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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국제’캠퍼스, 과연 세계로의 발돋움인가52호/가대in 2010. 2. 26. 18:29
편집위원 찬표
2009학년도 2학기가 개강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가톨릭대학교는 전에 없이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본교의 박영식 총장이 학교 운영에 있어 ‘국제화’를 제 1의 가치로 추구함에 따라 학교가 변화의 물결 속에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가톨릭 대학교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제화의 영향으로 수년 뒤 가톨릭대학교의 대학평가순위가 상위권으로 올라갈지도 모를 일이다(이것이 ‘발전’을 의미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국제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학교, 혹은 박영식 총장 개인의 소통 없는 일방향적 행보는 우려할 만하다. 그 중심에 ‘150주년 기념관’
신축 건물에 대한 명칭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2009학년도 2학기 개강맞이 교직원 미사 강론’ 총장 연설문을 살펴보면 새 건물은 두 동을 합쳐 ‘International Hub’ 또는 ‘150th Anniversary of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로 명명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International Hub’ 명칭을 거부하는 의미로 새 건물을 ‘150주년 기념관’으로 부르기로 한다. 이 있다. 150주년 기념관은 내부의 공간 활용이 ‘국제화’를 기본 방향으로 이루어지면서 글자 그대로 ‘International’한 ‘Hub’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자치 공간 증설, 강의실 확보 등의 학생들의 요구를 새 건물이 완공되면 모두 해결된다며 수년간 미뤄왔던 학교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선택은 배제를 낳는다. 가톨릭대학교가 국제화를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로인해 배제되는 그 어떤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캠퍼스가 문제인 이유
필자는 몇 개월 전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참석한 학교 행사에서 가톨릭대학교의 약자는 ‘C. U. K’가 아니라 ‘C. U. O. K’가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CU!'라고 외치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OK!'하며 화답하는 식이었다. 나중에 학교 관계자에게 물으니 그는 “요즘 총장님이 미는 구호에요.”라고 답했다. 정말 총장이 ‘미는’ 구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저런 구호를 새로 만들어서 외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각 가정으로 발송된 것으로 보이는 G. E. O(Global English Outreach, 이하 GEO)프로그램의 홍보 우편물에는 발신인이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이 아니라 국제캠퍼스로 되어 있었다. 이 낯선 명칭에 많은 학우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학교 홈페이지의 Q&A 게시판에 GEO 위원회가 성심교정이 국제캠퍼스로 명칭 변경되었다는 답변을 게시했으나 이에 대해 추가 확인 질문들이 올라오자 현재는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 계속 ‘처리중’으로 표시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며칠 전, 저번 학기까지 학생지원팀으로 불리던 부서는 VOS(Voice of Student Team)팀으로 부서명이 바뀌었다. 학생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도는 반가울 따름이지만 현재 활동 중인 가수들이 먼저 연상되는데다가 아직까지 VOS팀이라는 명칭은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어색하기만 하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명칭에 대한 것이다. 그것도 전부 영어를 사용하려고 억지로 끼워 맞춘 인상이 강하다. 물론 이름이 가지는 이미지는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천착할 경우, 본질은 생각하지 못하고 껍데기에만 신경 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중 학생들이 가장 강력하고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사항은 부천시 역곡동에 위치한 성심교정의 명칭 변경 문제이다. 국제캠퍼스로의 명칭 변경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캠퍼스’가 한국 사회에서는 분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스스로를 분교로 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캠퍼스가 한국 사회에서 분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까지를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분교의 이미지가 가지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성심교정을 국제캠퍼스로 부를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문제는 간단하다. 위의 세 가지 사례는 모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에 헛심을 쓰고 있는 것이다. ‘C. U. O. K’, ‘국제캠퍼스’, ‘VOS팀’이 가지는 이미지는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고, 이러한 명칭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국제인, 세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심 교정의 명칭 변경을 주도한 인물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학교 측의 의중이 궁금할 따름이다. 학교는 교정 명칭을 바꾸는 중차대한 사항에 어떠한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법도 없이 일방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밀어붙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영어가 곧 국제화로 여겨지는 씁쓸한 상황
