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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좌담 <반두비>52호/달콤, 살벌 2010. 2. 26. 01:20
정리 : 수습위원 오승혁
‘나는 객관적인가?’ ‘나는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 혹은 행동이나 생김이 다른 사람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동등하게 여기려 노력하는가?’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옳지 못한 그른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나?’ ‘남의 아픔에 안타까워하며 위로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둔감하게 행동하며 상처를 더 키우는 짓들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이 영화를 보며 내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내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꽤나 자주 그리고 제법 높은 빈도로 이주노동자들의 가슴 찡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연을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그들을 고용한 뒤 임금을 체불하고 폭행하는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그들의 취약한 상황과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단체가 생기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다른 주장들이 부딪치기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의 이러한 활동들이 꾸준히 계속되고 거듭되면서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체에 자주 노출되면서 인권과 같은 이런 문제들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역시 이에 익숙해지고 뭔가 진부한 주제처럼 여기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려 노력하는 몇몇 독립영화들과 단편영화들은 이주노동자를 극의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와 착취를 하는 고용주 그리고 그런 상황을 옳지 못하다고 여기며 도와주고 해결하고자 하는 착한 사람의 구도를 거의 취한다. 이 영화역시 이주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정치적인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지닌 관계를 다루거나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다루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다소 투박하지만 따뜻한 아름다운 시선으로 다루고자 한 뭔가 다른 느낌의 영화이다.
성심교지편집위원회는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줄거리
홀로 노래방을 운영하는 엄마는 젊은 애인과 연애하느라 바쁘고 또래 친구들은 방학을 맞아 학원 다니느라 바빠 민서는 이래저래 외톨이이다.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원어민 학원에 등록하려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만만치는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민서는 버스에서 이주노동자 카림의 지갑을 줍게 되고 안에 있는 현금에 혹해 지갑을 찾으러 온 카림에게 발뺌하지만 결국 잡히고 만다. 경찰서로 끌고 가려는 카림에게 소원 하나 들어주겠다며 그 상황을 모면하고 헤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각자 다른 사건으로 경찰서에서 재회한다. 카림은 지난번 민서가 했던 말을 언급하며 자신의 1년 치 임금을 체불한 사장의 집을 함께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얼결에 임금추심원이 된 민서는 처음에는 카림이 자신의 곁에서 걷는 것조차 싫어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민서와 돈 문제로 고국의 부인과 헤어질 위기에 놓인 카림은 서로 결핍된 것이 있는 사람임을 느끼며 감정의 교감을 갖고 친구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때때로 잘 맞지 않는 둘의 생각 그리고 이런 만남을 불안해하는 민서의 엄마와 그의 새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애인 때문에 그들의 만남을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민서와 카림이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 민서의 엄마는 카림을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고 카림이 보호외국인 신분으로 감금되면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된다.
민서가 위험하다?!
승혁 : 극 중에서 민서가 가출을 한다거나 나이를 속이고 성인 마사지 숍에서 일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민서에게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윤리의식은 부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한국 여자는 정말 사귀기 싶다는 발언을 하는 원어민 강사와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한 사장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남의 옳고 그름을 가리며 단죄하는 것처럼 비춰집니다. 이는 민서가 윤리의식이나 가치관을 그저 남과 싸울 때 사용하는 무기처럼 쓰는 것 같아 위험하다고 여겼는데요. 여러분은 민서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승균 : 민서에게 도덕의식이 부재되어있는 것 같다는 점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중의 민서의 행동들이 타인에게 자신만의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강요한다거나 단죄하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그저 화풀이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진홍 :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민서에게 윤리의식이 없다기보다는 여고생인 만큼 나이도 아직 어리고 아버지도 없는 만큼 아직 가치관의 성립이 되지 않은 것 아닐까?
승균 : 새아버지가 될 사람에게 하는 행동들 역시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하는 행동들처럼 느껴져요.
승혁 : 그러고 보니 화풀이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의견이 있었어요.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없이 둘이 지내던 민서와 어머니의 관계에 새롭게 편입되고자 하는 새아버지 때문에 민서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무너졌다고 보는 의견이 있었어요.
