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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으로 새겨지는 주홍글씨51호/스펙트럼 2010. 2. 18. 19:48
편집위원 바늘
“둘이 무슨 사이예요?” 내가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세상에 태어난 내 여동생과 함께 외출을 하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듣는 질문이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교복을 입고 아침, 저녁으로 어린이집에 동생을 데리러 다니던 나를, 사람들은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궁금하거나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사이를 자매로 보기보다는 모녀사이로 보는 것이었다. ‘너 십대로 보이는데, 혹시 옆에 있는 애가 네가 낳은 애니?’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참 대단했다. 내가 “아니요. 얘는 제 여동생이에요.”라고 대답을 하지만, 그 대답조차 거짓말이라고 볼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대답 뒤에 “제가 생각해도 참 지독한 늦둥이에요.”, “평소에도 같이 다니면 제가 엄마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하는 등의 설명까지 덧붙이곤 했다.
그러다가 내 동생이 세 살, 내가 스무 살이었던 어느 날, 당황할 정도의 질문공세를 받았다. 동생을 데리고 슈퍼에 갔었는데, 역시나 그 슈퍼에서 일하시는 분이 ‘둘이 어떤 사이냐’고 물어왔다. ‘얘는 내 동생’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분은 ‘에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어떤 사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쩐지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이 참 응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무엇’이 떳떳하지 못해서 ‘무엇’을 숨긴다고 상상하는 것일까?
‘가짜’ 리틀맘이고 ‘가짜’ 미혼모인 내가 느끼는 시선은 참 곤욕스러웠다.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여자로 보이는 동시에 아이 엄마로 비춰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와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엔 무엇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있는가
모든 여성은 본질적으로 어머니라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사회적 편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여성을 바라볼 때 누군가의 어머니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민연, 2005, 50쪽), 일명 ‘리틀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그 생각과는 또 다른 복합적인 문제가 된다. 혼인을 해서 아이를 가지기 위한 성관계를 갖는 것과 그렇지 않은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가부장적인 생각은 확연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엄마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그저 ‘아이의 엄마다’라는 생각보다는 ‘미성숙한’, ‘어린 것이 벌써……’하는 생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시선을 받는 나 또한 충분히 불쾌함을 느끼지만,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바람 아닌 바람처럼 동생이 진짜 나의 아이라면 내가 받을 상처는 엄청났을 것이다. 만약에 ‘네, 이 아이는 제가 낳은 아이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그들은 내가 죄라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만들 것이다. 시선과 편견은 괜한 죄를 만들곤 하는데, 그렇게 시선이 가지는 힘은 굉장한 것이다. 시선 자체는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와 같은 사회적 낙인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진짜’ 리틀맘들은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그러한 시선들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10대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책임지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몇 안 되기 때문이다. 한 때 ‘리틀맘’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사회적으로 두각 되었던 때가 있었다. 2006년 KBS 2TV <인간극장>에서는 10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녀, 엄마가 되다’가 방영됐고, 네티즌들은 그에 따른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린 부부를 방송에서 지나치게 미화시킨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히는 네티즌들이 참 많았는데, 그것은 편견으로부터 시작된 생각 아닐까? 좌충우돌의 10대 결혼생활과 자신들의 사랑하는 아이를 지킨 이들이 아름답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비난은 아이의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쏠려있었다. 사람들의 초점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보다 어린 엄마의 몸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인간극장>
그녀들을 성일탈자로 만드는 바람
혹시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대답을 예상하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건네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단순히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아기 엄마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내 여동생이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굳이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런데 나와 이 어린 아이의 관계가 자매이든 모녀이든, 궁금해 할 것은 뭐람?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우리의 관계보다는 나의 몸이나 과거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남자와의 ‘미성숙한’ 성경험과 그에 따른 예기치 못한 임신, 출산 등의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물론 과거보다 그 정도가 덜하기는 하지만, 이 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한 나라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혼전성경험을 도덕적 타락으로 보는 관점이 강하다.(2005~2007년 세계가치관조사에서 한국에서 “미혼모를 인정한다”는 비율은 3.5%로 나와 3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35위를 기록했다.) 혼전성경험을 일탈로 간주하는 연장선에서, 세상에! 어린 엄마와 미혼모라니! 그것은 굉장한 일탈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미혼모는 남성의 끝없는 성적 욕구와 기존 윤리의 갈등 사이에서 생긴 산물이다(김복순, 『페미니즘미학과 보편성의 문제』, 소명출판, 2005, 187쪽). 또한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남성의 성적 욕구는 더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모순적이게도 혼전성경험을 쉬쉬하며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그녀들을 비정상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개방적이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손가락질을 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미혼모나 리틀맘들을 무엇인가 은밀하고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여성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어린 미혼모를 마치 윤락가의 여성과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린 여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는 힘든 결정은 정상적인 것에서부터 한참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아마 그녀들이 한 대단한 각오와 힘겨운 결심의 과정보다는 ‘그렇다면 애 아빠는 누구일까?’하는 것들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시각이 가져다주는 문제
미혼모가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신체적 문제, 심리적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이 있지만 그 중 심리적 문제가 가장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엄마가 된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면 수치심과 죄의식 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심리적인 문제로부터 신체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들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혼모와 리틀맘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그에 따른 해결과정에 있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 그에 따른 사회적 복지서비스 등은 더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의 그 대책은 전무하기만 하다.
한국은 ‘미혼부’, ‘리틀대디’라는 말이 생소한 만큼, 계획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전가된다. 캐나다와 미국 같은, 이미 30년 전부터 미혼부 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김윤정, 「미혼모 - 왜 미혼모들에게만 돌은 던지나」, 『뉴스한국』, 2005년 1월 10일자). 물론 유교적 관점이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미혼모에게 좀 더 개방적인 문화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한 아이의 탄생은 양 쪽 부모의 책임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는 미혼모의 책임과 그 문제만 존재한다.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낙태를 하거나 입양을 보낸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제도가 이러한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비슷한 예로 ‘호주제폐지’를 들 수 있다.)
지금처럼 ‘개인적인 잘못이므로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방관적 태도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어린 부모와 그 아이에게 악순환의 고리만 안겨준다. 물론 성숙한 결정을 내리고 아이를 갖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때문에 순결 중심이 아닌 갑작스러운 임신을 예방하는 차원의 성교육 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다양성의 인정이 제일 먼저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와 내 여동생을 바라볼 때 한번에 ‘자매’로 알아봐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모녀 사이로 본다고 해도 그저 안타깝다거나 못마땅하다는 식의 부끄러운 시선으로만 보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사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든지 어린 엄마와 아이든지 간에 특이하게 생각될 것은 전혀 없다. 그저 남들과 조금 달라서 특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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