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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이해할 수 있나요?51호/달콤, 살벌 2010. 2. 18. 19:41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좌담
정리 : 편집위원 바늘
어느 유명인 혹은 그들의 아들이 ‘군대에 갔다/가지 않았다’의 여부로,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또는 ‘군가산점제도’ 등으로 쉽게 시끌벅적해지는 대한민국. 이 나라에서 군대라는 것은 참 예민한 사항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면 대부분이 병역의무를 져야하니 군대라는 것은 우리와 참 가깝기도 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군대가 무엇이기에 왜 한국 남자들에게 병역의무를 지워주는 것일까? 게다가 ‘전쟁’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의 군대는 전혀 우리와 가깝게 생각되지 않는다. 군대는 단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제도일까? 그리고 어른들이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고 말 할 때의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한 군인이 말한다. “난 정말 군대가 이해가 안 돼. 솔직히 내무실에서도 슬리퍼 필요하면 자기가 직접 가져다 신으면 되지. 밑에 애들이 그걸 왜 갖다 줘야 돼?” 그러자 다른 군인이 말한다. “군대란 조직에서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아주 중요한 거야. 걔네도 처음엔 다 슬리퍼 갖다 주고 그랬어. 너는 짬 먹으면 안 그럴 거 같냐?”
위의 대화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두 주연들이 하는 대사다. 둘은 군대를 두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 둘 중 누구의 생각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위계질서와 복종/명령의 강압적인 것들이 유일하게 허용되는 공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그러한 군대의 현실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됐다는 영화이다.
성심교지편집위원회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줄거리
‘모범적인’ 군생활을 해온 병장 태정은 중학교 동창인 승영이 같은 내무반의 신참으로 들어오면서 문제를
맞는다. 위계질서가 있는 군대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승영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승영의 태도가 불거져 문제가 일어나고, 승영은 고참들의 미움을 받는다. 태정은 그럴 때마다 승영을 감싸주지만, 오히려 태정이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이곤 한다. 시간이 지난 후 승영은 지훈을 후임으로 받게 되고, ‘후임에게 잘 해주리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지훈에게 친근하게 대해준다.
얼마 후 태정이 제대를 하고, 감싸주는 이 없이 군내에서의 따돌림을 견뎌야 하는 승영은 군대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변해간다. 그러던 중 여전히 군대에 ‘적응’을 못하고 외톨이로 남은 지훈은 자살을 한다. 휴가를 나온 승영은 이 문제로 태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할 말이 있다던 승영을 태정은 외면하고, 결국 승영도 자살을 한다.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와 군대
바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모인 다섯 명이 참 다양하네요. 군대를 갔다 온 남자도 있고, 이제 갈 남자들도 있고,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남자와, 여자도 있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들도 다양할 것 같아요. 그럼 먼저 영화를 보고 군대에 대해 느낀 점을 얘기해볼까요?
blackflag) 저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사실적인 거예요. 전쟁 자체나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다루거나 아니면 군대를 미화시키고 즐거운 곳으로 표현하거나 과장시키는 기존의 영화에 비해서 사실적인 영화였어요.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이 영화가 나왔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이 리얼하다고 해서 무서워서 못 봤거든요.
오아시스) 제가 군대에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 영화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에게 군대에 개인적인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가기 힘들다고 들었고……. 내가 봤을 땐 그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제 신념에 비추어 군대 가는 것이 약간 걱정이 되네요.
날개) 저도 얼마 후에 군대에 갈 테니 남 일이 아니에요. “군대에 나오면 사람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권위에 복종하고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 불량스럽게 행동해야 하는데, 평범한 아들들이 가는 군대가 참 삭막하고 위험하잖아요. 위계질서와 파시즘, 심하게는 인간쓰레기 양성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찬표) 오아시스와 날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군대라는 것에 대해 간접경험 밖에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들었던 군대 이야기와 이 영화를 비교했을 때 참 비슷했어요. 영화 속에 나오는 군대의 모습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해요. 군대라는 공간이 비합리적인 공간이고, 영화에서도 작업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거의 없잖아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낭비의 공간인데, 그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군대를 바꾸고 싶다는 승영이 어느 순간 오히려 군대에 적응하는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또, 상병으로 병장이 된 사람이 승영 보고 “이제 군생활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슬펐거든요. 그런 것이 계속 대물림되니까, 뭔가 승영이 바라던 대로 군대를 바꾸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어요.
바늘) 사실 제가 군대 얘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어서요. 영화가 사실적이라는데, ‘군대가 저렇구나’하면서 새롭게 봤어요. 저는 태정의 여자 친구 지혜의 역할에 비중을 두고 봤거든요. 지혜는 제 삼자에다가 여자라서 군대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중학교 동창이면서 군대 선임과 후임인 태정과 승영의 관계가 어떤지 잘 모르잖아요. 영화 끝 부분에서 지혜가 자신과 사이가 안 좋지만, 물질적으로 필요한 사람 얘기를 하는데, 태정이 “그냥 네가 먼저 사과해”라고 말을 하잖아요. 태정이 그렇게 쉽게 말하는데, 군대를 갔다 오면서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리화
바늘) ‘양심적인 군생활’이라는 거 있잖아요. 양심적인 게 가능한가요? 만약에 승영이 군대를 바꿨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아시스) 승영이 꿈꿨던 군대는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던 것 같아요.
blackflag) 승영은 자기 나름의 신념이나 합리적인 부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자기 슬리퍼같은 건 자기가 챙기고, 개인의 책임은 개인이 지고 하는 것들이요.
