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찰구를 빠져나와 셔틀버스를 탄다. 정문을 지나 세 번의 정차 후 드디어 마지막 정류장. 몇 남지 않은 학생들이 하나 둘 버스를 내리고, 나는 우리 학교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음악과 단독건물, 콘서트홀로 향한다. 각종 악기소리가 어우러져 희미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선율은 다가설수록 또렷해지고 어느새 귓전에 와있다. 연신 선배들께 인사를 하며 입구를 통과한 후 어둑어둑한 로비를 지나 도착한 연습실은 오늘도 만원. 실기시험기간인지라 아침 일찍 학교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실 예약종이에는 나보다 한 발 더 빨리 예약해놓은 학생들의 이름으로 꽉차있다. 혹여나 남은 곳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던 중 웬일인가 싶게 발견한 방은 역시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벌써 오래전부터 수리를 요구했지만 그대로 방치되어있고 덕분에 지금처럼 낚이는 수가 많다. 다가오는 레슨시간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캄캄한 연습실에라도 들어가서 연습을 해보지만 악보도, 건반도 보이지 않는 이런 방에서 연습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어느덧 레슨시간은 찾아오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레슨실로 향한다. 실기시험을 며칠 앞두고도 아직 암보[각주:1]도 다 하지 않은 나에게 매우화가 나신 선생님의 분노의 찬 목소리와 함께 옆방의 피아노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사람 목소리까지 분명하다. 나의 귀에 이렇게 옆방 소리가 선명하듯 저 방에 있는 사람들도 지금 내가 혼나고 있는 이 소리를 다 들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부진한 방음시설이 돌연 원망스럽다. 어쨌든 레슨을 마치고 허겁지겁 다음 레슨을 위해 이동한다. 이번엔 오보에 반주. 어쩐 일인지 오늘은 연습실에서 레슨을 한단다. 이렇게나 많은 학생들로 북적이는 곳에서 레슨이라니! 더구나 빈 연습실도 없을텐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레슨실도 꽉 차있고 차선으로 사용하던 관현악실마저 오늘은 다른 연습이 있는 터라 여기밖에 할 곳이 없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음은 고사하고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곳에서. 하지만 입학 후 첫 실기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 가릴 것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에 어쨌든 피아노 앞에 앉아본다. 반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연주자보다 튀지않는 음색. 그런데 이 피아노는 도무지 음량조절이 되지 않아 시종일관 내가 주가 된다. 게다가 페달 고장까지. 선생님도 당황스러우신지 헛헛한 웃음만 지으며 다음 레슨을 기약한다. 그렇게 여차여차 레슨을 마치고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는데도 연습실엔 여전히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고 나는 하릴없이 로비로 향한다. 나와 같은 처지의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어보니 얼마 전 있었던 음악과 행사인‘오락가락’에 대한 이야기. 모두들 타과 학생들의 부재가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런 것이 정말로 니콜스관, 학생회관을 비롯해 학교 등지에 홍보물을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타과 학생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 한 두 해 있는 일이겠느냐만 그래도 음악과에서는 나름대로 큰 행사가 우리들만의 축제로 전락하는 것 같아 나 역시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음악과에 대한 불만토로로 흘러가고 부족한 연습실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불만들이 끝이 없다.
