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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다양한 즐거움과 이해의 공공 영역52호/달콤, 살벌 2010. 2. 26. 01:22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박진형(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1.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어린 시절의 나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주말의 명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은 이내 보다 다양한 영화에 대한 갈증을 가져왔다. 비디오 대여점에는 할리우드 영화로 즐비했고, 영화 잡지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던 장 뤽 고다르나 오손 웰즈,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80년대 소위 예술영화라 불리는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창구란 기껏해야 각 나라 문화원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가끔 불법으로 복사한 VHS 테이프를 이용한 특별 상영회가 고작이었다. 더 많고 더 다양한 영화에 대한 갈증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었던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and Sound)’같은 해외 영화 저널들은 더 큰 열망을 불어 일으킬 뿐 이었다. 매년 베를린, 칸, 베니스같은 해외 유수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영화들은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놀라운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소수의 수입사들을 통해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가 온전히 개봉관에서 상영되었고, 고다르의 영화는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이어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등장했고, 국내 최초의 영화 주간지가 창간되었다. 한국 영화 문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문화원이나 대학 캠퍼스, 혹은 복사본 테이프로 명맥을 유지하던 몇몇 시네마테크를 무대로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왔던 한국 영화광 집단이 존재한다는 증명이었다. 그리고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비로소 국제영화제의 시대가 도래한다. 바야흐로, 이제 한국 영화광에게도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장이 생긴 것이다.
2.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를 시작으로 이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피판), 서울여성영화제 등이 연이어 개최되었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가 등장했을 때에는 이미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숫자가 열 손가락을 넘어섰다. 국제영화제가 등장한 이후 13여 년 동안 부침과 존폐가 계속되면서 현재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잠정적으로 추산하는 한국 내 영화제는 100개가 훌쩍 넘는다. 비교적 짧은 역사에 비하면 열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만 해도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서울국제사회복지영화제, DMZ 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의 영화제들이 새로이 등장할 예정이다. 말 그대로 영화제의 홍수다.
이렇게 수많은 영화제들이 계속 등장하는 추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상매체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 그 첫 번째 원동력일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영화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는 단지 한 명의 영화광에 대한, 혹은 소수의 영화광 집단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부산과 피판이 등장했던 90년대 중반은 한국 사회, 문화 전반에 커다란 변화와 수많은 자극이 한꺼번에 몰려 온 시기였다. 홈 비디오 산업은 정점에 이렀고, 케이블TV를 비롯한 새로운 채널이 등장했으며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 펼쳐졌다. 쉴 사이 없이 쏟아지는 영상 정보는 국가 주도의 고속 경제성장에 이은 본격 소비자본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소위 ‘신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젊은 세대들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되었다. 정보와 컨텐츠는 끊임없이 쏟아졌고 시청자와 관객들의 허기는 더 많고 더 새로운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 비로소 찾아온 정치적 민주화는 이전 시기와는 달리 역동적인 사회문화적 충돌을 가져왔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수다가 넘쳐났으며, 대중문화 고급문화 할 것 없이 ‘문화’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경로가 되었다. 부산이 전통적인 예술영화 지향의 다양한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제공했다면, 피판은 그와는 또 다른 ‘마니아’들이 열광할 수 있는 공공 영역으로 급부상했다. 이처럼, 한국의 국제영화제는 90년대 한국이 경험한 특수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태어났다. 단지, 베를린과 뉴욕, 동경에 있는 국제영화제를 우리도 한번 가져보자는 간단한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이렇게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태어난 영화제들이 짧은 시간 동안 국, 내외적인 성공과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90년대 말 소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한국 영화 산업의 고속 성장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99년 <쉬리>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공과 이를 둘러싼 한바탕 소란은 한국 영화 산업과 문화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제작에서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거의 독점에 가까운 자본 집중을 위한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쉬리>에 이은 몇몇 한국 영화의 성공은 다분히 민족주의적 감수성과 공모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의 전무후무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기에 충무로 기반의 기존 영화계를 벗어난 새로운 인자들이 산업 안으로 유입 되면서 확장된 시장에 걸맞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열광적으로 형성된 대중문화의 기후를 바탕으로, 자본, 인력, 시장이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연합전선을 구축한 셈이다. 국내 시장의 성공은 이어 국제 시장으로의 진출로 나아갔는데, 그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해외의 다양한 국제영화제였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몇몇 한국영화들이 칸, 베를린, 베니스같은 대형 국제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세계 영화계에서 그 입지를 넓혀갔고, 이는 전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한국 영화계로 이끌었다. 