이현 : 그런데 극 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한 것인지 아니면 사별을 한 것인지 그리고 그 전에는 민서와 어머니의 관계가 돈독했는지 표현되지 않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알 수 없잖아요. 그런 의견은 영화에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을 과도하게 자기 입맛에 맞게 추리해서 나온 오버된 의견 같네요.
찬표 : 네, 저도 이 영화 속에 나왔던 민서의 행동들에 대해 위험하다 혹은 나쁘다고 단정 짓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의도한 것과 다른 또는 너무 앞서가게 되어 민서를 어떻게 교육시키고 계도해야한다는 의견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솔직히 민서의 극 중 행동들을 언급하면서 위험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져요.
승균 : 네, 저 역시 방금 이야기했던 화풀이의 개념에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단죄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일련의 장면들은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그리고 자신과 통하는 친구가 된 이주노동자 카림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 자신 역시 화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대는 특정 인종에게 더 친절한가요?
승혁 :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는 대학 졸업 뒤에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이주노동자의 방송을 더불어 다양한 사회운동 활동을 열심히 하며 한국 여성과 결혼을 하신 뒤에 10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비전문배우에요. 그런데 한국의 여고생과 멜로 연기가 스토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영화 개봉 이후에 전화나 메일을 통한 협박을 꾸준히 꽤 많이 받으셨다고 해요. 거의 대부분의 협박이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백인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했다거나 또는 특정 인종이나 국가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나요? 그리고 진부하게 여겨진다고 해도 이 영화가 가진 주제이자 내용인 만큼 인종차별이나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해요.
승균 : 저는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분에게 명동성당 앞에서 인터뷰도 당해보고 이 분이 인권을 위한 사회운동 활동을 하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요. 솔직히 흔히 하는 말로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전에 이 분이 이주노동자의 방송을 하고 단체에서 활동을 하거나 어떤 영화에 출연을 한다고 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어요. 그런데 한국 여고생과 친구가 되고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다루자 협박이 가게 된 것이라 생각해요.
승혁 : 만약 다니엘 헤니 같은 잘 생긴 혼혈이나 백인이 한국 여고생과 연애를 하는 연기를 했다면 그에게도 협박 전화나 메일이 갔을까요? EBS에서 백인과 흑인 그리고 동남아계의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 계층이 다른 분들에게 거리를 다니게 해서 실험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백인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고 먼저 다가가는 경향을 보이는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상대적으로 어떤 인종이나 어떤 계층에게 더 친절하게 대한 경험이 있나요?
진홍 : 저는 어릴 때 미국에서 거주했었어요. 세계의 그 어떤 곳보다 다양한 인종과 혼혈이 많이 있다는 뉴욕에서 살면서 특정 인종이나 나라의 사람이 꺼려진다거나 누군가에게 일부러 더 친절하게 대한다거나 그런 행동들은 그다지 잘 공감이 가지 않네요. 저는 특별한 거리낌dl 없어요.
