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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 수업 ― 책 『존엄성 수업』을 중심으로 읽는 권리들82호(2023)/시나브로 2023. 12. 30. 13:31
고경빈 수습위원
《존엄성 수업》 표지. ⓒ바다출판사 너, 나, 우리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다. 아니, 사람만 있는가. 개, 고양이, 풀과 바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것들까지. 이 모든 것들은 각자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책 《존엄성 수업》에서는 이 모든 것들의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인간에게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 자유와 권리, 즉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는 ‘권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래동화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들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그 예시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못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인간과 권리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른 존재들이고 서로들 잘 모르기에 존중해야 할 이유와 존중하는 방법을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재판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아동권, 성소수자의 권리, 동물권 총 14개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이 책을 통해 존중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뎌보자. 성심은 이 중 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표현의 자유, 아동권, 성소수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다르지만 같은 것 ― 인간의 존엄성, 생명권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모두 존엄성을 가진 하나의 개체이다. 인간의 존엄함은 곧 기본권리이고, 이는 천부인권의 개념이다. 이는 인간인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 자유나 평등 따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0조에서 천부인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는 이러한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저자는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주장은 모든 인간의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동등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인간의 도구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은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혹은 타인을 쉽사리 도구화하고는 한다. 심지어 자신까지도 말이다. 이 점을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목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 존재든 인간 생명이든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이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2
인간의 존엄은 우선 생명과 크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있어야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목숨의 무게는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목숨이 빼앗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것 중 가장 끔찍한 건 바로 전쟁이다. 《존엄성 수업》에서는 전쟁을 두고 제도는 아니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벌어지는 인간의 관행이라고 설명한다. 전쟁은 살해를 전제로 하고 의도된 살인을 정당화한다. 저자는 묻지마 살인이라던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를 두고 가장 질 나쁜 살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쟁터에서는 이런 살인 행위가 매일 같이 일어나고 모두가 행한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사망자는 늘어난다. 자국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도구화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터에서의 살인은 더욱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이루어진다. 백린탄과 무차별 폭격은 물론 하고 어린아이들이 있는 학교, 환자가 많은 병원 등을 집중적으로 폭격하는 일도 적지 않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더 많이 죽일수록 목적을 달성하기 쉬워지니 말이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많이, 쉽게 짓밟는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디선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이 끔찍한 나날을 끝내기 위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권리와 윤리 ― 표현의 자유
헌법 제22조 1항에서는 예술의 연구·발표·논의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며,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원칙이다. 자유적 기본권 중 정신적 자유에 속하는 개념으로 예술창작의 자유와 예술표현의 자유가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성심은 예술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해 보고 싶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아마 대부분은 당황스럽거나 싫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질문은 실제 문단계에 있던 일이다.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인물 ‘영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밝힌 사람이 등장했다. 편의를 위해 A씨라고 칭하겠다. 이 A씨는 작가가 동의 없이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자기 성적 지향을 포함해 누군지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보를 소설 속 인물로 재현해 원치 않게 성정체성이 공개되는 ‘아웃팅’¹ 피해를 두 차례나 입었다고 호소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해명하긴 했지만, 출판사는 별다른 수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작가 역시 창작의 영역이었다고 밝혔다. 여론이 악화되고 A씨가 아닌 다른 이의 추가 폭로가 나오자 출판사는 급하게 책 판매를 중단했다. 3 사과하는 사람은 없고, 법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어 이는 법으로 해결하기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즉,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4
