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uth in Fiction52.5호/N201 2010. 2. 26. 18:58
최병학 前 편집위원
-교지 다시 읽기
이 글은 『성심』43호(2003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지는 항상 위기였습니다. 상황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교지가 위기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의 위기의 원인들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이 글을 내놓으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어려웠던 2003년의 글을 돌아보며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교육시에 위치한 가톨릭 초등학교(이하 가초) 인근의 각종 분식집들이 경영난에 처해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한 학기에 한 번, 년 2회씩 가초 학생들의 입맛을 대변해 오던 ‘교지분식집’이 이번 가을 개업을 끝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여기서 가초 앞의 분식집들이 처해 있는 위기 상황과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본 위원의 심층 분석이 있을 예정이다. 가초 앞 분식집들의 경영난을 밝히기에 앞서 가초의 유수한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톨릭초등학교. 줄여 부르기를 좋아하는 어린애들답게 가초라고 통상적으로 부른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외부 학생들과 초등학교 역사에 대해 무뇌중이신 분들은 카초 혹은 칸초라고 부르기도 해 듣는 가초 학생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대못을 박아버리곤 한다. 가초는 여타 초등학교와는 달리 총 세 반으로 구성(원래 각기 다른 체제의 학교였는데 1995년 3월 김수환 교장에 의해 통합 되었던 것이다)되어 있으며 반별로 특성화되어 있다. 1반, 2반, 3반 등 숫자 나열식이 아닌 성신반, 성의반, 성심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이 학교는 각 반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교류가 없을뿐더러 싸우고 싶어도 못 싸우게 되어있다. 먼저 성신반을 살펴보도록 하자.
성신반은 교회놀이하기를 즐겨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있다. 위치는 학교 옆 성당과 가장 가까운 1층 복도(복도명-대학로) 끝에 붙어있다. 이 반은 성의반과 더불어 소수정예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들의 덧셈, 뺄셈 및 곱셈, 나눗셈 등 학습능력이 어떨지는 본 위원도 감이 전혀 안 온다. 성신반은 성의반과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위치상 이 기사의 핵심인 교지분식점 폐간과는 그다지 큰 연관성이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기사 역시 성신반 성의반 학생들이 읽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그러나 본 위원은 참으로 애석하게 생각한다. 맛이 있던, 맛이 없던, 맛이 그냥 그저 그랬던들 그들에게 교지분식집 맛을 못 보여줬다는 것을…….
성의반은 병원놀이하기를 즐겨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있다. 위치는 2층 복도 끝(복도명-반포로) 학교 간호실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성신반과 같이 소수정예이고 최고 잘 나가는 초등학교인 윗동네의 서울초등학교 병원놀이반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반 역시 교지분식집의 폐간에는 영향을 별로 못 받을 것 같다. 그리하여 본 위원 다시 한번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다.
이제 이 세 반의 하이라이트, 교지분식집 폐간이라는 폭풍의 중심에 위치한 성심반을 소개하겠다. 성심반은 좋게 말하면 각기 좋아하는 놀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반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교회놀이, 병원놀이를 제외한 떨거지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반이다. 위치는 3층이고 주변에 특별한 건물 없이 황량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문제의 본질로 접근하자. 가초 앞 교지분식집의 위기는 비단 교지분식집만의 위기가 아니다. 이는 가초 앞 모든 분식집들의 위기이며 더 나아가 모든 초등학교 앞 분식집들의 위기이다. 모든 분식집들의 위기를 진단하기에는 영역이 너무 광범위하므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짚어나갈 예정이다. 근처에는 교지분식집과 함께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학보분식집, 영자분식집, 방송분식집 등이 있는데, 이들 분식집 모두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있다. 단적인 예로 격주간으로 새 메뉴를 선보여야 하는 학보분식집은 작년에 단 두 명으로 경영해왔다고 하니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곳곳에서 새로운 분식집 알바생들을 뽑는다는 벽보가 나붙는 걸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교지분식집이니만큼 교지분식집의 위기 상황을 들여다보자.
교지분식집은 가초의 세 반 가운데 성심반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체제이다. 교지분식집은 원래 세 반을 통합하기 이전 성심반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통합 후 세 반의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심반을 대상으로 하는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교지분식집은 년 2회씩 새 메뉴를 선보이는데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8명의 알바생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띵까띵까 놀거나 나름대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할 동안 알바생들은 다음에 선 보일 메뉴를 위해 자기 시간 다 버려가며 메뉴개발에 고심한다. 그리고 방학의 절반이 지나갔을 무렵 다음에 만들 메뉴를 결정하고 방학이 끝나갈 즈음 계획된 메뉴를 만들기 시작한다. 알바생들에 의해 만들어진 메뉴들은 학기가 중반으로 치달을 때 포장센터로 넘겨져 좀 더 보기 좋은 음식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봄과 가을이 깊어질 무렵 학생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뉴비평 및 분석을 통해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더 좋은 메뉴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자기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듯 언뜻 보기엔 쉬워보일지 모르는 과정이지만 만드는 알바생들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살짝궁 오버를 한다면 산모의 진통과도 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교지분식집에 위기가 불어 닥친 것이다. 현재 교지분식집은 두 명의 견습알바생과 한명의 숙련알바생 그리고 한명의 퇴임알바생, 총 네 명이 만들고 있다. 견습알바생은 작업의 능숙도가 떨어지고 숙련알바생은 복학을 해서 그런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퇴임알바생은 졸업 후 진로문제로 인해 작업에 있어서 적극적 업무수행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교지분식집의 메뉴 개발이라는 거사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핑계에 불과하다. 지난 번 메뉴 개발 시에는 단 두 명의 숙련알바생이 만든 경험도 있기에 메뉴 개발하는 일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메뉴의 완성도와 학생들의 구매도는 만들기 쉬우면 쉬울수록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교지분식집 경영난의 가장 큰 요인은 위의 과정을 거처 만들어진 메뉴가 학생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라는 점이다. 사실 알바생들이 소수정예-정예(精銳)는 확실치 않음-라도 학생들의 관심과 비판 및 성원이 뜨겁다면 알바생들은 사명감에 홀라당 불타 작업에 좀 더 애착을 갖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예를 들자면 지난 번 39번째 메뉴를 선보였을 때 잘못 들어간 조미료도 많았고 실패한 메뉴도 몇 가지나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랜만에 교지분식집에서 메뉴가 나왔으니 먹어주거나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한 경영난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들을 더 살펴보면 몇 년 전부터 웹진분식집을 비롯해 갖가지 메뉴로 무장한 신종분식집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분식집들은 교지분식집을 비롯한 여타의 분식집과는 다른, 특출난 메뉴 개발을 하는 것 같아서 교지분식집의 설 자리는 더욱 더 좁아졌다. 어쩌면 구시대적 체제를 고수하는 교지분식집은 신흥분식집들에 밀려 자리를 내어주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무한경쟁 속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메뉴와 체제를 고수하는 것은 침몰하는 배의 캡틴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지분식집 휴업에 결정타를 날릴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앞의 원인들과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데, 교지분식집의 대를 이을 알바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교지분식집 휴업은 불을 보듯 뻔하게 되었다. 본 위원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해결책을 구해보았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 문제는 학우 여러분들에게 맞기고 본 위원은 뜨거운 피 철철 뿜어내는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만.
'52.5호 > N2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88만원 세대의 언론과 소통 (0) 2010.02.26 '성심'이 걸어온 길 (0) 201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