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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전쟁: 대학생 주거권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54호/가대林 2010. 11. 12. 21:08
편집위원 수화
막막하고 외롭고 열 받는 이야기
필자에게 학기초와 학기말은 하나의 단어로 다가온다. 그것은 바로 ‘이사전쟁’. 기숙사에서 고시텔로 고시텔에서 자취방으로 반복되는 이사. 매 학기 거처를 찾아 헤매고, 그렇게 가까스로 찾은 방에 내 몸짝과 짐짝을 옮긴다. 학기마다 반복되는 일이기에 지겹고, 또 동시에 늘 낯설다. 부산이 고향인 필자는 본교에 입학하면서 상경을 했다. 상경을 하며 다가온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어디에서 머물지’였다. 가까운 친인척 하나 없는 서울에 덩그러니 혼자 올라와 처음 느꼈던 것은 '막막함’,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외로움’, 여러번의 이사 끝에 요즘 느끼는 것은 ‘열 받음’이다. 막막하고 외롭고 열 받는 이사전쟁은 필자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집을 떠나 혼자 살았던, 사는, 살려고 하는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보편적이기에 우울한, 집 없는 이들의 이사전쟁 그리고 그 이면에 보잘 것 없이 존재하는 우리의 주거권.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주도에서 온 A이야기
제주도가 고향인 A는 삼 년 여 전 본교에 입학 하여 상경을 했다. A는 지역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와 2개의 방에서 7명이 살았던 자취를 거쳐 현재는 본교의 기숙사인 국제학사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의 이사전쟁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A는 힘든 시절 가운데를 뚜벅뚜벅 헤치 고 지나온 자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로 지난 날들을 말해주었다.
“1학년 땐 왕복 4시간 통학 생활을 했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어쨌든 고통스러운 통학 그 시간 뒤에 돌아갈 공간이 있었던 거니까.”
입학할 때 기숙사 신청을 못한 A는 제주시에서 제주도 출신의 대학생을 위해 운영하는기숙사인 ‘탐라영재관’에 살게 되었다. 탐라영재관은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하고 있어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에 위치한 본교로의 통학에는 대략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A는 제주도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지하철과 복잡한 노선의 버스를 몇 번이나 환승하고서야 학교에 도착했는데, 1교시가 있는 날에는 새벽같이 나서야만 했다고 한다. 또한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지쳐 다른활동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긴장을 하는 생활에 너무나 지쳤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 긴장의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한 조각의 안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2학년이 되면서 탐라영재관 입사에 실패하게 된 것이다. 탐라영재관은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원하였으므로 항상 높은 성적이 기준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본교의 기숙사였던 ‘성심학사’는 입사 기준인 성적이 높기로 ‘악명’이 높았기에 성심학사 입사는 더욱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개강은 다가오고 오갈데는 없고, 두 발만 동동 구르던 찰나에 A는 자취를 결심한다. 비싼 보증금에 다달이 내는 월세는 부담스러웠지만 여러 명이서 같이 살면 그러한 부담이 조금은 덜해질 것을 생각한 것이다. A는 당시에 속해있던 동아리 사람들이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해서 살던 자취방에 들어간다. 그 곳은 학교 주변에 있는 낡은 아파트 건물의 방 2개짜리 집이었고 그 곳에 A를 포함한 동아리 사람들이 무려 7명이나 거주했다고 한다. 그 집은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보증금 중 그 사람의 몫을 빼주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다시 그 보증금을 채우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불편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A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살만했어. 그래도 편했지. 학교 근처에 살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했어.”
그러나 좁은 2개의 방에서 7명이 복닥대도 감사해했던 A의 소박한 안정 또한 금방 끝이 났다. A가 그 동아리에서 나온 것이다. 동아리인끼리 사는 것이 암묵적인 원칙이던 그 자취방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없어지자 A는 또 다시 오갈 곳 없이 발을 구르게 되었다. A는 이러한 사실을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혼자서 온전히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는 자취가 너무나 부담스러운 현실이기에. 그러나 운이 좋게도 A는 2009년도 2학기에 새로 지어진‘국제학사’의 추가등록기간에 등록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 국제학사는 성심학사에 비해 낮아진 성적커트라인과 비교적 낮은 입사 경쟁률로 인해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왕복 4시간 통학에서부터 6명과의 동거까지 다양한 주거형태를 경험하다가 학교 안의 4인 1실의 공간에 머물게 되니 A는 그게 그렇게 쾌적하고 좋았다고 한다. 기숙사라는 공간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1교시를 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고, 7명이서 아침에 씻는 시간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훨씬 이른 시간부터 준비를 하지않아도 됐다. 그래서 A는 어떻게든 계속 기숙사에 살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 기숙사에서 사는 게 너무나 간절해진거지. 밖에서 온갖 고생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만만치는 않아. 성적 기준이 너무 높거든. 이번에 커트라인이 3.9네 어쩌네말이 많아.”