가톨릭대학교가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중점적으로 신경을 쓴 부분은 교내에서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학부 정규 수업 외에 아침, 저녁으로 짜인 영어 수업
현재 GEO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모든 학생들은 Content, Conversation, Activity로 나누어진 영어 수업을 각각 주 2회, 주 2회, 주 1회 수강해야 하며 월 수강률 85% 미만 시 기숙사비 환불 없이 퇴출된다. 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GEO 기숙사에서는 생활공간 안에서도 영어 사용이 ‘의무화’ 되어 있다. 이 외에도 2학기 들어 경영학 전공, 국제학부, 문화콘텐츠 전공, 행정학 전공 등의 학부 수업에 총 15개의 신임외국인 교원 강의가 개설 되었고 다양한 국적을 지닌 외국인 유학생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일단 교내 영어 환경 구축은 어느 정도 양적 팽창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본교가 국제화를 위해서 보여준 일련의 계획들은 이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혹시 ‘영어 = 국제화’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분명 영어를 습득하는 것은 학문의 세계적 흐름을 파악하고 다양한 문화와 소통하며 나누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그 학생들이 마음껏 영어로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한 대학의 국제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지구적 관점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 언어습득보다 우선 되는 것이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하는 사고의 전환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국제화의 선행조건이라면, 가톨릭대학교는 국제화를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 이 시점에도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국가 유학생들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편견이 가득한 표현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연 대학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글인가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들, 국제화를 통해 가톨릭대학교의 건학이념이라는 ‘인간존중의 대학’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전공 수업과 영어 학습 사이의 딜레마
그렇다면 학교가 야심차게 준비한 GEO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영어 학습에 얼마나 효과적일까? 『성심』에서는 직접 GEO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경험을 듣고자 ‘2009 여름방학 GEO 프로그램’ 참가자 세 명을 대상으로 좌담을 진행했다.(○○쪽 기사 참조) 방학 기간 중 4주 동안의 GEO 프로그램을 수료한 이들은 모두 프로그램에 대체로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학기 중 GEO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이번 2학기에도 GEO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배해진(심리·3)씨는 학기 중 GEO 영어수업에 대해 “1, 2학년 때 들었던 실용영어회화 수업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의지도 방학 프로그램 때와 달리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라고 말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던 방학 때에 비해 학기 중에 GEO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 정도의 영어 수업만 받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전공 수업을 들어야 한다. 영어만 중점적으로 ‘몰입’해서 배울 수 있던 때에 비해 영어 학습 정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학기 중 GEO 프로그램의 학습 효과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방학 GEO 프로그램은 총 120명의 참가자를 4단계, 6개 반으로 나누어 6명의 교수가 한 반 씩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학기 중에는 참가자가 약 300여명으로 늘었고 반도 15개 반으로 늘었다. 교수 한 사람이 담당해야할 학생 수가 많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교수 본인의 집중도부터 흩뜨려지게 마련이고 대부분 교체가 된 교수들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수업을 들어본 학생들에게서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방학 GEO 프로그램이 150주년 기념관 완공 지연으로 용인 하이닉스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것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영어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기숙사에서 진행되는 학기 중 프로그램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좌담에 참여한 세 명의 학생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영어를 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만 나가면 바로 한국어로 말해야 하는 환경이라 영어가 잘 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또 학생들 스스로도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고 수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화에 잊혀져가는 것들
단순한 영어 학습 위주의 국제화도 문제지만 학교는 이번 국제화 추진에 있어 학생들에게 어떠한 대대적인 의견 수렴도 하지 않았다. 학교의 미래가 좌지우지 될 만한 큰 사업을 벌이면서 학생들을 그저 자신들이 계획해놓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150주년 기념관을 국제화의 ‘랜드마크’
