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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속 그늘, 프로야구 신고선수 이야기52호/뫼비우스의 띠 2010. 2. 26. 01:43
편집위원 정승균
베이징 올림픽, 2009 WBC와 신고선수 김현수
2008년 한국야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 대표팀은 전승의 성적으로 결승전까지 올라 아마야구 최강자인 쿠바를 힘겹게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어 일년 뒤 벌어진 WBC에서도 한국야구는 저력을 보이며, 2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국제대회에서 선전한 한국야구의 인기는 국내프로야구 까지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보였던 선수들 중 특히나 주목받았던 선수들 중 특히나 주목받았던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김현수’ 선수이다. 김현수 선수는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는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좌익수로 활약 중인 선수다.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선수인지라, ‘사못쓰’
‘사할도 못치는 쓰레기’의 줄임말, 모 인터넷 만화에서 처음 나온 말로, 김현수 선수의 뛰어난 타격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는 우스꽝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 김현수 선수가 주목받은 이유는 출중한 타격 실력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가 드래프트에서 구단에게 지명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프로야구에 입문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이 선수들 가운데 우리는 홈런왕 장종훈 선수부터, 한용덕 선수, 쌍방울 연습생 출신이자 현재 최고 포수인 박경완 선수, 김현수 선수와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 활약한 두산의 손시헌 선수, 이종욱 선수 등 여러 성공스토리를 봐왔다. 하지만 그 성공신화 속 현실은 어떠할까.
신화가 되지 못한 선수들
한국 프로야구 팀들은 총 63명의 등록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 그 중 26명이 1군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 선수들은 2군에서 1군에 오르기를 바라며 땀을 흘린다. 반면 이 63명의 등록선수가 아님에도 구단이 소유한 선수를 바로 ‘신고선수’라 한다. 신고선수는 말 그대로 ‘등록선수 외에 이런 선수가 있다’고 구단이 신고하는데서 나왔다고 한다.
윤승옥, “‘비정규직’ 신고선수의 모든 것”, 스포츠서울, 2008. 5. 23자. 참조 다시 말하자면 드래프트를 통하지 않고 신고만 된 선수라는 뜻이다.
신고선수는 6월 1일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하고, 1군 경기를 뛸 수 있다. 하지만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고 들어온 선수들과는 다르게 계약금을 받지 못하며, 연 2,000만원의 최저연봉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다만 ‘600만원 이하’가 신고선수의 최저연봉으로 정해져 있다. 여기에 등록선수들을 방출하기 위해서는 ‘웨이버 공시’나 ‘임의탈퇴’ 같은 절차가 필요하지만 신고선수에게는 이런 절차가 필요 없어 언제든지 구단에 상황에 따라 짐 싸서 내보낼 수 있다. 또한 구단 홈페이지와 구단에서 발행하는 팬북 어디에서도 이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은 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든다.
구단이 신고선수를 필요로 하는 이유
앞서 이야기한 김현수 선수는 고교 야구 최고 타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만큼 고교 시절부터 이미 타격으로 인정을 받은 선수였다. 하지만 수비 능력이 떨어지고 다리가 느리다는 이유로 어떤 프로구단으로부터도 지명 받지 못했기에 김현수는 드래프트 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김현수 선수를 신고선수로 입단시킨 것처럼, 구단들이 정식 지명보다 신고선수 제도를 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선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63명의 등록인원으로 1․2군 경기를 모두 소화하는데 부족함이 생기기도 한다. 2007년 SK와이번스는 63명의 등록선수를 보유하기 위해 부상 중이던 엄정욱 선수와 이승호 선수를 임의탈퇴시켜 1년간 임시은퇴라는 희한한 편법을 이용하기도 한 것을 보면 가능한한 선수를 많이 보유하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여기에 계약과 퇴출이 자유롭다는 점은 구단이 신고선수를 애용하게 만드는 더 큰 이유가 된다. 등록선수 숫자를 깎아먹지 않으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주면 등록 선수로 이용하면 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면 바로 퇴출시키면 되니 구단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이렇다보니 구단들은 예전 같으면 정식 지명을 거쳐 뽑을 선수도 신고선수로 계약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는 지명선수가 줄어들고, 신고선수가 늘어나는 상황으로 증명된다. 2002년 23명에 불과하던 신고선수는 급격히 늘어나 2009년 78명이 신고선수로 구단에서 뛰고 있으며, 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각 구단별로 12명의 신인지명권을 모두 행사했지만 2009년 평균 8.1명의 신인을 지명해 그 수가 크게 줄었다.
