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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에서 A로 산다는 건52.5호/가대in 2010. 2. 26. 19:27
편집위원 정승균
A는 대학생이다
A는 부천시 원미구 역곡2동 원미산에 위치한 가톨릭대를 다니는 대학생이다. 군대도 다녀오고 몇 학기 휴학을 하다 보니 어느덧 고학번 축에 속하게 되었다. 그가 A인 이유는, 단지 그가 A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A로 시작하는 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알파벳 중 가장 앞에 있어 쉽게 쓰이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대학을 가로지르는 잣대인 A, B, C, D, F의 평가기준에서 가장 높은 A등급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마치 소고기 중에서도 굳이 맛보지 않아도 입에서 살살 녹을 듯한 느낌을 주는 1등급 한우처럼.
지금 학교를 올라가면서 A는 한숨이 나온다. 언제부터인지 학교에는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보다 외부의 학원이나 기업에서 붙인 포스터가 더 많이, 아니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지만, 다시 수업이 있는 니콜스관 강의실로 향한다.
수업에서 남는 것은 성적뿐이다
오늘은 수강신청 변경 후 첫 수업이다. A가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빠른 눈놀림으로 수강생이 몇 명인지를 파악한다. 원체 마이너한 수업이다 보니 분명 20명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휴~’ 딱 봐도 15명 안팎이 분명하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진다. 가톨릭대 학생들에게 수강신청 인원 20명은 숫자 그 이상이다. 20명부터 점수별 인원비율이 정해진 상대평가가 되고, 그 미만인 수업은 인원비율 없이 교수의 판단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절대평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이 시간이 더 가까워지면서 강의실을 들어오는 학생이 하나, 둘 늘어가고 A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점점 사라진다. 교수가 들어오고 출석을 부르면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여러분 수강생이 딱 20명이네요. 안타깝네요” ‘20명에 상대평가는 너무 잔인하잖아. 아, 어떤 눈치없는 자식이 막차 타가지고’ A는 20번 번호를 달고 들어왔을 어떤 ‘놈’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다. ‘그래, 마음 편히 먹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스무번째 수강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일이 생겨 휴학할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겠지, 아니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해봐도, 며칠이 지나도록 그 ‘놈’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A는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평가에 매달렸는지 한심스럽게 느껴졌지만 당장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주일 뒤 다시 그 수업에 들어갔을 때 ‘대인배’ 수강생 하나가 수강신청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안도감의 한숨을 쉰다. ‘죽일 놈’이 ‘대인배’가 되는 건 누군가 수강신청을 포기하는 그 순간이다. 이 상대평가라는 놈이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것이, 상대평가라는 기준은 모두가 성실히 수업을 듣고 공부한다해도 누군가는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성적표에 기록이 남기 마련이다. 모두가 더 열심히 공부한다면,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열심히,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강의실 안 내 옆자리는 동기이자, 친구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점수를 놓고 벌이는 경쟁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A는 수강신청을 할 때 민감해지고는 했다. 처음 대학을 들어왔을 때는 거의 학과에서 짜준 대로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점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 자신의 선택지에는 ‘졸업을 위해 꼭 들어야만 하는 수업’과 ‘점수받기 쉬운 수업’ 밖에는 남지 않았다. 관심이 가는 내용이지만 과제가 많거나 평가가 박할 경우에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수업은 무엇을 새롭게 알고 깨달았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점수를 받았느냐가 더 중요하게 남는다. 뭐, 생각해보면 수능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초․중․고 12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보다 대학을 결정해주는 점수가 더 중요하니.
스스로를 비판적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A는 이런 자신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A에게 성적(그리고 그에 따른 장학금)에 따라 아르바이트의 숫자와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등록금 걱정 외에도,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 외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성적은 자신의 대학생활을 성실해 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A는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동아리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업이 끝난 A는 후배와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니콜스 신도림
니콜스관 4층의 유일한 출구. 본래 좁은 통로인데다가 옆으로 다닥다닥 동아리방과 과방이 위치하고 있고, 니콜스관에서 과도하게 많은 수의 강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시간 50분에서 정각사이에 인구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역이며, 그 혼잡도는 지하철 1·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과 맞먹는다하여 붙여진 이름 을 지나면서 여러 동아리방들을 보고 A는 잠시 옛날 생각이 났다. A가 처음 대학을 들어왔을 때만하더라도 대학은 그나마 지금보다 낭만적이었다. 그때도 사람이 없다고 난리를 쳤었지만 동아리들 마다 적더라도 새내기들이 꾸준히 들어왔고, A도 친구들과 이 동아리, 저 동아리, 이 학회, 저 소모임을 돌아다니며 선배들에게 술을 얻어먹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엔 ‘학교에서 술병이 없는 날이 없다’는 교수님의 훈계를 듣기도 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학교는 적막하기만 하다. A가 오랜만에 찾아가 본 동아리방도 예전처럼 시끌벅적하지 못하고, A가 잠깐 몸담았던 동아리 중 하나는 동아리원이 부족해 문을 닫아 동아리방도 없어진 상황이다. 아직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의 얘기를 듣자니 동아리들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투자동아리나 창업동아리, 그리고 영어 관련 동아리는 더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어떤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볼 정도라고 하니, A와 후배는 씁쓸하게 웃는 수밖에. 물론 A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모두 취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걸. 사실 A도 제대하고 복학한 후에는 학과 공부, 자격증 공부 때문에 이전에 몸담고 있었던 동아리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동아리들도 경쟁 구도 속에서 어느 한편은 살아남고, 어느 한편은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A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A는 후배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취미생활도 학과생활도 관리되어야 한다