로 삼으면서 공사 진행 중 제기되었던 원거리 거주 학생과 자치공간의 문제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겉으로는 일반 기숙사 400명과 원거리 거주 학생 중 GEO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합쳐 기존 280명 수용규모의 성심관보다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새 기숙사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기숙사와 GEO 기숙사 모두 1차 모집에서 정원이 채워지지 않아 추가 모집을 받았기 때문에 수요가 모두 충족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셈법에서는 기숙사가 필요하지만 GEO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학생, 그리고 학기 당 28만원에서 110만원(4인실 기준, 의무식 포함)으로 크게 오른 기숙사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배제되어 있다. 그나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새 기숙사로 입주하는 학생들에 비해 이들은 사람이 없어 아무도 쓰지 않는 빈 방들을 뒤로 한 채 고시원으로, 자취방으로 전전하고 있다. 총학생회나 많은 학생들이 구 기숙사를 예전처럼 운영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150주년 기념관이 지어지면 철거할 예정이던 니콜스관 5층 옥상의 가건물은 아직 그대로 있다. 자치공간을 성심관으로 옮기려던 학교는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의 반대에 한 발 물러섰지만 향후 자치공간 확보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텅텅 비어있는 150주년 기념관과 학생회관의 공간들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생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국제화의 망령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한국 대학들의 국제화 추진 현상은 가히 놀랄만하다. 영어강의를 늘리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면서 국제적인 학교를 만들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소위 ‘명문’대학이나 그렇지 못한 대학이나 다를 바가 없다. 가톨릭대학교도 이 같은 시류에는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박영식 총장 취임 이후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강의를 하는 사람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이나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영어강의를 한다고 해서, 학교에 단지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늘었다고 해서 국제적인 학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앞서 ‘국제화’라고 여겨지던 정책들을 추진했던 학교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영어로 하는 전공 수업은 한국어 수업에 비해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상당수의 학교에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면제해주고 생활비까지 보태주는 ‘퍼주기’식 행태로 유치한 외국인 유학생들은 그들대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중심의 국제화 추진 현상은 앞으로도 한국 대학 사회 전체를 휘감는 광풍으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학문으로서가 아닌 단순한 의사소통으로서의 영어가 가장 강조되는 것은 마치 한복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입은 것 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산적해 있는 학내문제들을 제쳐두고 국제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가톨릭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할 문제다.
실용영어회화 수업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학기 중 GEO 프로그램
GEO 프로그램은 지난 여름방학 용인하이닉스인재개발원에서 처음 시행된 이후 현재는 150주년 기념관에 위치한 새 기숙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본교의 영어 교육 강화 프로그램이다. 『성심』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학기 중 GEO 프로그램의 모습을 방학 중 프로그램에 참가한 배해진(심리·3), 김기선(심리·2), 박상준(정통·3) 씨와 진행된 좌담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좌담은 9월 4일 교지편집실에서 진행되었으며 세 사람 중 배해진 씨는 학기 중 GEO 프로그램에도 참여 중이다.
사회․정리 편집위원 찬표
사회 : GEO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는요?
해진 : 저는 원래 영어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나중에 취업할 때 영어를 보잖아요. 토익을 많이 본다고 하지만 요즘은 스피킹으로 넘어가는 추세여서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상준 : 솔직히 영어가 지금은 취업 때문에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저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외국어라는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이렇게 지원하는 기회가 좋다고 생각해서 가게 됐죠.
기선 : 저는 작년에 잠깐 외국에 나갔다 왔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를 계속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환경도 안 되고 듣기나 스피킹은 혼자서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런 환경을 찾아보다가 학교에 공지가 뜬 것을 보고 하루 종일 기숙사에서 (영어를 쓰며)생활하면 학원보다 오히려 더 괜찮을 것 같았어요.
사회 : GEO 프로그램이 처음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가 갑자기 용인으로 장소가 바뀌었죠. 그런 점에서 혼란은 없었나요?
