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75호/국제 2019. 11. 20. 23:28
엄아린 편집장 cukkyoji@gmail.com
홍콩의 시위로 연일 국제사회가 화제다. 지금 홍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성심은 가톨릭대학교 홍콩 유학생 페페(가명)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페페와 나는 지난 국제화 인터뷰를 계기로 친분을 이어왔다. 지난 세 달 동안 카카오톡과 페이스타임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위의 진행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취재원보호를 위해 가명(페페)으로 기재한다.
c 성심 페페와의 첫 연락은 6월 13일, 페페가 청와대 국민 청원 링크를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청원은 6월 9일 홍콩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홍콩정부가 무차별 진압한 것에 대해, 한국정부가 외교적 압박을 통해 연대해 줄 것을 청원하고 있었다. 안무를 묻는 나의 인사에 페페는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페페 페페는 사진을 보내며 “페퍼 스프레이 다 맞았어. 조금 더 늦게 뛰면 지금 아마도 감옥에 있어”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홍콩인들 왜 시위를 시작했나?
홍콩의 시위는 ‘범죄인 인도 법안(이하 송환법)’에 반대하며 촉발됐다. 송환법 논의는 지난 해 2월 대만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홍콩인 찬퉁카이(20세)가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것. 하지만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영외에서 발생한 범죄를 처벌할 수 없다. 그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대만으로 송환해야 했는데, 대만과 송환법을 채결하고 있지 않아 문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홍콩정부는 대만을 비롯한 마카오, 중국 등에 범죄인을 인도하는 송환법을 추진하고자 했다. 법 자체만 보자면 홍콩을 범죄자 도피 천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홍콩의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을 정치범의 명목으로 중국에 송환하는 방식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point1. 홍콩인들의 우려 과연 기우일까?
홍콩인들의 우려는 2015년의 ‘퉁뤄완 서점 관계자 5명 실종사건’에서 기인했다. 퉁뤄완 서점은 1994년 문을 열어 중국에서 출판 · 판매할 수 없는 책(예컨데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이나 고위 지도자 스캔들 같은)을 파는 서점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서점 관계자 5인이 차례로 중국 본토에서 실종되기 시작했다.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린룽지가 중국에 끌려가 조사받은 내용을 용기 내어 고발하면서 공론화 됐다. 홍콩인들이 송환법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중국과 홍콩 ‘일국양제’라는 체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포인트4 참조)홍콩 시위 왜 멈추지 않나?
1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시위에 홍콩 정부는 6월 15일 송환법을 보류를 발표한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16일, 이번에는 200만명의 시민들이 모인다. 왜일까?
c 성심 홍콩인들 ‘왜’ 시위하는가? ①
그 이유는 홍콩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체제갈등이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자치구다.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본주의 체제와 자치권을 보장받아 왔다. 문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하나의 중국’을 정치노선으로 내세우면서 연이어 자치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홍콩의 행정장관** 선출 방식이다.
point.2 현재 홍콩의 선거 방식은 어떨까?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1인 1표로 시행되는 직접투표가 아닌, 1200명의 선거위원회의 간접투표로 치러진다. 또한 후보자등록은 선거위원 중 15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가능하며, 과반인 601표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하다. 이 선거위원회는 대부분 친중 성향의 정치인들과 기업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후보자 역시 친중 성향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방식 자체도 흡사 70년대 ‘체육관 선거’와 비슷하다.현재 홍콩의 행정장관 선출 방식은 간선제다. 97년 반환 협정에 따라 홍콩은 2017년 직선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기존의 간선제를 유지하는 골자의 방안을 통과시킨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센트럴 파크를 점령한다. 이것이 바로 우산혁명이다. 지금의 홍콩 시위는 우산혁명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87년 6월 민주항쟁이 80년 광주항쟁의 연장선인 것처럼 말이다. 홍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바로 민주화다.