이현 : 저는 어릴 때부터 이태원 근처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인종 그리고 다양한 국가 출신의 외국인들을 접하곤 했어요. 여전히 동네 성당에 미사를 보러가도 외국인들을 많이 접하는 편이고요. 그러다보니 외국인이 꺼려진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쉽사리 공감이 되지 않네요. 이런 사고들은 자라온 환경에 의해서도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승혁 :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스스로가 안타깝지만 어린 시절 백인 강사 위주의 어학원에 다니고 주로 백인들을 접하면서 상대적으로 백인을 더 좋게 보게 된 선입견이 제 안에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방학동안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 코스에 거의 포함되는 놀이공원에서 일하면서 상대적으로 매너 없고 무례한 동남아 쪽 관광객 분들을 접하면서 기분이 상하고 편견이 더 커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고 지금까지 제가 여행했던 국가가 대만이나 홍콩, 일본 이렇게 아시아 지역에 한정지어져 있고 그 곳에서 만난 친절한 분들이나 배려를 받은 경험덕분에 이런 사고들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찬표 : 물론 그렇게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이 자리 잡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생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진홍 : 네, 저도 공감하는데요. 방송이나 신문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다보면 거의 이혼이나 부부싸움 혹은 폭행처럼 부정적인 면만을 주로 다루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 보면 흑인이나 동남아 계열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하는 깡패나 폭력단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고요. 미디어에서 만든 이미지가 자주 거듭되면서 어떤 편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승균 :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는 별 관계없이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외국인들이 솔직히 불편해요. 같은 한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막 많이 몰려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불편해지고 누군가를 알아갈 때 아직 안 친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불편하고 어색한데요. 외국인과 마주할 때는 피부색이라거나 언어라던가 뭔가 다른 것들이 더 많이 보이니까 불편함이 더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미군 부대가 있는 곳 주변에 살아서 외국인들을 접하곤 했는데요. 저는 승혁이와는 반대로 자라면서 받은 교육에 의해 백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반면에 흑인에게는 호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찬표 : 지금까지 나온 개인적인 경험담이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인종 차별이나 어떤 인종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는 것은 경험이나 교육, 미디어 노출 정도 등의 요소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가 꾸준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둘의 관계를 아름답게 다룬 것 같아요.
승균 : 네, 이전의 인권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것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당하는 자, 착취하는 자와 돕는 자의 구도를 꾸준히 취하는 것을 극의 주축으로 활용했는데 이 영화는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게 둘이 친해지고 서로 통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과 이들의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둘의 관계에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거든요. 정말 진정한 친구 관계인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카림이 떠나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민서는 결혼하자고 말해요. 그 때부터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생긴 것이고 민서가 도와주려하는 것이니 카림은 뚜렷하게 말하지는 않아도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찬표 : 네, 둘은 여고생과 이주노동자라는 둘 다 그다지 한국사회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못하거나 머물 수 있는 기간의 제약이 있다거나 누군가는 사장에게 또 다른 누군가는 부모님에게 관리, 감독을 받아야만 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놓여 있는 처에요. 흔히 하는 것처럼 부나 권력, 사회적 지위로 계층을 구별한다고 하면 이들은 사회 최하위 계층에 속하게 되죠. 이 영화의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극의 주축이 되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인간의 목적 없는 아름다움 사귀기를 보여주려 한 것 같아요.
영화가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
승혁 : 이 영화는 이런저런 장치를 꾸준히 활용해서 현 세태나 정치 상황에 대해 비난하면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와 같은 느낌의 메시지를 계속 던집니다. 물론 사회의식이 강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들이나 현대 젊은 계층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들은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할리우드가 영화 산업으로 인정을 받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전쟁 당시 미국 정책에 대한 홍보 영상 제작에서 비롯되었던 만큼 꽤나 오랜 세월 영화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거나 정치적인 의식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 이 영화는 들어 내놓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에서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들을 봤는지 또 영화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승균 : 저는 이 감독님의 전작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영화도 봤었는데요. 그 영화는 386세대에 대한 묘사나 처절한 비판이 주를 이루거든요. 또 다른 전작 <방문자>도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주축으로 한 영화라고 알고 있고요. 이 감독의 성향 자체가 상업적으로의 성공이나 대중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영화 속에 담고 알리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또 이전에 <고래사냥> <태백산맥> 같은 영화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게 느껴졌어요. 물론 민서와 엄마가 그냥 장조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굳이 힘주어서 ‘한우장조림’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어색함을 느꼈지만요.
진홍 : 그렇게 극의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통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감독은 소품을 통해서도 많은 메시지를 던지려 시도한 것 같아요. 민서의 친구들이 타고 떠나는 학원 차에는 ‘MB수학’이라고 쓰여 있고 민서의 티에는 “Save the whale'이라는 환경운동에 관련된 표어가 쓰여 있고요.
이현 : 네, 또 영화의 초반부에 민서가 학교에서 하교하는 장면의 배경에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플랜카드가 보여요. 민서와 카림이 찾아갔던 임금을 체불한 사장의 집 대문에는 정말 선명하게 십자가가 붙어있고요. 민서가 쳐들어갔을 때 보면 그 집 거실에는 성경의 구절이 적혀있는 말씀 액자가 붙어있고요.