상준 : 처음에는 다들 기숙사로 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그 건물은 못 들어갈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어쩌나 싶었는데 역시나 바뀌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주변에 같이 지원한 친구들 중 몇 명은 포기한 경우도 많았어요. 저 같은 경우도 여기(학교) 기숙사로 들어오면 바로 집 근처니까 평일에 어떤 계획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민되는 것이 있었죠.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선 : 학교에서 우편물이 왔잖아요. 거기에 설명이 다 되어 있었거든요. ‘어떻게 책임을 지고 어떻게 계획을 하겠다.’ 같은 것들이. 주변 어른들도 사설 연수원에 들어가면 학교 기숙사보다 훨씬 괜찮을 거라고 하시고. 저도 어차피 기숙사에서 생활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소가 바뀌는 거에 대해 별로 거리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이닉스에서 하게 되어서. 시설도 워낙 좋았고.
해진 : 저는 솔직히 새 기숙사에 안 들어가고 싶었어요.
(세 명 모두) : 새집 증후군!
기선 : 그리고 만약에 학교에서 했으면 밖으로 나가기가 쉽잖아요. 한 발자국 나가면 한국어 환경인데 그 연수원은 산 속에 있었어요. 밖으로 나가려면 40분을 걸어야 하고 또 버스타고 그래야 해서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상준 : 오히려 그 상황이 교육적으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갇힌 공간에 있으니까 더 잘 친해지게 되기도 했고요.
해진 : 일단 갇혀 있으니까……. 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일정이 꽤 빡빡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팀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고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더 좋았어요.
사회 : 그럼 GEO 프로그램에서 받은 수업이 실제 자신의 영어 학습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요?
기선 : 솔직히 한 달이 자신의 영어 실력이 바닥이었다가 갑자기 말을 잘 하게 되기는 어려운 기간이잖아요. 그런데 계속 영어를 사용하고, 특히 수업할 때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 많았어요. 생활에서 쓰는 말, “밥 먹었어?” 이런 것들은 쉽게 익숙해지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공적인 자리에 서서 말하는 것은 한국어로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영어로 공적인 스피치를 하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워서 부끄러운 점도 있어요. 처음에는 스피치 하러 나가면 다리가 후들 거리고 머리는 하얘지고……. 주제를 그냥 갑자기 던져주고 말하라고 하거든요. 처음 주제가 ‘낙태’였어요. 한국어로도 하기 힘든데 어떻게 영어로 해요. 그런 것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하다보니까 마지막에는 조크도 던지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아요.
해진 : 저희는 ‘GEO에 있는 나의 친구들’, ‘기억에 남는 영화’ 같은 간단한 주제들로 얘기를 했어요. 저희가 약간 낮은 레벨이어서 말을 자연스럽게 하기는 어려워요.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도 어색한데 공적인 말은 더 어려웠죠. 그래서 저희는 다 써서 준비를 하고 웬만하면 안 보고 얘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영어를 아예 안 쓰다가 거기서 하다 보니까 마찬가지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예전에 1학년에 O. B. F를 가거나 실용영어회화 수업을 들으면 너무 긴장이 됐었는데 그런 것은 없어진 것 같아요.
상준 : 저는 GEO에서의 수업이 처음에는 단어 외우고 문법 공부하는 학원과 같은 걸로 예상하고 갔었는데 실제 수업 분위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을 말이 트이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수업이 항상 토론을 시키고 항상 발표를 시키고, 칠판에 무엇을 적어서 가르친다기보다 항상 너희들끼리 얘기를 하라고 시간을 많이 줬어요. 그러다보니까 나중에는 선생님이 제발 너희 그만 말하라고 할 정도로 자기들끼리 떠들고 노는 정도가 됐어요.
저는 스피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처음 말문을 트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까지 배운 정규수업만으로도 이론으로는 충분한 것 같아요. 문제는 그 말을 어떻게 트이게 되냐는 건데 그런 점에서는 GEO 캠프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사회 : 방학 GEO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웠는데도 학기 중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해진 씨는 현재 학기 중 GEO 프로그램에도 참여 중이다)
상준 : 우선적으로는 제가 학기 중에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요. 전공 수업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도 많았어요. 제 생각에는 학기 중에 GEO가 그렇게 잘 운영될지는 미지수에요. 기숙사에서 방학 때처럼 똑같이 진행을 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시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한국어로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잖아요.