원대한 꿈을 펼치기엔 너무나 열악한 그 곳
가톨릭대학교의 음악과는 인예대에 소속된 단일학과이다. 예술대학이 존재하고 하위에 음악학부가 있는 여느 학교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소규모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연습실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 어느 것 보다도 치명적이며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현재 우리 학교 음악과의 학생 수는 평균 한 학년 당 45명 안팎으로 합하면 총 180명 가량이 된다. 휴학, 군 복무 등 이것저것 감한다 하더라도 150명 정도인데 연습실의 개수는 50개가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 연습실이 온전히 하나의 전공학생들만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피아노, 성악, 관현악 할 것 없이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고, 때문에 성악이나 관현악 학생들이 연습할 때에 옆에 있는 피아노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것으로 왜 애초에 피아노 전공 학생들만을 위한 연습실을 30개 남짓으로 만들고 다른 전공 학생들을 위한 연습실을 따로 만들어 구분 짓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타 학교들의 사례를 보면 거의 모든 학교에 전공별로 연습실이 마련되어 있고 수원대와 경원대 등 시설이 좋다고 유명한 학교에는 그랜드피아노의 사용마저 자유롭다. 헌데 우리 학교에서는 그랜드피아노는커녕 업라이트 피아노[각주:2]의 사용도 수많은 제약이 있지 않은가. 백번 양보해서 앞서 말한 학교들과는 애당초 비교불가라 치고 우리학교처럼 단일학과로 존재하고 있는 세종대와 비교해보더라도 그 차이는 극명하다. 우선 세종대는 연습실의 수가 넉넉함은 물론이고 각 방마다 난방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밤낮없이 연습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또한 사전에 예약을 해놓으면 그랜드피아노 사용도 언제나 가능하다고하니 오직 레슨 때에만 그랜드피아노를 쳐 볼 수 있는 우리의 입장에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부진한 방음시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얼마 전까지 필자는 성악 전공 학생의 반주를 맡아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에 동행하였는데 정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지금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추어 반주를 해야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옆방의 레슨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왔고, 해서 레슨에 큰 무리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연주자와 반주자가 작은 신호만으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정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비단 성악레슨 뿐만 아니라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레슨시간마다 겪는 고초일 것이다. 다른 건물도 아니고자신의 소리를 듣고 이를 갈고 닦아야 할 음악과 학생들이 있는 콘서트홀의 방음시설이 이 지경이라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 심각한 일이다.
또한 콘서트홀에는 음악을 공부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음악을 듣고자 하면 음반을 직접 구매하러 레코드점까지 가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집에서 들을 수밖에 없다. 타과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다거나 보다 더 알고자 하면 책을 찾아보듯 음악과 학생들도 시시때때로 참고할만한 음반이 필요한 때가 부지기수인데 가까운 데서 들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도서관에조차 음악관련 서적이나 문헌들이 턱없이 부족해 음악과 학생들의 음악소양 발전이 더디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관객은 또 하나의 스승, 함께하는 음악이고 싶다
끝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학교나 타과 학생들의 무관심에 대한 서운함이다. 음악과는 일년에 수차례 크고 작은 연주회를 여는데 곳곳에 홍보물을 게재함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에 참석하는 타과 학생들을 도통 찾아 볼 수가 없다. 각종 과제와 공부에 시달리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 한번쯤 가까운 콘서트홀을 찾아 문화생활을 즐겨볼 법도 한데 관심자체를 두지 않는 것 같다. 미사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에만 콘서트홀에 발걸음을 하는 타과 학생들의 무관심이 조금은 섭섭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음악과에는 소리로 하나 되고자 하는 젊은 베리타스[각주:3]들이 밤낮없이 음악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이후 2학기 때에는 콘서트홀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밤늦도록 연습실은 비지 않았고 이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 가서 연습하는 편이 낫겠다싶어 모두들 일어선다. 어둑어둑한 콘서트홀을 나서며 생각해본다. 음악은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며 상처 난 마음에 대한 약이라 했건만, 이토록 아름다운 영혼의 산물을 창조하리라 원대한 포부를 가지기엔 이 곳 콘서트홀이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근 6년을 고생해 들어온 대학이라는 곳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해 꿈꿔오던 것과는 심한 괴리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나의 학교, 나의 과, 좋든 싫든 내가 머무르며 나의 꿈을 키워가야 할 나의 음악과이다. 가톨릭대학교의 유일무이한 예술학과, 소리로 하나 되는 음악과의 무궁한 발전이 있는 아득한 그 날을 기약해본다.
<추신> 다가오는 가을, 9/29~10/1 오페라공연, 10/14 관악합주, 10/18 추계연주회가 있습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음악과 학우들의 모습을 보러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