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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광고로 유혹하다52.5호/가대in 2010. 2. 26. 19:20
수습위원 소영
‘꿈이 있는 대학, o o 대학입니다.’
‘인재를 만드는 o o 대학’
요즘 광고를 하지 않는 대학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학을 홍보하는 광고를 마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입시철만 되면 대학 광고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이제 일상생활에서 쉽게 대학 광고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의 전광판에서도, 지하철의 광고판에서도, 신문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이렇듯 전국 각지의 대학은 다양한 매스미디어를 사용해 ‘학교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대학들이 광고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일까.
대학, 학생 찾아 삼만 리
과거의 대학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조직이 아닌 지식인을 양성하는 학문의 장으로 공익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여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지식을 넓히고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기 위해 높은 경쟁률 속에서도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대학들은 굳이 돈을 들여 자신의 학교를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다. 1995년 이후로 신흥대학이 대거 설립되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대학 선택의 폭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수험생의 약 80%가 넘는 인원이 마치 필수코스인 것처럼 대학을 진학하지만 몇 해 전부턴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입학 정원보다 적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대학의 모집정원은 늘어나고 학생 수는 줄어드는 ‘대입정원 역전현상’을 겪기에 이르렀다. 위기를 느낀 대학들은 스스로 학생들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 전략과 적극적인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광고는 좋은 홍보수단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대학 광고의 본격적인 시작
1995년엔 광고를 하던 대학이 20여개 안팎이었던데 비해 1998년에는 무려 160여개로 늘어났다. 각 대학은 그 학교만의 특징과 장점을 찾아 특성화하고, 학교의 전경, 분위기, 유명한 인물 등을 내세워 홍보하기 시작했다. 또한 타 대학과 차별화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로 홍보활동을 펼치는 대학들이 있는가 하면, 재미있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홍보활동을 하는 대학들도 있다. 이렇게 대학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고 네임벨류(name value)를 높이기 위하여 광고를 이용해 다양한 이미지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의 브랜드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제 대학도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대학의 홍보활동인 광고, 광고, 광고.
대학광고는 대학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단기적인 목적은 ‘신입생 모집’이다. 그렇다보니 대학광고는 대부분 입시철(수시, 정시 원서 접수 기간)에 집중적으로 집행된다. 입시철에 쏟아져 나오는 광고지엔 ‘신입생 모집’을 위해 모집 인원, 모집 요강, 자격 요건 등을 공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각 대학들은 너도나도 학생 유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과열 경쟁 속에서 대학들은 파격적이고 새로운 스타일의 광고로 학생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광고들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허위광고와 과대광고는 물론 ‘학문의 상아탑’이라고 불렸던 대학의 옛 광명은 집어던진 채 전문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광고문구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학 광고 비판하기
2009년 3월, 노이즈마케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큰 이슈를 몰고 왔던 광고가 하나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의 광고이다. 고려대는 2009 그랑프리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부문에서 우승을 한 김연아 선수의 우는 모습을 광고로 편집하여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었다. 물론 광고에 김연아 선수의 모습이 담겼다고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허나 광고지 속 문구는 많은 사람들의 질타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고려대,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 김연아 선수를 마치 고려대에서 키워낸 듯, (김연아 선수는 고려대 입학 결정 후, 딱 한번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부산을 떠는 모습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모 배우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은 꼴이며, 혹자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 여학생이 힘겹게 일궈 놓은 출세에 빈대 붙어 치졸하게 덕이나 보기 위해 잔꾀나 부리는 꼴인 것이다.
동덕여자대학교의 광고지다. 이 광고지에서 동덕여대는 [교육을 받다? 실용을 맛보다!] 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슬로건의 뉘앙스는 상당히 묘하다. ‘교육을 받다.’ 라는 문구에 물음표를 붙임으로써 ‘교육을 받는다는 것 일까? 받지 않는다는 것일까?’ 라는 애매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뒤이은 ‘실용을 맛보다.’ 라는 문구에는 느낌표가 붙는다. 이로 인해 이 광고를 통해 본 동덕여대는 실용성, 전문성을 강조하는 대학으로 비춰진다. 또한 졸업한 후에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스펙 쌓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가르친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영남대학교는 ‘천마 인재학부’를 광고하면서 고위공무원, CEO, 약사, 의사가 되는 길을 인도하겠다는 과감하고 직접적인 카피로 화제가 됐다. 필자는 이 광고를 접하고 나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대학은 정말 취업을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는 그 이야기와도 부합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청년실업인구가 100만에 육박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지음. 2007년 레디앙 펴냄. 라는 책을 읽으며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런 20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대학은 친히 나서서 학문의 중심이기를 포기하고 전문적인 직업인을 양성하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 사실을 광고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많은 대학들은 앞 다투어 취업률 1위, 전문직 종사비율 1위를 광고카피로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몇몇 대학교의 광고카피를 보고 있노라면 취업 전문 학원의 홍보물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공무원사관학교라는 별칭이 붙는 학교도 있다). 고등학교가 어떻게든 학생들을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려는 것처럼 이제 대학도 좋은 직종에, 높은 고위직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광고지를 통해 그러한 현실과 마주할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최근 국내 대학 광고는 노골적으로 타 대학과 자신의 학교를 비교하는 광고로 변모했다. 대학들은 ‘우리 대학이 다른 대학보다 훨씬 좋으니 이리로 오라’ 는 식의 광고를 하고 있다. 그 중, 서울대와 KAIST는 비교 광고를 위한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바로 고려대학교 광고이다. 고려대학교는 서울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면서 하나 빼고 고려대가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 이 광고를 접하고 나서 비교대상이 된 서울대와 비교대상에서 제외 된 연세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광고로 연세대학교 광고가 있는데, 연세대는 상징동물을 사용해 고려대를 깎아내리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독수리(연세대 상징)’와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호랑이(고려대 상징)’ 그림. 그에 [안중에도 없다]라는 문구를 광고지에 삽입함으로써 ‘고려대는 연세대에 상대도 되지 않는다.’ 라는 인식이 들게끔 만들었다.
드러내놓고 비교하는 이러한 광고들은 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사이의 불화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실제로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들의 연고전, 고연전 명칭에 관한 신경전도 대단하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불쾌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러한 광고들이 대학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과열시키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한 연구결과
‘대학광고의 크리에이티브 유형별 효과 연구’, 이영화 홍익대학교 (2008년) 에 따르면 광고가 대학선호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며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총 변량 중 약 63.3%를 설명하는 것으로 광고 선호도가 대학선호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대학 선호도 또한 위와 비슷한 결과로 광고가 좋으면 그 대학에 대해 호감이 생기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손쉽게 광고를 접하고 있는 만큼 알게 모르게 광고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대학광고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광고가 숨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하고 올바르게 꿰뚫어 본 뒤,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52.5호 > 가대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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