기선 : 저도 일단 집이 가까우니까 굳이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거기서는(용인) 백퍼센트 영어만 썼지만 여기서는 학교생활도 해야 하고 전공도 신경 써야 하고 그래서……. 무엇보다 거기서는 교수님들과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생활을 했거든요. 영어는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랑 할 때 늘잖아요. 교수님 같지가 않고 친구 같았어요. 장난도 치고, 사소한 것에도 잘 대답해 주시고. 그런데 여기서는 그게 힘드니까…….
사회 : 방학과 학기 중 프로그램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기선 : 지금 좌담을 하러 학교에 올라오다가 방학 때 같이 GEO를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지금 GEO는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별로래요. 교수님들도 다 바뀌고,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방학 때도 한 반에 스무 명 정도여서 처음에는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지나고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어요. 그 정도로 교수님이 열성적으로 한 명 한 명 눈 마주쳐 주시면서 수업해주셨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대요.
해진 : 지금도 한 반 인원은 스무 명 정도라 비슷해요. 그런데 교수 한 분이 많은 반을 같이 담당하니까 그런 문제는 있죠.
기선 : 궁금한 것이 있는데, 방학 때는 팀이 짜여 있어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무슨 초등학생 하는 것처럼 “유치해, 유치해.”하면서도 즐겁게 했었거든요. 지금도 그런 게 되나요?
해진 : 일단은 제가 처음 느꼈을 때는 분위기 자체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방학 때는 분위기가 뭔가 밝고 이랬는데 지금은 뭔가 차갑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아직 수업을 한 번 밖에 안 들어가서 잘 모르겠지만 처음 느낌은 그래요.
상준 : 여기서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주저주저하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 같아요. 강의실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환경이라 힘들 것 같아요. 물론 본인이 열심히 한다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질 수는 있지만…….
사회 : 학기 중 GEO 프로그램이 방학 GEO 프로그램보다 영어 학습에 있어서 효과가 떨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어떤 것일까요?
해진 : 환경이랑 사람들의 의지요.
기선 :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인이랑 영어할 때는 괜찮은데 아는 사람 앞에서 영어하는 것이 너무 창피하거든요. 방학 때는 모두가 영어를 쓰려고 했으니까 괜찮은데 학교에서는 ‘내가 영어를 쓰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겠구나.’ 또 상대방 친구들이 같이 있으면 ‘쟤 외국 나갔다왔는데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생각할 것 같고 신경 쓰일 것 같아요.
상준 : 가장 큰 문제가 환경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혀를 굴리면서 하게 되면 보는 눈이 다르잖아요. 할 줄 아는데 일부러 버벅거릴 수도 없는 거고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 : 그럼 앞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학기 중 GEO 프로그램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말하면서 오늘 자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진 : 저는 원래는 필리핀 TA가 온다고 들어서 방마다 함께 생활하게 될 줄 알았어요. 한 방에 한 명씩은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 팀을 만든다던가 해서 지속적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랑 계속 얘기하면서 자신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기선 : 차라리 그럴 거면 우리학교에도 영어 잘 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거든요. 굳이 필리핀 학생들을 부르는 것보다 영어 잘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함께 생활하게 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아요.
해진 : 필리핀 TA여서 좋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영어 잘 하는 사람이 같은 방에 함께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상준 : 기숙사가 지금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GEO 기숙사라도 외국인들과 방을 섞어서 쓴다던지 해서 영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겠죠.
해진 : GEO 프로그램이 처음 하는 거라서 다들 지금 학기 중 프로그램이 ‘잘 될까,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하는 사람들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최소한 학교가 해줄 수 있는 한해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스터디를 만들면서 공부해가면 학교가 얘기하는 국제캠퍼스가 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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