A는 도서관으로 올라가 발권기에서 자신이 즐겨 앉는 자리를 찍고, 그 자리로 가 가방 속 토익책을 꺼내 펴놓았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머리로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든다. 이번 방학 A의 친구 중 한명은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어학연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오고는 한다. A는 사실 여행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여행비를 마련하기도 어렵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지금은 ‘김우중’하면 회사 말아먹고 도망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잘나가던 시절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유행시켰었다. 그 뒤로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이제는 대학생이면 당연히 다녀와야 하는 필수과목이 되어 버렸다. ‘해외(배낭)여행으로 보다 넓은 세계를 보고와 견문을 넓혔다’는 내용은 이제 자기소개서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내용이 되어 버렸다. ‘여행이 단지 여행이 아닌 것이 된 것이 아닐까’ A는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단지 해외여행 뿐만 아니라 취미, 여가, 동아리활동들도 처음의 의미처럼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계발을 위한, 자신이 여러 방면에서 유능한 인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취미가 있고, 인정받지 못하는 취미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못난 자신이 자기합리화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머리가 답답해진 A는 멀티미디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서핑을 시작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학교 자유게시판을 보니 A가 소속된 전공에서 졸업요건이 변경되었다는 글을 발견해 클릭했다. 졸업할 때에만 필요했던 공인영어성적이 매년 제출되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전공 학생 전원이 학습반에 들어가야 하며, 그보다 충격적인 건 ‘학과 행사에 대해 각 행사별 출석점수 3점을 부과하여 해당 학기의 총 출석점수의 70% 미만인 경우 장학생 선발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성공적인 취업 및 교육 역량 제고’을 위해 학과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학과에서 내 학과활동까지 관리해주시겠다니!’ A는 답답함과 억울함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등록금을 장학금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 A의 처지에서는 학과행사조차 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개강파티, MT, 산업시찰, 모두 돈이 필요한 일 아닌가. 누가 말한 것처럼 이 시대의 자유란 ‘굶느냐 마느냐의 자유 뿐’이라는 것처럼, A의 입장에서도 ‘학과행사를 안나가고 알바를 늘리느냐’와 그다지 가고 싶지도 않은 행사에 ‘돈 바치고 시간 바치느냐’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전원이 ‘학습반’에 들어야 한다니, 이제 학과에서 A의 사생활까지 관리해주는 시대가 되었나보다. A는 답답함에 도서관을 나선다.
대학은 정녕 이런 곳이었나
A는 이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맥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이 있는 150주년 기념관
정식명칭은 '김수환추기경국제관'(영문표기로는 International Hub)이지만 다들 그냥 편한대로 부른다. 여기서는 필자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인 '150주년 기념관'이란 이름을 사용하겠다 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학생회관을 거치고 니콜스관을 거치고 기슨관을 거쳐 150주년 기념관에 있는 편의점 앞까지 A는 총 6개의 카페를 지나왔다. 신기한 일이다. 이 작은 교정 안에, 문구점 하나 없고, 안경점․잡화점 심지어 기념품점도 없는데. 더군다나 과방․동아리방이 부속해서 니콜스관 4층에 불법 가건물을 만드는 이 교정에서, 카페는 6개나 된다니. 확실히 대학 자체도 변했다. 대학도 산업이라는 前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뒤로 가톨릭대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A는 지켜봐 왔다. 특히 2009년 들어 학교는 크게 변했다. 확실히 대학은 ‘돈 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학생들을 소비자로 만드는 공간은 많이 늘었지만, 학생이 주인이 되는 공간은 줄어 들었다. 학과별로 경쟁은 치열해지고 대학은 다시 학교 간의 경쟁에 뛰어든다.
A는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계산하고 다시 걸어 올라가 부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정 끝자락에 앉았다. 맥주 캔을 따고 한모금을 들이마시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사실 교수들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A도 학과 학생들 취업률이 교수들에게 큰 부담이 되리라는 걸 안다. 취업률에 따라 대학 본부의 지원비가 달라진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기도 하니. 하지만 A는 그런다고 해서 더없이 퍽퍽해진, 퍽퍽해지는 자신의 대학생활이 납득되는 건 아니다. 언제까지 ‘난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자신감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막연한 자신감으로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도 A를 점점 지치게 만든다.
‘어떻게 지내야 대학생활이 즐거울 수 있을까’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A는 대학에만 들어오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 부터 다시 ‘취업할 때까지’란 말로 즐거움을 미루고 노력해야만 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취업을 한다 해도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을지.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사십오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란 말도 위협받고 38세가 되면 짤릴 준비를 하라는 ‘삼팔선’이란 말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취업 후에도 결국 실적을 위해, 승진을 위해 즐거움을 미뤄야 할 것이고 그 뒤에는 명예퇴직 당하지 않기 위해. 퇴직을 당하던 살아남던 간에 다시 생존경쟁을 위해 ‘행복’이라는 꿈은 끝도 없이 미뤄질 것만 같다. 사실 어렴풋이 A도 답을 안다. 바로 ‘행복과 즐거움은 바로 지금 여기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어렴풋한 답을 위해서는 현재의 모두가 달리고 있는 이 길에서 한발자국 띄어야 하며, A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이제 대학생 A는 ‘A’라는 껍질을 벗고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대학생활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 글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책들. 그리고 새내기들이 읽어 봤으면 하는 책들
엄기호,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낮은산, 2009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조성주,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시대의 창, 2009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생각의 나무, 2008
이득재,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 철수와 영희, 2008
배태섭 외,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메이데이, 2007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게, 2009
학술단체협의회 편,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 한울, 2008
한경애,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그린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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