀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문득 배가 고프다. 좀 전에 저녁을 먹었으니 다시 밥을 줄 것 같지는 않은데…. 간식은 뭐 없나…?
친구가 노트에 뭔가를 적다가 자고 있었다. 내용을 살짝 들여다보니 내가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글을 쓰고 있었다. 괜히 그 친구에게서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느껴진다. 나도 그 친구를 따라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여행을 가려 한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를 잡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이 아니면 이 친구와 같이 갈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년 동안 대학생으로 지내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동안 있었던 일들로부터 잠시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또한 그 일들에 대한 고민들도 보다 냉정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 동안 누적되었던 나의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며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비행기에 탑승한지 어느덧 9시간째다. 비행기 안에서도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몇 시간 전만해도 밖은 어두워서 해가 지는 듯 했는데 지금은 아까보다 오히려 더 밝다. 시간대를 넘어가서 그럴 것이라 추측해본다.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바깥의 변화처럼, 좋지 않은 기억으로만 가득한 나의 마지막 10대도 점차 밝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그 계기가 되길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란다.
2009.02.02 01:00
조금 전에 간단하게 식사를 끝냈다. 점심 무렵에 먹은 치킨보다는 맛이 나았다. 그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식으로 홍차를 마셨는데 커피보단 맛이 나았다. 그렇다고해서 홍차가 맛있다는 뜻은 아니다. 중간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비행도 거의 다 끝나가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2009.02.01 19:10 [현지시각]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하기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봤다. 여행이 끝나고 이곳에 다시 올 때 기념품들을 사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곳은 면세점이 아니라서 그런지 가격이 비쌌다. 그 중에서 그나마 괜찮다 싶은 것 몇 개만 사기로 했다.
2009.02.01 19:50
검색대에 있는 직원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10분을 더 기다렸다. 조금 전에 검색을 끝냈는데 그래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 시간에 탑승 및 출발은 하겠지…? 왜 자꾸 지연되는 건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불길했던 예감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2009.02.02 02:20 영국에 있는 숙소 안[에서 일기를 썼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자 탑승이 시작됐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예정된 시간에 비행기가 이륙을 하지 않았다. 괜히 생기는 불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옆에 앉아있던 한국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니 괜히 반가웠다. 출발 지연으로 인해 기분이 안 좋았던 나는 그분과 대화를 하며 불길한 마음을 달랬다.
승무원이 나눠준 입국 수속서를 써야 하는데 죄다 영어라서 순간 멍했다. 물론 여기서 한국어를 바라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분과 수영이가 잘 알려줘서 무난하게 입국 수속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가는 이 비행기는 단거리 노선이라서 그런지 비행기도 작고 기내식도 거의 없었다.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런던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게이트를 구하지 못해 활주로만 맴돌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기내 안에서 기다리고 나서야 간신히 공항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 때 시간이 21:30분이 넘어서였을 것이다. [도착 예정 시간은 20:50분이었으니 약 40분을 기다린 꼴이었다.] 게다가 입국 심사와 짐을 찾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공항을 빠져나오니 어느덧 오후 10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입국 심사를 할 때 공항 직원은 다른 사람들은 잘 통과시켰는데 나한테만 유독 까다롭게 굴었다.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직원은 다른 사람들의 여권에 비해 내 여권이 얇은 이유를 물었다. ‘이거는 단수 여권이라서 1회용입니다.’라고 말해야 되는데 순간 떠오르지 않아서 ‘군대에 가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당황한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뭐라고 말하려 하자 직원은 귀찮다는 듯이 날 통과시켜 줬다. 이건 뭐… 입국심사를 통과하면서도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우리와 그분은 목적지가 비슷하여 잠시 동행을 하게 되었다. 공항과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1번 타는데 4파운드, 한화로 8천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새삼 한국의 물가가 싸다는 것을 느꼈다. 150년 된 런던의 지하철은 매우 좁았다. 한국에서 마을버스를 타도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해보니 약 40분 정도로 나왔다. 넉넉잡고 1시간이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환승역에서 내리면서 이제 3정거장만 더 가면 숙소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곧 절망에 빠졌다. 폭설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3정거장을 어떻게 가야 되나 고민을 하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역 밖으로 빠져나왔다. 승무원과 주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시민에게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는데, 여기서 100m만 가면 나온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런던 시가지를 걸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버스 정류장은 매우 먼 곳에 있었다. 30분 가까이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원래는 지하철표와는 별도로 버스표를 구입해야 했으나 날씨가 워낙 안 좋다보니 기사님도 지하철 표를 내민 우리들의 상황을 알고는 그냥 태워주셨다. 또한 버스 안에서도 어떤 착하신(!) 분이 도와주셔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알려주신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역시 눈이었다. 30분 가까이 기다렸으나 버스는 오지 않았다. 여행 첫날부터 눈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한다. 눈은 어찌나 또 맵던지…. 눈에서 눈물이 다 나왔다.
