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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뒤의 사생활82호(2023)/시나브로 2023. 12. 30. 05:23
이채희 수습위원
들어가는 말
그림 1. <임옥상 작가 공판 사진> ⓒ연합뉴스 2023년 6월, 한국 미술계에는 ‘임옥상 쇼크’가 번졌다. 유명한 민중미술가인 임옥상 씨가 성추행 혐의로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운동과 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해 온 진보 미술계의 대표 작가다. 1980년대 초에는 ‘현실과 발언’의 창립 주역으로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미술운동을, 1980~1990년대에는 민족미술인협회를 통해 예술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2016년에는 촛불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미술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임옥상 씨는 2013년 8월 자신이 운영하는 미술연구소 여직원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고,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작가적 위상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앞으로의 활동 역시 불투명해졌다.
임 씨의 사건 이후,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비위 행위를 한 공인의 생산물을 공공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공간에서 대중이 향유하게 하는 게 맞느냐는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특히 그의 연구소에서 200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진행해 온 약 200여 점의 공공 조형물들은 철거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당연히 철거해야 한다는 비판론이 있지만, 작품은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성심은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며 예술계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인 ‘작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있는가’에 단계적으로 물음표를 던져보려 한다.
유죄 판정 그 이전과 이후
임옥상 작가는 1980년대 이래 ‘민중미술’이라고 불렸던, 현실 비판적 사실주의 진영에서의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 유명 작가가 되었다. 특히 정치적 탄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한국의 70년대와 80년대에 선도적으로 민중 운동을 이끌었던 예술가 중 한 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임 작가는 ‘현실과 발언’의 창립 이후 민족미술인협회 등을 통해 정치 현실에 뛰어들었고, 시대적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대응하고 변주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는 다양한 매체의 표현에 능숙한 화가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조형물, 퍼포먼스,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분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 반경을 넓히기도 하였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연구소를 세워 전국 각지에서 공공조형물 작품을 진행하였다.
좌측 상단부터 오른쪽으로 그림 2. <대지의 눈> ⓒ뉴시스, 그림 3. <서울을 그리다> ⓒ서울시, 그림 4. <하늘을 담는 그릇> ⓒ서울시. 좌측 하단부터 오른쪽으로 그림 5. <무장애 놀이터> ⓒ서울시, 그림 6. <광화문의 역사> ⓒ서울시, 그림 7. <임옥상 작가 작품 철거 사진> ⓒ뉴스1 특히나 그의 작품은 대검찰청, 청와대, 정부 청사, 지하철역 등 국가 시설 및 공공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공간에 공공미술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이번 사건 이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서울시는 임옥상 작가의 법원 1심 판결 이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유지, 보존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논의 과정 내, 시민의 힘으로 함께 만든 작품이기에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과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결국, 1심 이후 시립 시설 내에 설치·관리 중인 임옥상 작가의 작품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 남산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 기억의 터에 설치되어 있는 ‘대지의 눈’(그림 2)과 ‘세상의 배꼽’을 시작으로, 서울시 서소문 청사 앞에 있는 ‘서울을 그리다’(그림 3),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의 ‘하늘을 담는 그릇’(그림 4), 성동구 서울숲에 있는 ‘서울숲 무장애 놀이터’(그림 5), 종로구 광화문 역에 있는 ‘광화문의 역사’ (그림 6)의 철거 계획을 밝힌 이후 실제 모두 철거가 완료되었다. (그림 7)
임옥상 씨의 작품은 현재 전국 각지에 공공미술품을 포함하여 약 200여 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작품이 소유자, 구조상 등의 문제로 철거와 존치 사이에 놓여 있다. 구조상 손 쓰기 어려운 경우의 상태이거나 시립 시설에 설치되지 않은 다수의 작품은 개인 소유물인 경우가 많고, 이러한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전시되어 있어도 지자체가 손 쓰기 쉽지 않다는 이유이다. 서울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 세운 ‘대지의 아들 노무현’, 경기 화성시 매향리 평화 기념관에 있는 ‘매향리의 시간’, 제주 김창열 미술관의 ‘김창열 조각상’ 등이 모두 임 씨의 작품이다. 또한 대검찰청에 있는 ‘이준 열사 흉상’과 민주당사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도 임 씨의 작품이다. 대검은 앞서 임 씨의 작품인 흉상들을 철거하기로 한 계획을 실행하였으며, 다른 작품들도 여전히 철거 논의 과정에 있다. 과연 수십 개의 임 씨의 작품들은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임옥상 작가의 유죄 판결 이후, 잇따른 결과는 작품 철거 여부뿐만이 아니었다. 문체부는 판결이 확정되는 대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옥상 작가에 따른 재정지원 중단 또는 배제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7월 7일 미술관 유튜브 내 작가 관련 영상 6건을 비공개 처리하는데 이어, 홈페이지 소장 목록에 있는 임 작가의 작품 24점과 작가 관련 전시·교육프로그램 콘텐츠를 모두 비공개 처리했다. 아울러, 앞으로 전시출품 배제, 미술관이 진행하는 교육·심포지엄·행사 등 모든 행사에 대한 참여 금지 등의 조치를 하였다. 그렇게 임옥상 작가는 대중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영원히 볼 수 없는 작품들
임옥상 씨가 이 논란의 첫 사례가 된 것은 아니며 과거에도 존재하였다. 후배 시인을 성추행한 고은 시인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고은 시인은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성폭력 사실이 폭로되며 모든 분야에서 제명되었다. 서울시는 고은을 기리기 위해 3억 원을 들어 서울시청사에 조성한 ‘만인의 방’을 즉시 철거하였고, 다른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들도 기념사업을 모두 취소했다. 수원시는 고은재단과 함께 건립을 추진 중이던 ‘고은 문학관’ 건립을 전면 철회하였고 권선구 올림픽 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 아랫단 우측에 설치되어 있던 고은의 추모 시를 철거하기도 했다. 포항시나 경기도는 작품 위에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이름을 스티커로 가리는 등의 방법으로 철거를 진행하였다. 그렇지만 고은 시인의 경우, 시인이라는 특징에 따라 실제 작품들을 볼 수 없을 뿐 여전히 시들은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임옥상 씨와는 차이점이 있다.