성심학사에 비해 월등히 늘어난 방의 개수에도 불구하고 국제학사의 입사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GEO 영어기숙사와 외국인 교환학생 배정 등을 이유로 내국인 일반 학생들에게 배당된 방의 개수는 성심학사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정확한 수치는 성심53호 <성심교정 한 학기> 중 '꼭 살고 싶습니다!'참고) A는 이제 점점 고학년이 되는데, 고학년이 될수록 기숙사 배정 비율이 더 적어져 경쟁이 훨씬 더 심하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과 공부, 특히 학점받기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또한 국제학사 내 불합리한 점들이 눈에 띄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숙사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A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필자는 A의 뜨악할만한 지난 이 년여간의 시절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학하고 이년여 간의 불안정한 주거권에 늘 깊이 우울해하던 필자였기에, A의 이야기가 결코 ‘그땐 그랬지’식의 에피소드로서만 다가오지 않았다. 필자는 A의 지난 이야기들 그리고 현재 기숙사에 계속 살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감히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A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 열악한 한 줌의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아아, 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사연에 하마터면 코 끝이 찡해질 뻔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A의 이야기는 A만의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센 바람 앞에 꺼질 듯 흔들리는 촛불보다 보잘 것 없는 우리의초라한 주거권에 대한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주거권을 향한 간절한 이야기
본교의 이웃 학교인 성공회대학교에는 이러한 우리의 보편적인 불안을 이야기하는 특별한 모임이 있다. 바로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이다. 이들은 대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어떠한 공간에서라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싼 방값으로 인해 온전한 주거 공간을 얻기 힘든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간이 없으면 공간을 만들자는 유쾌한 상상력 아래 가난해도 누릴 수 있는 대안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캠퍼스 안에서 텐트를 치고 ‘가난하다. 난 학교에서 살아볼란다’라는 문구가 적힌 라면박스로 만든 피켓을 건 채 올해 4월 14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마다 ‘본격’ 노숙을 하였다. 이들은 당사자이기에 절박하고 또 절실한, 그 슬프다면 슬픈 진정성을 20대 특유의 재기발랄함 안에 녹였다. 그리하여 진지하지만 결코 엄숙하거나 무겁지만은 않게 20대 그리고 대학생의 열악한 주거권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연세대학교 47대 총학생회 ‘YOU’는 보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대학생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바로 서울시 신촌 일대에 20대 젊은이들이 저렴한 가격에 입주할 수 있는 ‘20대 임대주택 건설’과 500~2000만원의 보증금을 2~3%의 금리로 대출해주는 ‘자취방 보증금 대출제도’를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이화여대 등 인근 학교와 함께 주거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방자치단체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년 바뀌는 총학생회가 지자체와 함께 주거권에 관한 지속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대책위를 조직한 것이지만 사실 이들의 압력이 얼마간의 기간동안 얼마만큼 작용할 지에 대해선 미지수이다. 그러나 20대 그리고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방값 고통을 계기로 자신들의 주거권을 위해 직접 제도권 속에서 행동한다는 점은 일단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진보신당 20대 주거기획단이 지난 5월 5일 홍대 두리반에서 주최한 20대 주거권 간담회 ‘방 있어요?’나 국내 유일의 세대별노조인 청년유니온의 20대 주거권에 관한 입장 표명 등이 있었다. 이렇게 제도권 안에서의 제도적 접근이든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문화적 접근이든 20대의 열악한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당사자들의 문제제기와 행동들은 20대 주거권 담론의 원활한 형성을 위한 값진 거름이 되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싶다.
9월이다. 2010년도 2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학기도 학교를 다니기 위해 역곡 주변의방을 구하러 다녔던 자취생들의 수는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 지겹고도 낯선 사전쟁 속에서 모두가 외롭게 홀로 서 있는가. 너와 나의 '방'을 위해 그리고 너와 나의 '인권’을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 혼자라는 먹먹함에서 조금은 더 든든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우리의 공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입에서 당신의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들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돌고 돌게 된다면. 그리하여 얄팍한 주거권과 지치는 이사전쟁이 각자의 지겨운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네 공통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면. 그렇다면 목소리는 목소리에서 끝나지 않고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막막하지 않고 외롭지 않고 열 받지 않는 우리의 주거권, 그 '방' 이야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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