결국 새벽 1시까지 버스를 기다리다가 걸어가기로 했다. 이때도 많은 시민들의 도움 덕에 우리는[그분과는 헤어졌다.] 이곳 숙소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때가 대략 01:30이었다. 눈에 젖은 바우처를 보여주고는 냅다 숙소로 들어와서 짐을 정리하고 대충이나마 씻었다. 살면서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참 오랜만이었다.
오늘 하루를 요약해보자면…
집(일어나서 아침 식사) - 공항(출국절차&가족들 배웅) - 기내 안(인천-암스테르담) - 스키폴 공항에서 환승 - 기내 안(암스테르담-런던) - 히스로 공항 도착 - 지하철 - 버스 - 도보- 숙소. 대충 이렇다.
여행 기간도 짧은데 하루를 너무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만 같아서 아쉽다. 기억에 남는 건 런던 시내에서 눈보라를 맞으면서 해맨 것뿐이다. 그래도 언젠간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2009.02.02 07:50 숙소 안
추워서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마치 베란다에서 자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난방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 시설이면 꽤 괜찮은 편이다. 도미토리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고 아침도 나오니까 말이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어제처럼 눈 때문에 고생만 하다 하루를 마감하게 되는 건 아닐까? 설렘과 두려움이 반씩 섞여있다.
지금 밖은 온통 하얗다. 방안에서 바라본 밖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밖에서 돌아다닐 때는…. 어제부터 내린 눈은 아직도 계속 온다. 런던에서 머무르는 동안 계속 눈이 오면 어쩌나 싶다. 정말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눈만 보고 간다면 이도 참 억울할 노릇이다.
2009.02.02 18:10 민박 안[에서 일기를 썼다.]
몸을 추슬러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메뉴는 빵, 아니 토스트라고 해야 정확하다. 졸린 눈 비비면서 멍하게 있다가 대충대충 아침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은 뒤 친구와 함께 오늘 둘러볼 곳과 머무를 곳을 정했다. 숙소를 나선 뒤 기념사진을 찍고 기념품 가게를 둘러봤다. 30분 정도 둘러봤는데 딱히 살만한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안 사기엔 뭔가 아쉬워서 그냥 1파운드짜리 자석 하나를 샀다. 그러고는 계속 걷기만 했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탔으면 좋으련만 눈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무작정 걷다가 본의 아니게 캔싱턴 파크(가든)를 가로질러 갔는데 일산에 있던 호수공원이 떠올랐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오랫동안 걷다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에 보이는 가게에서 간단하게 빵을 사먹었다[2개에 5파운드. 1만원이다. 헉!]. 허겁지겁 빵을 먹고는 좀 전에 예약했던 민박집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민박집에서 주인이 알려준 역으로 향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역에 도착하고 나서 보니 이곳은 어제 우리가 눈보라를 맞으면서 헤매던 곳이었다. 역에서 민박집까지 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중간에 내가 불필요하게 시간을 허비해서 민박집 안에 들어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여튼 민박집에 도착해서 잠시 목을 녹인 뒤 근처에 있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까운 줄 알았으나 걸어가기엔 꽤 먼 곳이었다. 30분 정도를 걸어서 자연사 박물관에 갔으나 ‘기상악화로 인해 오후 2시에 문을 닫았다’고 표지판에 씌어 있었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 가서 30분 정도 구경을 했지만 이곳 역시 3시에 문을 닫았다. 쫓겨나다시피 나와서 간 곳은 로얄 앨버트 홀이었다.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가기는 했지만 이곳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건물사진만 찍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민박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기념품 가게에 들렀으나 연필 1자루에 2파운드나 하는 미친 물가(!)를 보고 식겁해서 그냥 나왔다. 민박집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오려면 5시 이후에나 들어오라는 주인장 누나의 말씀 때문에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처에 있는 테스코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날씨가 좋다는 전제 하에) 내일 갈 곳을 골라봤다. 하지만 지금처럼 안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면 런던에서의 여행은 아쉬움으로만 가득할 것 같다.
5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와서 양말도 빨고 대충이나마 씻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짐을 정리한 뒤 쉬다가 저녁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타지에서 먹는 한국 라면의 맛은… 여전히 뜨겁고 매웠다. 라면을 먹으면서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여서 개중에는 좋은 정보를 구할 수도 있었다. 과자와 과일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들…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일까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던 이야기들이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도 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려고 했으나 눈뜨고 일어나보니 자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자고 일어나니 새벽 3시.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서 컴퓨터를 켰다.
