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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51호/가대人 2010. 2. 18. 19:18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
조정래 행정학전공 04
1 여러분은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사전적인 의미에서 권리란 것은 법에 의해서 보호받을 수 있는 개인에 이익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 자신이 구입한 물건에 대한 권리, 주식에 대한 주주의 권리 등등 우리의 일상 깊숙이 권리라는 말은 다방면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권리란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차별받지 아니하며,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폴 라파르그의 책을 처음 접하면서 게으름이라는 것도 과연 권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을 읽으면서 게으를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또한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 책에서 말하는 게으를 권리의 의미는 단순하게 게으름이라는 단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의 시대상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당대의 서구사회는 「모던타임즈」에서 찰리채플린이 희화화한 사회의 모습처럼 노동자들의 삶이 무척이나 억압되고 황폐화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의 노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았던 빈곤의 악순환, 그를 통해서 노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으며, 사람답게 사는 것의 의미조차도 희석시키게 만들었습니다.
3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자본가 계급들은 노동의 신성함,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찬양을 멈추지 않았고 그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그들 계층의 부를 축척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에 시대상에 폴 라파르그는 일침을 가합니다.
4 한 세기 동안의 강제노동으로 인해 그들의 뼈가 부서지고, 그들의 살이 찢어지고, 그들의 신경이 혹사당했다. 한 세기 동안의 굶주림으로 인해 그들의 내장과 뇌가 뒤틀어졌다. 오, 게으름이여! 이토록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오, 게으름이여, 예술과 고귀한 미덕의 어머니여,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위안이 되어주소서!
-게으를 권리中
5 우리의 삶을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체계 아래에서 필연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가 발생한다고 한다면 이 시기에는 그 차이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상에서 폴 라파르그는 노동자들에게도 인간으로써 삶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자본가 계급에 의해서 오로지 노동만이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학습되어서 기계적으로 혹은 도구적으로 살아왔던 노동자들에게 각성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는 게으를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답게 삶을 즐기며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6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각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도구적인 존재로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불평등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7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학생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가톨릭대학교의 일반학우로써 가져야 할 권리들 또한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학점이라는 지표와 각종 스펙을 쌓는 일에만 몰두해야 할까요? 권리의 개념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학점 기타 스펙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이름 자체에 하나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8 우리에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배제하고 의사가 결정되는 학교의 운영체계라든지, 학생이 중심이 되지 않는 학생편의라는 말들은 그만큼 우리 일반학우들의 깨어있음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권리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다면, 또한 그러한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가톨릭대학교에 대한 우리 일반학우의 권리뿐 아니라 더 나아가작금의 대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점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9 게으를 권리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가 더욱 더 깨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권리를 말하는 데 서툴지 말 것입니다. 언제나 용기를 가지고 우리가 처한 사회 문제에 당당히 맞서야 할 일입니다. 바로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부터 시작해야 할 일 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51호 > 가대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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