미술가가 아닌 문화·예술인의 사생활
작품 뒤의 범죄사실이 미술가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연예인이라 불리는 연예계의 경우, 다양한 이들이 활동하는 만큼 알려진 범죄 이력도 다양하다. 음주운전은 물론 폭력이나 성범죄, 사기나 금융 범죄 등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죄목은 거의 다 존재한다. 대부분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은 범죄 사실이 인정된 이후 출연 금지 처분을 받고, 흔히 ‘자숙’이라고 표현하는 기간 동안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을 갖는다. 이에 따라 방송 출연과 자료 화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그 연예인이 출연한 프로그램 방송분은 다시 보기가 제공되지 않으며 영상 판매까지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술가처럼 대중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있다. 성매매 알선과 해외 원정도박 혐의 등으로 기소된 승리는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당연히 이에 따라 더 이상 승리는 방송에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 ‘승리’만을 검색해 보아도 여전히 과거에 출연하였던 방송 영상들은 물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노래까지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수개월, 몇 년이 지난 후에 손쉽게 복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승리와 같은 그룹의 ‘탑(최승현)’은 대마초 혐의로 2016년에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지만 7년 후인 2023년, ‘오징어게임 2’에 캐스팅되었다. 연예인들이 활동하는 경로가 다양해지며 복귀 제한이 없는 전과 연예인의 활동 복귀는 더욱 쉬워진 것이다. 같은 ‘범죄 사실’과 다른 ‘결과’의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작가와 작품, 그 사이의 연결고리
작가와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 과연 이 연결고리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미술관에 가도, 문학 작품을 읽어도 대부분 당연하게 작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떤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작품들에 애정을 갖기도 한다.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작가의 화법이나 문체 덕분일 수도, 특유의 표현력 덕분일 수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연관성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감상할 때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이지만, 이는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작품에는 당연하게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담기기도, 작가가 속한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작품을 통해 작가의 신념이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우리는 더욱이나 아무리 훌륭한 예술품을 낸 작가라 하더라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면 곧바로 등을 돌리고는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작품을 좋아한다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창작자’를 옹호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미술계는 물론 문화·예술인의 범죄 후 활동에 대한 정확한 제한이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창작자와 작품을 동일시할지, 분리할지를 일관적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한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기도, 추후 문화·예술 분야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중요한 담론주제이기에 이번 사안을 통해 공론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끝내는 말
미술계는 임옥상 씨의 사건에 대해, 위안부 추모 조형물(‘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등 성추행과 직결되는 공공작품의 철거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작가 의식이 반영된 다른 조형물들의 철거 여부는 작품마다 성격과 관점이 다를 수 있어 미술계와 지역사회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들을 냈다.
작가의 명성이, 분명한 범죄사실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문화에 있어 마약이나 성추행과 같은 범죄 혐의가 있던 음악가의 음반이 불태워진 적이 있었던가. 방송인의 드라마나 영화 작품이 영원히 지워진 적이 있었나. 범죄 혐의가 있는 음악가와 방송인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쉽게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노래를 찾아 듣고,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과 비난은 작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맞다. 창작물의 대부분은 작가가 살아온 신념과 사상, 겪어온 시대들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회적 물의가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지속해서 소비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문화·예술 분야에 따라 대응의 정도가 상이한 것은 올바른 대처 방법이 아니다.
과연, 작가와 작품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연결고리들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신에겐 작가가 먼저인가, 작품이 먼저인가?
참고 문헌
1. 노형석, 『임옥상 징역형에 미술계 충격.. 공공조형물 200점 철거되나』, 2023.08.28,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04707.html> 마지막 검색일: 2023.11.13.
2. 장진복, 서울신문, 『민중미술가 임옥상 강제추행 유죄.. 서울시 “작품 조속 철거"』,2023.08.17 , 서울신문, <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817500216&wlog_tag3=naver> 마지막 검색일:2023.11.13.
3. 김휘원, 『서울시, ‘성추행' 임옥상 작품 6점 내달부터 철거한다.』 2023.07.28,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seoul/2023/07/28/LK6K2ZPRCJBTFJOBLNQ4M543DU/> 마지막 검색일:2023.11.13.
4. 최인규, 『경기 지자체, 성추행 논란 임옥상 작품 철거 ‘신중론' 』, 2023.09.07, 인천일보,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0696> 마지막 검색일:2023.11.13.
5. 이슬비, 『대검, 임옥상 작품 ‘이준 열사 흉상' 철거』 , 2023.09.07,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3/09/07/XOHYTXFXB5F5JCZNVY2M7NBJIA/> 마지막 검색일:2023.11.13.
6. 양진영, 『문체부, 임옥상 작가 공공지원 중단· 배제키로』, 2023.08.18, 뉴스핌,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30818000821> 마지막 검색일:2023.11.13.
7. 장수현, 『‘강제추행’ 임옥상 작품 잇단 철거.. 작가와 작품은 별개인가, 아닌가』 2023.09.04, 한국일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90316050000405>, 마지막 검색일: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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