¹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성 정체성을 불특정 다수에게 폭로하는 일로, '커밍아웃(Coming out)'의 반대 개념이다. 즉,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김봉곤, 《여름, 스피드》 표지. ⓒ문학동네 책에서는 검열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당연히 검열은 문제가 된다. 우리는 보도지침, 금서, 금지곡 등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역사를 겪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창작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해 봐야 한다. 창작자는 권리가 있고, 존중하는 만큼 윤리적으로 작품을 쓰는 것은 창작자의 책임과 의무의 문제이다. 창작 윤리의 관점에서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헌법에서도 언론 및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한 만큼² 충분한 숙고가 필요함은 틀림없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타인의 인격을 모욕하고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까지 가질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²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대한민국헌법」 제21조 4항).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것들 ― 아동권
우리는 모두 아동이었다. 누군가의 배려와 사랑으로 자랐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찾기 힘들다. ‘노 키즈존’³이 바로 그 예시다. 요즘은 어렵지 않게 당당히 어린이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업장들을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이 있기에는 위험하다, 아이들이 시끄러워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된다, 등 여러 이유를 댄다. 이게 과연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당연한 어른들의 몫이다. 이렇게 아이들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혐오이며, 아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다. 이 주제를 이번 성심교지 82호 뫼비우스 띠 이승연 편집위원의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머지않아 노인이 될 당신에게>에서 보다 더 상세히 다루고 있다.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슬픔이나 기쁨은 어른의 세계에도 아이의 세계에도 공통으로 존재한다. 기뻐하는 모습이나 슬퍼하는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다르게 보고 차별한다. 아이의 감정은 단순한 것으로 취급한다. 단순하게 본다는 것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들을 어른의 하위개념으로 보고 독립적이고 존중받아야 할 한 명의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그러진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의 세계와 그들의 정당한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³ no kids zine. 영유아나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를 동반한 고객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음식점, 카페 따위를 말한다.
내 사랑은 너와 같다 ― 성소수자의 권리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성별끼리 사랑하는 이성애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에 동성애자만 포함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끌리는 양성애자, 성별과 정체성에 상관없이 끌리는 범성애자도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재한다. 오렌지만 과일은 아니라는 소제목처럼, 이성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던가, 그런 건 아닐 테다. LGBTI⁴의 무지개는 저마다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의 사람들이 다양한 사랑을 하는 것이지 절대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배척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성소수자는 우리 존재의 일부이며 세계 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성소수자를 이해한답시고 특별한 형태의 사랑인 양 과장하거나 강조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인, 즉 소수자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권리가 있고,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는 것 역시 각자의 몫이다. 이들의 사랑을 교정하거나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사회적 억압이며 폭력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중 <그 여름>이라는 작품에는 2052년의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을 그리는 연극을 2022년에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미래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물론 세상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언젠가는 동성애자 커플들이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관계증명서에 나란히 이름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순간들을 많이 마주한다. 결혼과 관련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배우자가 갑자기 쓰러진다고 해도 병원에서 보호자의 신분으로 있기 어렵다. 이처럼 사랑을 인정하지 않아 겪는 기본적인 권리들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당장의 변화가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기본적인 의식 개선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레즈비언 커플인 김규진, 김세연 커플은 국내 처음으로 임신과 출산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현재 행복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결심을 했다고 전했다. 그들이 행복하다는데 그것을 법이, 사회가 막을 이유와 권리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5
⁴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intersex) 성 소수자.
성소수자의 상징인 프라이드 플래그. ⓒpixabay 반짝이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지금까지 《존엄성 수업》에서 언급된 다섯 권리를 이야기해 보았다. 아직 다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 물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는 것도 맞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모습이 다르다. 그만큼 서로의 반짝임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성심은 여러분이 가진 저마다의 반짝임을 응원할 것이다.
- 1. 차병직, <존엄성 수업> 책 소개 – 온라인 교보문구 제공. [본문으로]
- 2.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천부인권) [본문으로]
- 3. "소설속 영우입니다" 또 사생활 아우팅…김봉곤 책 판매중지, 김호정, 중앙일보, 2020.07.1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28040> [본문으로]
- 4. “강제 아웃팅” 김봉곤, 또 사적대화 인용 논란…도서 판매 중지, 정봉오, 동아일보, 2020.07.17.,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717/102025667/1> [본문으로]
- 5. “언니 봐봐, 여기 진한 두 줄”…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장수경, 한겨레, 2023.06.30., <https://v.daum.net/v/2023063005052028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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