장강훈, “신고선수제도, 새로운 스타 등용문 되나”, 스포츠서울, 2009. 6. 12자. 참조 다행히 전면 드래프트가 실시된 이번 2010년 드래프트에서는 대부분 팀들이 10명, 또는 9명의 선수를 지명했다. 하지만 지명선수가 늘어난 이유는 2010년 야구규약 개정으로 ‘전년도 지명인원이 7명 이하인 구단은 3명, 8명 이상인 구단은 5명까지 등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신보순, “2010 프로야구 첫 전면 드래프트 특징은?”, 스포츠조선, 2009. 8. 18자. 참조 더욱 황당한 경우는 과거 모 구단이 신인 지명한 선수의 지명권을 포기하고 다시 그 선수에게 신고선수 입단을 제의한 경우이다.구경백, “‘신고 선수제’ 악용 이제 그만”, 문화일보, 2005. 9. 30자. 참조 프로야구 구단들이 어떤 이유로 신고선수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지 명백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신고선수와 비정규직 다르지만 같은 이름
프로야구 신고선수의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도 닮아있다.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정규직과 비교하여 기간적으로 제한이 있거나(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간접적으로 고용되어 있거나(파견, 도급, 용역, 사내하청), 특수한 형태(프리랜서, 개인사업자)로 고용되어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것처럼, 프로야구의 신고선수는 등록선수에 비교하여 불안정한 상황에서 운동을 하여야 한다. 비정규직이 계약이 끝나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고, 재계약 성사여부 때문에 항시 불안한 처지에서 일하는 것처럼, 신고선수는 시즌 중 언제나 해고될 수 있고 재계약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불안정한 위치에서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비정규직 중 일부만이 정규직이 되는 것처럼, 신고선수도 일부만이(시즌 초 10명 정도인 구단의 신고선수 중 연말까지 보류선수로 살아남는 선수는 1~2명에 불과하다) 등록선수로 또는 다시 신고선수가 되어 다시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다.
역시나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들이 기업과 구단의 수량적 유연화와 비용 절감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지고 운영되어 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쉽게 해고하고 임금을 적게 줄수록 기업의 경영이 편리하고 당장의 이윤이 많이 남는 것처럼, 프로야구에서도 임금을 적게 주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제도는 구단에게 큰 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언제까지고 기업과 구단에게 이득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비정규직과 신고선수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비정규직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문제들은 현재 우리가 몸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먼저 고용이 불안정해져 삶이 불안정해 진다. 고용의 안정이 삶의 안정이라는 것은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간을 정해 계약을 하는 기간제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재계약을 고민해야만 하는 삶은 앞으로의 장기적인 삶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사치에 불과하도록 만든다. 또한 비정규직은 재계약이란 상황 속에서 사용자에 대해 정규직보다 약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고, 노동조합이 쉽게 결성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기 마련이다. 여기에 계약이 갱신되기에 호봉에 따른 임금 상승을 기대할 수 없고, 간접고용의 경우 사용회사와 고용회사 관계 때문에 일정부분을 고용회사가 가져가기에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물질적 어려움에 더해 정규직과의 차별과 복지의 차별, 승진의 제한 때문에 일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없기 마련이다.
신고선수도 이와 비슷하다. 신고선수도 짧은 계약기간과 퇴출이 쉽다는 점이 선수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실제로 살아남는 선수가 얼마 없다는 사실은 선수 개개인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최저연봉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해 저임금에 시달리며, 구단 홈페이지나 팬북, 선수현황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존재인 신고선수는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는 선수이다.
비정규직과 신고선수의 확대가 가져올 슬픈 미래들
앞서 본 비정규직이 개개인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실질적 임금이 낮은 관계로 쉽게 소비하지 못해 내수 경기가 형성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개개인의 불안이 커지면 사회 전체의 불안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의 여파로 결혼율과 출산율이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의 경제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프로야구계에서도 드래프트 보다 신고선수 제도가 더욱 쉽게 이용되고 그 활용폭이 커지는 상황이 지금 현재 구단의 운영에는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드래프트가 무력해 지면서 프로야구의 기반이 아마추어 야구가 무너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많은 선수들이 국내구단이 아닌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과거 박찬호 선수의 성공 이후 해외로 나갔던 많은 선수들이 다시 국내 프로야구 돌아온 상황에서, 과거처럼 단지 해외에서의 성공사례만 보고 해외진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국내 프로야구계의 불안정한 여건 때문에 해외진출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몇 십년간 야구를 한 선수들이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신고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뛰려 하지만, 지금 야구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이 이런 불안정한 현실에서 계속 야구를 하려할 지는 의문이 든다. 박세리의 성공 이후 운동을 시작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골프를 시작하고, 최근 박태환의 성공으로 수영이 아동스포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안정적 미래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규직이 될 가능성보다,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비정규직의 불안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아가, 지금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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