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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A/S] 담쟁이처럼53호 2010. 6. 11. 15:17
편집위원 박진홍
유난히 엄혹했던 겨울 날씨였지만, 한경선 열사 2주기 추모미사가 열린 국회 앞은 작은 촛불들이 모여 온기를 나눴다. 전국노동자대회 이후 근 3개월만에 뵙는 김동애 선생은 붉은 초 하나를 온기와 함께 건네쥐며 대학생들을 맞는다.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 906일째의 저녁놀이 붉었다.
08년 2월 25일, 한경선 박사(건국대 충주캠퍼스 강의전담교수)는 어린 딸을 곁에 두고 부조리한 한국 대학사회와 강사로서 감내해야 했던 사회·경제적 고통을 유서에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성심』51호(2009. 05. 26 발행, 교지편집실(N201)에 여유분 있음), ‘수업파는 장돌뱅이, 시간강사’(박진홍)에서 소상히 다룬 바 있다 강고한 권부가 된 한국·대학사회에 죽음으로서 돌을 던진 6열사들은 기억에서 하나둘씩 스러져감에 따라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벽은 높아지기만 했다.
김동애 선생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년 취재당시보다는 국회에서의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민, 김진표 의원이 대학강사의 교원지위를 복귀시키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지난해 말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었지만 이는 강사료 인상이나 4대보험 적용이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반쪽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가 대학과 결탁해 법률 의결마저 해태하고 있다. 노동부는 작년 비정규직 보호법에서 석사마저 제외시킴으로서 대학에게 강사 해고의 전적인 자유를 주었다.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한지 꼭 2년된 날, 추모미사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국회에선 답답한 정정 속, 與-野가 세종시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가 팽팽했고 건조한 표정의 경찰들의 무전교신은 진혼곡과 섞였다.
짧다면 짧은 세월동안 홍세화 선생을 비롯해 전국 국회의원 지구당사와 대학 본관 앞에서 1인시위를 한 학생들은 그녀의 죽음이 가리킨 울림을 부단히 잇고 있다. 1000일이 가까워지는 국회 천막농성장. 그녀 영정 앞에 소박한 촛불 하나 비추며 부른 마침성가 ‘담쟁이’ 노랫말의 행간과 광막함을 잊긴 어려울 성싶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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