point.3 우산혁명
2014년 홍콩 혁명운동으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으나, 이루어내지 못한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다. 경찰들이 쏘는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서 우산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학민사조’라는 학생그룹이 운동을 주도했다.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point.4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시간을 거슬러 1840년으로 가보자.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청나라-영국전쟁)이 발발한다. 패전국인 청나라는 1842년 8월 29일 영국과 불평등조약을 맺는데, 이때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난징 조약이다. 난징조약 이후 영국은 홍콩을 150년 동안 식민통치하다가, 1984년 반환 협정을 통해 1997년 다시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한다. 문제는 150년의 시간동안 홍콩은 자본주의의 길로, 중국은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사회주의 체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당시 국가주석 덩샤오핑은 세 가지 약속을 한다. ‘일국양제’, ‘항인치항’, ‘고도자치’. 일국양제란, 한 국가 안의 두 개의 제도(사회주의-자본주의)를 말한다. ‘항인치항’은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를 말한다. ‘고도자치’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자치가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이 약속에 따라 홍콩은 자본주의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과, 자치권을 약속받게 된다. 문제는 ‘50년 동안’이라는 시간약속이 있다는 것. ‘일국양제’는 2047년까지만 유효하다. 홍콩은 50년 동안 중국이 민주주의가 확립될 것을,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가 자리 잡을 것을 믿어 이 약속에 합의했다. 중국의 홍콩화냐 홍콩의 중국화냐. 홍콩의 시위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광복 홍콩 시대 혁명
이제 시위의 결은 달라졌다. 시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시위를 막아야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홍콩 정부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하기 시작한다. 무장한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포하고, 시민들을 연행해 갔다. 시위현장에서 고무탄을 눈에 맞은 여성이 실명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홍콩 인스타그램에서는 #eye4hk이라는 해쉬태그가 유행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페페 그뿐만이 아니다. 7월 21일에는 ‘백색테러***’가 발생했다. 밤 10시 30분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시민들이 지하철 위안랑 역에서 흰색(친중 시위대가 주로 입는 색깔) 티셔츠 차림의 괴한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한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노인이나 임산부도 있었다. 홍콩 시민들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한 테러를 그저 방관했다. 페페는 성심과의 인터뷰에서 “그 날은 홍콩법이 무너졌다고 느낀 날”이었다며 “인민은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은 인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홍콩에선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홍콩인들은 시위를 이어나갈수록 홍콩 민주주의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다. 홍콩 시위의 5가지 요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➀송환법 철회
②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③독립된 경찰조사위원회 설치
④구속된 시위자들 석방
⑤행정장관 직선제
홍콩시위 ‘왜’ 하고 있나? ②
여기까지 홍콩 시위가 발생한 배경과 초기 진행과정을 살펴봤다. 자치권을 지키려는 홍콩의 민주화세력과 중국 공산당의 대립구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다일까? 페페는 이 시위에 또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것은 바로 홍콩의 심각한 불평등이다. 특히 지금 홍콩 시위의 주축이 되고 있는 청년들은 불평등의 가장 큰 피해자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위를 조직하는 등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홍콩의 불평등
홍콩의 지니계수 1981년 0.45 → 1996년 0.47 → 2006년 0.53 → 2016년 0.54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경제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걸 뜻한다. 학계는 지니계수가 0.5를 능가하면 폭동을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간주한다.
출처 BBC 출처: BBC 홍콩의 불평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는 ‘맥난민’과 ‘관’이다. 맥난민은 맥도날드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난 2018년 6월 국제청년회의소(JCI)에서 실시한 현장 조사에 따르면 “3개월 동안 적어도 334명이 맥도날드에서 잠을 청했다”고 밝혔다. 맥도날드에서 잠을 잔다고 하면 홈리스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절반은 주거지가 있긴 했으나 최저주거기준 미달이었고, 홍콩의 더운 날씨와 치안 범죄 등으로부터 피신을 온 사람들이었다. 바로 ‘관’ 같은 집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이다. 홍콩인들은 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최소 10년,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최소 30년을 모아야 한다.
홍콩 최저임금 5716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은 한국의 두 배
홍콩의 경제 불평등 문제도 체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홍콩은 세계 제2위의 부자나라다. 전 세계 백만장자의 1%가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 물론 그들 중 대다수가 중국인이다. 홍콩은 맥난민과 슈퍼리치로 나뉜 이중도시인 셈이다. 중국인의 홍콩 이민 행렬은 당연하게도 97년 홍콩 반환이후부터 활발해 졌으며, 이를 ‘신이민’이라 명명할 수 있을 정도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홍콩으로 이민 온 누적 중국인 수는 693,800명에 달한다****. 중국의 부호들이야 말로 당의 눈칫밥을 먹어가며 중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으니 체제탈출을 한 셈이다.
그리고 홍콩 정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중국인들의 편이다. 캐나다프레이저연구소(FIG)가 9월 14일 발표한 <세계경제자유 2019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의 경제 자유 지수는 미국을 넘어 1위를 기록했다. 경제 자유지수 수치는 시장 접근성, 사유재산 보호, 공공 지출 등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중국 부호들이 홍콩에 발붙일 판을 깔아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현재 홍콩 시위대들의 중요한 저항 중 하나도, 홍콩의 경제거점을 타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공항 점거, 쇼핑몰 시위, 집단적인 현금 인출 행동이나 총파업 등이 그 예시다. 중국공상은행, 샤오미와 같은 친중기업의 상점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일도 다수 발생한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과격한 시위대’의 행동으로 표현하지만, 이러한 행위야 말로 자본주의의 생산을 방해하는 새로운 계급운동의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홍콩의 시위가 ‘시대혁명’인 이유다******.
홍콩시위 어떻게 하고 있나?