찬표 :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다가 다 망했다’고 외치는 취객과 ‘시급 3500원 짜리에게 따지지 말고 명박이 에게 직접 따지라’ 말하는 점원의 싸움을 말리는 카림이 라면을 먹는 장면을 보면 옆에 이건희 회장이 표지에 나와 있는 ‘한겨레21’잡지가 보여요. 또 민서가 임금 체불한 사장 집에 쳐들어가서 사장에게 ‘니가 이런걸 보니까 이렇지’ 하며 던지는 거실에 있던 신문은 조,중,동 중 하나로 보이고요. 하지만 여고생이 홀로 사장 집에 쳐들어가서 제 멋대로 이런저런 것들을 부시고 던지며 사장의 딸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데 아버지나 어머니 누구도 말리지 않는 상황이나 아까도 언급했던 ‘한우장조림’이나 편의점에서 취객과 점원이 싸우는 상황 같은 것들은 제게도 마찬가지로 역시 어색했어요.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지는 알겠지만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영화적 개연성이 떨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투박하게 느껴져요. 담아내는 것 자체는 좋았지만 담아낸 것을 그럴듯하게 아름다워 보이게 포장하는 세련미는 떨어지는 것 같아요.
승혁 : 저도 표현방식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에는 동의해요. ‘so sweet'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 여자는 사귀기 쉽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민서에게 공격을 당하는 원어민 강사 하인즈가 일하는 영어 학원은 뭔가 그럴 듯 해보이려 노력하는 느낌이 강한 USB 어학원이고요. 하인즈는 수업 시간 중에 작은 약속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의 우화를 이야기하며 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이 쥐인지 물어보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 영화적 개연성을 떨어지게 만드는 작위적인 상황이라고 느꼈어요.
이현 : 지금 투박하다, 개연성이 떨어지게 만드는 작위적인 표현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세련되었다 그렇지 못하다와 같은 그런 점들을 떠나서 이런 것들을 다룬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정치적인 현실이나 현 세태에 대해서 외면하고 그저 넘어가기 보다는 다루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찬표 : 저 역시 투박하다, 작위적이라고 말은 했지만 그런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쉽다는 정도에요.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다들 이 영화에서 봤던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 자체가 꽤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진홍 : 저도 찬표형과 이현이의 의견에 공감해요.
승혁 : 저 역시 영화를 좋아하고 이런저런 영화들을 많이 접하려 노력하고 챙겨보면서 극 중의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명대사를 읊는다거나 음악이나 영상이 극의 상황이나 분위기에 잘 어울리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경우를 많이 봐와서 이 영화가 주는 투박함이나 그런 것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수많은 영화들이 거의 천편일률 적으로 영화를 끝내면서 음악이 깔리고 까만 화면에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깔리는 그런 엔딩을 보여주고 조금 새롭다고 해도 엔지 장면이나 메이킹 필름을 보여주는 정도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민서가 홀로 식당에 가서 능숙하게 방글라데시 요리를 주문하고 먹는 장면으로 음악 없이 엔딩을 맺는 것이 의외로 꽤 인상적이더라고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영화만이 주는 신선함 또한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맺음말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그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힘든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라 여긴다. 너무나 익숙하게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계속 대면하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안다고 생각할 뿐 나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는 것이 힘든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이주노동자 문제와 인권 이야기 또한 언제부턴가 뉴스나 신문에서 자주 듣고 봐서 뭔가 진부한 당연히 아는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소식들을 전하기에 뉴스라 이름 붙여진 그 것은 등장하는 것들의 이름이 다를 뿐, 삼류 작가의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소설처럼 그다지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면서 그저 익숙하기에 아는 척 해왔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단에서는 제법 호평을 이끌어냈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점과 리뷰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인종차별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이 넘쳐나는 글들. 과연 언제쯤 모두가 서로를 이런저런 것들에 따른 차별 없이 인간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까? 아니,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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