메신저에 들어가서 형과 런던의 날씨에 대해 푸념도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는 한국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한편으로는 기상예보를 보면서 내일 일정은 어떻게 짜야 할지에 대해서고 고민해봤다. 다만 유로라인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놈의 영어가 참… 그냥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쓸데없는 상념으로 시간을 보내다 부엌에서 들리는 칼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결국엔 날 샜다.] 부엌에 가서 보니 주인장 누나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살펴봤다. 날씨가 괜찮다면 오늘 하루 동안만이라도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선을 짜는 것이 필수였다. 밖을 보니 지금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과 길이 얼어 있고 굉장히 춥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나마 눈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런던에서의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09.02.03 09:10
어느덧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지금까지 한 것이라고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닌 기억밖에 없는데 말이다. 할 일이 없어서 다이어리를 쓰다보니 벌써 7시가 넘어 있었다. 마침 아침준비를 끝내신 누나가 불러서 아침을 먹으려 했다. 친구를 깨워서 같이 아침을 푸짐하게 먹은 뒤 친구와 오늘 하루 동안 갈 곳을 찾아보다 샤워를 했다. 수압이 낮은 것을 빼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니 어느덧 8:50분이 됐다. 오늘만큼은 제대로 관광을 해보자는 생각에 일찍 이곳을 나서기로 했다. 주인장 누나의 배려 덕분에 하루 동안 매우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랫동안 돌아다녀도 괜찮을 듯싶다. 오늘은 과연 어떤 하루가 될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런던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2009.02.03 22:00 유로라인[에서 일기를 썼다.]
여행지 선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갈 곳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여행루트를 짤 때 내셔널 갤러리에 먼저 가자고 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향했다. 런던 지하철을 몇 번 타보고 나니 금방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원하는 곳으로 찾아가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제일 처음으로 간 곳은 피커딜리 서커스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이곳이 공연장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곳은 그냥 거리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극히 평범한 피커딜리 서커스의 모습에 실망하고는 근처에 있는 유레일패스 예약처로 갔다. 하루라도 빨리 예약을 해놔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직원이 오늘은 할 수 없으니 나중에 하라는 식으로 말해서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하지 못했다.
예약처에서 나온 뒤 우리는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도보로 간 지 얼마 안가서 높은 기둥이 나오자 난 당연히 이곳이 트라팔가 광장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넬슨 제독의 동상인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었다. 주변을 좀더 둘러본 후에야 비로소 이곳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인 것을 알았다. 원래 일정상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가는 곳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오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내로 런던 관광을 끝내야했던 우리는 이곳을 자세하게 보지는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거대한 문[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영국 왕들이 지나가는 문이라고 한다.] 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니 드디어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광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막무가내로 갤러리를 구경하다가 지도 없이 관람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안내책자를 가져왔다.
안내지도에 나온 내셔널 갤러리의 규모는 생각 이상이었다. 과연 오늘 내로 여기에 있는 전시물들을 다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씩이라는 말이 있듯이 천천히 둘러보면 언젠가 다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초조한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대영박물관도 가고 싶었는데 내셔널 갤러리만 보다가 대영박물관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략 4~5시간 동안 갤러리에 있는 작품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친구가 계속 이곳에 있는 작품들을 보기를 원해서 조용히 작품만 봤는데 마냥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더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작품들도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매력에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갤러리에서 머무른 시간이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대영박물관에 갈 시간은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먼 곳까지 와서 대영박물관에 가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대영박물관에 갔다.
대영박물관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폐관이 6시니까 대략 1시간 정도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실 것을 사고 기념품을 둘러보는 동안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 이 때문에 대영박물관은 사실상 거의 관람을 하지 못했다. 평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대영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곧 런던탑으로 향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서 야경은 더욱 멋있어지고 있었다. 타워힐 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갔는데, 이 때 본 런던탑의 모습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다만, 입장 시간이 끝나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었지만] 이 아쉬웠다. 런던탑 근처에 있는 한국어 설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런던탑을 둘러보고는 타워브리지로 갔다.
런던탑과 타워브리지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서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되었다. 타워브리지를 걸으면서 본 템스 강 주변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템스 강 변에 있는 타원형으로 생긴 런던 시청사, 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그 외 수많은 건물들… 그나마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은 꽤 괜찮게 보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서 다시 지하철역으로 갔다. 어지간하면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가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해서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했다.
지하철을 타고[여기서도 고생을 꽤 많이 했다. 눈 때문에 지하철은 운행을 멈추거나 지연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2정거장 거리를 가는데 2~30분이 걸렸다.] 웨스터민스터역으로 갔다. 이곳에는 국회의사당과 빅밴이 있는데, 역에서 내리자마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러고는 내친 김에 웨스터민스터 사원까지 둘러보고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많았더라면 하나하나 자세하게 둘러볼 수 있었을 텐데 날씨 때문에 그러질 못하게 되니 안 좋은 날씨에 대해 괜히 화만 났다. 그래도 하루나마 제대로 관광할 수 있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하나….
유로라인을 타기 위해 빅토리아 역으로 갔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이곳에서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까지는 매우 가까웠다. 막상 걸어보니 대략 10분 정도 걸렸다. 이 두 역은 붙어있을 줄 알았는데 떨어져 있었다. 길을 모르고 갔을 때는 이 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멀게 느껴졌으나 짐 때문에(…) 다시 갔다 오니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역에 도착해서 표를 받은 뒤 아주 간단하게 빵 하나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 맛은 별로였다. 대충이나마 저녁을 먹고 유로라인에 탑승했다. 2시간 정도를 버스, 2시간 정도는 배, 나머지는 다시 버스…잠을 잘까 싶으면 이동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내가 이것을 탈 수 있을지 의문을 품으면서, 런던에서의 좋았던(?) 추억들을 새기면서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파리로 향했다.'51호 > 가대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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