여기에는 90년대부터 계속 되어 온 아시아 영화계 전반의 약진 역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한국 영화, 그리고 아시아 영화에 대한 세계 영화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부산으로 이동했다. 태어난 지 5년도 채 안 되어 부산은 그렇게 많은 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국내 관객들은 물론, 세계 영화인들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것이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한국 영화제의 놀라운 성장에 눈길을 돌린 건 비단 영화인과 관객 만이 아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영화제는 도시에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다른 문화 행사에 비해 훨씬 그 비용이 적게 드는 문화 행사다. 뿐만 아니라, 자국 영화 산업의 육성은 물론, 영화제의 성공은 관광 산업을 비롯한 연관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관광지로 유명했던 칸과 베니스가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해 영화제를 열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뉴욕, 토론토, 런던, 동경, 홍콩 등의 대도시는 물론, 로카르노(스위스)나 시체스(스페인), 로테르담(네덜란드), 유바리(일본) 등의 중소 도시들은 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95년, 다양한 문화행사와 축제를 통해 지역 이미지 형성과 연관 산업 육성을 꾀했던 국내 도시들에게 영화제는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시도로 간주되었음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부산시는 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해 연관 산업의 성장은 물론 부산시를 아시아 영상 산업의 허브도시로 구축한다는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기에 이렀다. 부천시는 피판과 함께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만화축제 등의 행사를 연이어 마련하는 동시에, 만화/애니메이션/영상산업의 적극적 유치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 만화영상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3.
부언컨대, 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와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를 배경으로 시작된 한국의 국제영화제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인 성공을 보여주었다. 부산은 이제 ‘아시아의 칸 영화제’라는 별명이 익숙할 만큼 국제영화제 달력에서 중요한 행사가 되었고, 피판은 ‘판타스틱’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아시아에서 가장 커다란 장르영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7년, 2008년 10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여성과 디지털/대안영화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제 두 번째 10년을 일구는 한국 국제영화제의 내일이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국제 규모로 성장한 외향에 비해 성공의 초석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내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종종 들린다.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같은 시기 타 국가에서 열리는 영화제들과 비교하면서 냉정한 분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피판은 2005년 영화제 집행부와 조직위원회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영화제 자체의 존속 여부가 흔들리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고 국내, 외 관객과 영화인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이후 4년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걸쳐 피판의 이미지와 입지는 회복되었지만, 연속적인 성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화제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음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 ‘판타스틱’이라는 영화제의 정체성은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초창기 피판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은 다분히 개별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마니아 집단이 하나의 공공 영역에서 모일 수 있는 ‘판타스틱’이라는 주제에서 나왔다. 그러나 영화제가 점차 성장해가면서, 피판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던 ‘마니아적임’은 보다 보편적인 성격의 행사가 되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을 낳기도 한다. 요컨대, 판타스틱은 그 강열한 에너지와 함께 그 표현이 갖는 사뭇 제한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인 셈이다. 여기에 지역 발전 및 지역과의 연계라는 맥락에서는 과연 피판이 부천 및 경기도 지역, 나아가 한국의 영상산업 및 연관 산업의 육성 및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최근 학자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행된 한 연구 발표는 피판이 아시아 지역의 장르영화 축제로 자리를 확실히 잡았으며 장르영화 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천/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산업 육성의 측면이나 지역 주민과의 연계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같은 연구에서 부천 지역의 낙후된 사영 시스템 등 하드웨어적인 문제 역시 부정적으로 제기되었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피판에 대한 불안한 평가들은 지난 몇 해 동안 계속 반복되어 제기되었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모두 단기간 안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관점과 계획을 바탕으로 고려되어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그러나 매년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는 것은 영화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의미한다. 마치 영화제를 위한 변명처럼 들릴 위험을 감수할지라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화제가 놓여있는 다층적이고 맥락과 환경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조망이 생산적인 비판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온 200편이 넘는 영화들이 매년 상영되고 1000여명이 넘는 국,내외 영화 관계자들이 참석하며 극장 안팎을 통털어 10만명이 넘게 방문하는 수치상의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여타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피판은 다양한 즐거움과 이해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축제의 장이자 공공의 장이다. 