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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77호/취재기 2020. 11. 27. 16:00
박연지 수습위원
형법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 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 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의사 낙태죄 조항)이 각각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판결1)을 내렸다. 따라서 본 조항들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해야 한다.
입법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아 최근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작업의 막바지에 돌입했다. 정부는 지난 8월 말 5개 부처 차관 회의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가 아니라 낙태 허용 기간을 ‘임신 14주 내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견해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과 상반된다. 여전히 낙태는 범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낙태죄’ 존치 시도에 저항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 행동’(이하 모낙폐)은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의 완전 폐지와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2)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 당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3)’이기도 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정부가 ‘낙태 허용 기간’으로 제시한 ‘임신 14주 내외’는 여성이 임신 사실과 정확한 임신 주 수를 인지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본인이 처한 신체적‧사회적‧경제적‧심리적 상황을 깊이 고려해 임신 중지를 결정하고 실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진은선 장애여성공감활동가는 획일적 임신 주 수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모든 여성에게 실효 가능한 절차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성적 불평등과 사회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놓인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모르거나 몸을 통제하는 권한 자체가 타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며 “차별받는 위치에 있을수록 적절한 시기에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이미 한 차례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고 정확한 주 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획일적 임신 주 수 기준으로 형벌을 면제하거나 부과하는 것은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나 타당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4)
“우리의 낙태죄 폐지 요구는 국가에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나영(‘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대표)
모낙폐는 “처벌이 아니라 권리 보장이 답”이라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중요한 의미는 “처벌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국가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제도적 개선의 노력은 충분히 하지 못하면서 형법적 제재, 위하5)로써만 낙태를 금지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나아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서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여성들에게는 출산만큼 임신 중지도 자신과 아이의 삶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처벌이 두려워 임신 중지를 하지 않을 여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갈 조건이 달라진다면 임신의 유지를 결정하게 될 여성들은 많습니다.”
- 나영(‘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대표)
임신 중지의 감소는 ‘낙태죄’를 존치하여 여성을 처벌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임신 중지의 감소는 처벌이 아니라 지원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6) 임신 중지의 감소를 위해서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 여부를 고민할 때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여성의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이 적극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7)
지난 10월 7일 정부는 ‘낙태죄 개정안(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가 내놓은 ‘낙태죄 개정안’은 임신 초기인 14주 내에는 조건 없이 임신 중지를 허용하고, 15~24주 내에는 성범죄나 사회적‧경제적 등의 이유가 있으면 임신 중지를 할 수 있게 했다.8) 또한 해당 개정안에는 임신 주 수에 따른 제한, 사유 제한, 상담 의무화와 강제 숙려기간, 의사 거부권 조항 등의 규제 조항들이 담겨있다. 국제인권기구들은 상담 의무화와 숙려 기간 제도에 대해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절차가 생길수록 임신 중단의 시기가 미뤄지고 임신 중단을 방해하는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9)
평등한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과연 이 국가는 모든 국민의 평등한 삶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현재 국가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건강권 및 성과 재생산 권리의 보장을 위한 사회적‧제도적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의 무책임함에 따르는 문제들을 ‘낙태죄’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형법상 ‘낙태죄’의 존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10)의 보장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분명히 말했다. 낙태‘죄’라는 방식이 ‘임신중절을 줄이는 데 별로 기여를 안 했다’고. 국가는 과연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묻어둘 것인가. 우리는 생생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낙태죄’ 입법 개정 시한인 2020년 12월 31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주>
1) ‘헌법불합치’ 판결은 해당 법률이 위헌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개정 시한 전까지 해당 법률은 유효하다.
2) 여성의 피임, 임신, 출산에 관한 선택권 및 성관계, 피임, 임신, 임신중절, 출산, 양육 전반에 관한 결정권 등 여성의 삶의 맥락에서 성과 재생산에 관한 종합적인 건강 권리로서 파악되는 것.
[출처 : 전윤정. (2020). 성·재생산권으로써 낙태 권리를 위하여 - 낙태제도 변동의 쟁점과 방향. 페미니즘 연구, 20(1), 11.]
3) 1990년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서 낙태죄 처벌 폐지를 위한 시민 행동이 일어난 날을 기념하며 제정되었으며 2011년 ‘재생산권을 위한 여성 글로벌 네트워크(WFNRR)’가 이날을 국제 기념일로 선포했다. [출처 : 조성은, 낙태죄 비범죄화 국제행동의 날...“국가 허락이 아니라 국가 책임”, 2020.09.28.,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2814181734828> 마지막 검색일: 2020년 10월 4일.]
4) 김진호, 법무부 양성평등위 “형법 낙태죄 조항 전면 폐지” 권고, 2020.08.21., KBS,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2598&ref=A> 마지막 검색일: 2020년 10월 4일.
5) 형벌의 목적으로, 잠재적 범죄인인 일반인에 대한 위협을 통하여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6) 박정훈‧이희훈, 낙태죄 폐지 32년, 캐나다의 결론 “없어도 괜찮다”, 2020.10.25., 오마이뉴스, <http://omn.kr/1pth5> 마지막 검색일: 2020년 11월 5일.
7) 형법 제 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2019. 4. 11. 2017헌바127]
8) 정희완, 정부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입법 예고‧‧‧임신 24주까지만 임신 중단 허용, 2020.10.07.,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71346001> 마지막 검색일: 2020년 11월 2일.
9) 박정훈‧이희훈, 낙태죄 폐지 32년, 캐나다의 결론 “없어도 괜찮다”, 2020.10.25., 오마이뉴스, <http://omn.kr/1pth5> 마지막 검색일: 2020년 11월 5일
10) 자기 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형법 제 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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