어느 혁명이나 그렇지만 홍콩 시위는 청년이 중심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페페는 “30-40대들은 지킬 것이 많아. 회사나 가족처럼. 반면 청년들은 지금 당장 바꾸지 못하면 홍콩에서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 절박해.”라고 답했다. 이들이 주도하는 시위는 어떤 특별한 차별점이 있을까?
현재 홍콩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시위의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이유로 페페는 우산혁명의 실패로부터 배운 교훈이라고 대답했다. “우산혁명은 리더있어서 실패했어. 리더는 타협한다. 우린 5가지 요구에 전부 대답할 때 까지 이 운동을 안 끝내.” 이를 두고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만든 시위 방식이라 해석하는 언론도 있었다. 해당 매체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홍콩 시위대의 상당수는 조직을 불필요하거나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존 노동단체나 정치조직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이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필자의 질문에 페페는 “맞아. 우린 우리 자신만 믿어”라고 대답했다.
사진제공 페페 때문에 이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주로 소통한다. 누구나 시위 공지를 올릴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시위하면 광화문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홍콩의 시위는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경찰이나 중국 군대가 한 지역을 포위하고 무력진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홍콩 시위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디에든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마치 물같은 홍콩의 새로운 시위 양상은 앞으로의 사회운동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만은 분명하다.
홍콩 시위의 전망
물론 조직화되지 않은 시위 방식이 갖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시위가 6개월차에 접어들면서 내부적으로는 동력이 소실되고 외부적으로는 관심이 떨어지는 양상이 보인다. 페페는 “요즘은 힘들어서 시위에 잘 안 나간다.”라고 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시위가 너무 힘들었던 날에는 “이민을 가고 싶다. 한국이나 영국을 생각하고 있다.”며 장기화되는 시위에 부담을 표현했다. 실제로 현재 홍콩인들의 타국 이민 비율은 9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이민 컨설팅 업체가 성행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본국의 정상화를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탈홍콩’하고 싶은 양가감정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탈-’ 논의 속에서 모두가 본국을 탈주하고 싶어 한다면, 이 지구상에 우리가 발붙이고 살만한 땅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홍콩 시위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각주
* 범죄인의 국적과 관계없이 자국 내에서 발생한 범죄는 자국의 법을 적용하는 주의. 영외에서 발생한 범죄는 자국의 법을 적용할 수 없다. 범죄인의 국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속인주의’와 구별된다. *필자주
** 한국의 대통령과 같은 홍콩의 최고 수반.
*** 1.주로 극우 내지 우파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암살, 파쇠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테러. 2.권력자나 지배자가 반정부 세력 내지 혁명 세력에 대하여 행하는 극심한 탄압 [출처: 다음사전]
**** 중국인의 홍콩 이민 행렬도 이분화 되어 있는데, 한 쪽이 부호들의 이민이라면 한 쪽은 빈자들의 이민이다. 이들은 홍콩인들 중에서도 아주 극빈층이며, 홍콩 청년들과 일자리 경쟁 및 임대주택 경쟁에 함께한다. 물론 극빈층 우대 정책도 중국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
***** 이러한 양상은 홍콩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칠레가 있다. 칠례의 시위는 ‘조커 시위’라고도 불리는데, ‘교통비 50원 인상’이 시위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미 이전부터 누적돼 온 경제불평등이 50원에 폭발한 것이다.
****** 페페에 따르면 최근 홍콩시민들은 ‘노란색 경제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용하고 있다. 시위를 지지한 상점과 기업만 소비하는 방식이다.
<참고문헌>
-다큐멘터리
넷플릭스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조 피스카텔라 감독
-보고서
<2019 세계 부(富)보고서> 크레디트스위스.
-기사
워커스 59호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
중앙일보 “[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홍콩 시위 뒤엔 ‘반시진핑 서점’ 5인 실종 사건이 있었다”, 유상철 기자, 기사작성일:2019.06.17. 검색일:2019.11.05.
kotra해외시장뉴스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 개요”, 장수영 홍콩 행정 무역관, 작성일:2017.03.24. 검색일:2019.11.05.
중앙일보 “[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중국으로 변할까’ 우려에 홍콩시위는 반복해서 터진다”, 유상철 기자, 기사작성일:2019.07.22. 검색일:2019.11.05.
BBC “The night time ‘McRefugeess’ of Hong Kong”, SURAJ KATRA, 기사작성일:2015.10.27. 검색일:2019.11.06.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Number od people sleeping in Hong Kong McDonald’s branches skyrockets, as residents battle hight rents and substandard housing” ㄴhirley Zhao, 기사작성일:2018.9.5. 검색일:2019.11.06.
중앙일보 “홍콩으로 밀려오는 중국인 신이민... 역차별에 탈홍콩 꿈꾸는 홍콩인”, 예영준 기자, 기사작성일:2017.06.27. 검색일:2019.11.06.
'75호 > 국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의 저널리즘, 역사 왜곡에 맞서다 (0) 20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