그 말은 곧 영화제의 성패 및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다양한 입장들과 현상들, 맥락들에 대한 입체적인 고려에 바탕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판타스틱’이 가진 마니아적임과 다소 제한적인 느낌, 그리고 초창기에 비해 관객의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는 다분히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영화제와 소비자로서의 관객이라는 단선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문화며, 영화제는 영화에 만족하고 기분 좋게 떠나는 일반 상영관과는 다른 축제의 장이자 산업의 공간이다. 글의 서두에서 밝혔던 9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영화제의 탄생과 빠른 성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영상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달과 그로 인한 영상문화 전반의 다양한 변화들, 나아가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의 전지구적 흐름 같은 보다 거시적인 양상까지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상황은 지금 피판이 서 있는 자리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데 조목조목 고려되어야 한다. DVD도 보편화되기 전 세계 각지의 영화를 소개하던 초창기 영화제의 즐거움은 이제 사이버코인 몇 개로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불법 동영상 파일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나는 오늘날 똑같은 방식으로 경험되기 어렵다. 10년 전 새로운 충격으로 가득한 영화들을 보며 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었던 피판이라는 공적 장소는 이제 집 안의 외장하드라는 또 다른 공간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적 성과에 대한 부분 역시 간단하지 않다. 이미 지난 몇 년 간 거품이 한 차례 꺼지면서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은 한국 영화산업 위기론은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관점과 평가, 계획들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가를 반증한다. 영화는 산업의 대상인 동시에 문화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는 영화산업에 대한 평가가 단순히 연 매출액 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 산업에 대한 영화제의 관계 및 기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제는 영화를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대신 영화제는 영화, 인력, 자본 등 영화산업의 요소들 간 흐름을 윤활하게 만들고 영화산업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궁극적으로 산업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의제들을 제시해야 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따라서 영화제의 산업적 기능은 항상 영화 산업이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과 같이 갈 수 밖에 없으며 그 평가도 마찬가지다.
지역 발전과 연계라는 부분 역시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부터 얻는 공적 지원이 중요한 재원인 피판은 부천 및 경기 지역이라는 지역성과 지역의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공공의 지원은 곧 공공의 이익과 결부된다. 그러나 지역에 대하여 영화제라는 문화 영역와 축제의 장이 수행할 수 있는 공공 이익의 문제는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상되고 구현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부산과 부천과 전주라는 도시는 영화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공 이익의 형태와 양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지역 산업의 육성이건 혹은 축제의 지역적 정체성이건, 지역에 대한 공적 기능은 지역의 지리적, 물리적, 산업적, 인구적, 역사적 특성들에 따라 꼼꼼하게 고려되고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이제 13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지나온 피판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과 평가는 결국 발전을 위한 다차원적인 계획 수립을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피판은 공적 축제로서, 산업적 영역으로서, 지역의 요구와 국제적 역할 모두를 수행해야 하는 복합적인 장이다. 피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중 아직도 반복되는 “동네 잔치”라는 오명은 사실 국제적 이벤트의 형식을 지닌 모든 지역 행사가 가진 딜레마다. 반면 피판이 국제 행사로서의 면모에 더욱 집중하게 되면서 국내 관객들의 요구와 바람을 간과하게 된다면, 이는 공공의 지원을 받는 행사로서의 제 기능을 전부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부언컨대, 영화제는 지역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 산업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정책적인 것과 놀이적인 것이 모두 한데 뭉쳐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피판이 영화제가 가진 이 다양한 측면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각각의 입장과 이해를 가진 다양한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비판과 연루가 필요하다. 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집행부는 관객들에게 양질의 영화들을 편성함과 동시에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여 역동적인 문화 놀이판을 만들어내야 하며 아울러 영화 산업 내 많은 창조적 인자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맺음으로써 국, 내외에서 산업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의 행정 주체는 영화제가 지역 이미지 구축과 더불어 지역을 기반으로 산업적, 문화적, 사회적 제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구조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편 영화제를 향유하는 수용자는 영화제라는 문화의 장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과 그 즐거움을 보다 열린 마음과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고비를 딛고 제 자리를 찾은 피판은 영화제가 수행해야 할 복합적인 기능과 그 역할을 위해 이제 막 그 정비를 마쳤다. 97년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부천을 찾은 관객들과는 또 다른 영화 문화의 환경에 있는 새로운 관객들을 위해 피판은 그 시대적 감수성을 늦추지 않으려 한다. 또한 2008년 신설된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NAFF)’는 지역을 넘어 아시아로 창조적 네트워크 형성과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수행하게 될 산업적 역할에 대해 두 해만에 합격점을 얻었다. 바다도 토속음식도 호수도 없이 아파트 단지로 빼곡한 부천이라는 공간을 축제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려는 장기적인 계획 역시 피판의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이 청사진은 피판을 운영하는 몇몇 인자들이 아니라 피판을 에워싼 관객, 영화인, 지역 주체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그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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