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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취재기 : 나아리로 가는 길76호/취재기 2020. 5. 30. 22:40
엄아린
사진 성심 나아리 마을은 경주시에서도 약 1시간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나온다. ktx를 타고 신경주역에 내려 경주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30분, 다시 양남행 150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이제는 익숙하다. 멍하니 차창 밖을 보면서 나를 자꾸 이곳으로 이끄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지난 겨울 찾았던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의 농성 천막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 성심 교지의 애독자라면 지난 75.5호의 <월성원전 취재기>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도 성심은 나아리 마을을 찾았다. 취재지로 나아리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이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 때문이다. 원전홍보관 앞에 위치한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의 농성천막을 찾아 마을주민 김진일님과 황분희님을 인터뷰했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원자력발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을 찾았다. 그때의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원전에선 방사능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방사능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 원전에서는 사고가 날 수 있고 그 사고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처럼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였다. 그런데 한 시간 가량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생겼다.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지?’
이후 방학 동안 교지 구성원들과 원자력 세미나를 함께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 배워보면 우리사회가 원전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긴 했어도 합리적인 곳이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원전시스템은 알면 알수록 이상했다. 불평등이라던가 정의라던가 그런 차원의 문제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문제도 있었지만) 상식에 반하고 득과 실을 따져 봐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사진 성심 우선 원자력발전소라는 말부터 이상했다. ‘원자력’ 발전이라고 하면 대단히 첨단적이고 새로운 발전 방식이라고 생각되지만 결국엔 화력발전과 똑같다. 화력발전은 물을 끓인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발전한다.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다. 다만 화력발전이 석탄을 태워 열을 발생시킨다면,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연소시킨다는 차이일 뿐이다. 어찌됐든 둘 다 물을 끓이는 기계다. 원전이 바다 근처에 밀집한 이유는 발생시킨 열이 너무 커서 물도 그만큼 많이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가 그저 ‘바다 데우기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무함이 내가 마주한 첫 번째 비상식이다.
두 번째 비상식도 기술적인 문제다. 인간은 원자력발전으로 발생한 열을 끄거나 식힐 수 있는 기술이 없다. 한번 들어간 핵연료는 밤낮없이 물을 끓이다가 4년이 지나면 수명을 다하는데, 아직도 뜨거워서 물통(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수조)에 넣어 식혀야 한다. 식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년 정도다. 뜨겁기만 하면 다행이겠는데 방사능이라는 독성 물질도 내뿜는다. 그리고 무려 10만년에서 100만년이 지나야 방사능이 모두 사라진다. 이 사용후핵연료의 이름이 바로 ‘고준위핵폐기물’이 되겠다. 끌 수 없는 불을 왜 지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쓰레기를 만든 사람과 이를 처리할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비합리적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사회적 책임’ 아니던가? 원전시스템에서는 그런걸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세 번째 비상식은 내가 이것을 모르고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쓰레기를 처리할 사람은 미래가 창창한 우리들인데, 왜 중요한 정보는 소수의 ‘전문가’가 독점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탈핵 입문서로 손꼽히는 도서 제목 중 하나가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지만 업보가 되긴 한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욕을 많이 먹지만 사실을 말해주는 기사도 많다. 참고를 위해 탈핵을 다룬 기사들을 많이 봤는데 단골로 등장하는 댓글이 아주 재밌다. ‘그러는 너도 전기를 쓰는 주제에 징징 대지 말라’는 식이다. ‘대책 없이 원전을 세우면 밤에는 잠만 잘거냐?’라는 댓글도 있었다. 징징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셨던 본교 이영희교수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수님과의 인터뷰가 수록된 <대안은 있다. 그린뉴딜!> 기사에는 원전을 멈춰도 살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다. 합리적인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 본 취재기는 <특집 : 대전환> 3. “원자력은 대안이 될 수 없다”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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