찬표) 군대 안에서 완전한 합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죠. 군대라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건데. 이 영화에서 좀 아쉬웠던 점은 승영의 저항 같은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고, 결국 군대의 시스템에 승복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날개) 승영이 태정에게 뺨을 맞은 부분이 승영이 군대에 승복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요?
오아시스) 오, 그런 것 같네요.
날개) 솔직히 신검을 받고 입영시기를 재고 있다는 것으로도 자신의 신념은 죽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솔직히요. 그래도 확실한건 폭력은 절대 피해야겠다는 거요.
바늘) 군대에서 폭력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군대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나는 선임한테 엄청 맞았고 나도 나중에 후임을 혼내고 그랬다’라는 얘기를 잘 안하고 즐거운 얘기만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군대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합리화 시키거나 미화를 시키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거든요.
blackflag) 군대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들이 많이 변하는데 무릎 꿇는 걸 배우러 가는 거죠. 군내에서도 그런 것이 합리화되서, ‘악인이 있어야 군대가 잘 돌아간다’, ‘때리는 사람이 있어야 잘 돌아간다’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나도 군대에 가기 전에는 ‘양심적 군생활을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갔는데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누군가에게 강요도 하게 되고, 항상 군대에서 나오는 말이 있는데 너를 만만하게 봐서 그런다. 처음에 잘 길들여야 된다. 잘해주면 안 된다. 선임 무서운 줄 알아야 된다. 그런 시스템 속에 있을 때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속의 군대
날개) 저는 군대에 가서 그 상황에 있으면 적응을 못 할 것 같아요.
blackflag) 적응 못할 것 같죠? 일주일만 있어봐요. 군대라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잖아요. 하지만 강압적인 시스템이 분명 사회에도 있는데, 그런 것이 군대에서는 사회에서보다 단순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군대에서는 단지 명령과 복종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외부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잖아요.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는 말에 대해 계속 아니라고 부정했더니 교수님들이 “자네는 이제 그만 물어보게”라고 말을 한 사례가 있다네요. 승영이 받았던 취급처럼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요.
날개) 그런 건 한국사회에 태어나서부터 시작되죠. 초등학교 땐 교장이 떠드는 뻔한 얘기 들으러 연병장에 줄, 열 딱딱 맞추고 부동자세로 서 있게 하는 것부터 중, 고등학교의 두발단속, 질문 하는게 개기는 걸로 인식하는 선생님……. 그거 말고도 뭐 시켜먹을 때 메뉴가 이것저것 나오면 통일! 외치는 사람들도 있지요.
오아시스) 이 나라 전체가 군대 적이고 남성주의적인 것 같아요. 학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학생들은 늘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 사람이라는 게, 군대에서는 전투용이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에요.
‘용서받지 못한 자’
찬표) 제가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훈이 죽고 나서 승영이 휴가 나온 다음에 태정을 찾아가잖아요. 여기서 승영은 태정에게 찾아가서 자기 잘못이 아니었던 걸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나는 지훈에게 잘 대해줬고, 잘못한 것 별로 없이 군생활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훈이 죽은 거잖아요. 그 얘기를 태정에게 하고 “너는 잘못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죠. 승영은 지훈이 죽은 것이 태정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지훈은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죄책감 같은 건데, 그것에 대해서 태정이가 승영한테 일정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하려고 했는데, 태정은 들어주지 않았던 거죠. 하필 태정을 찾아간 이유가 잘못이 없다는 걸 인정받고 싶고, ‘너 때문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라고 생각해요.
blackflag) 태정이가 항상 승영에게 “너 이렇게 하면 안 돼” 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 나는 네 방식대로 했는데 이렇게 됐지 않았냐. 하고 책임을 묻는 거죠. 그런데 영화 제목이 <용서받지 못한 자>잖아요. 무슨 뜻일까요?
오아시스) 이 영화는 단지 군대에 국한된 영화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것 같아요. 용서를 하고, 안 하고의 주체는 대중이고요.
바늘) 그런데 대중이 용서를 할 수 있고, 없고의 권한이 있나요? 제 생각에는 자신의 잘못을 빌려고 했는데, 사실은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용서해줄 사람도 없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승영이 지훈의 죽음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지만 사실 그건 승영의 잘못이 아닌 거죠.
날개) 일단 표면적으로 보면 자살한 승영을 말할 수도 있겠죠. 태정에게 어느 정도의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때도 ‘과연 누가 용서를 하겠느냐’라는 의문점이 남는데, 그는 승영의 후임인 지훈이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용서받지 못한 자게 되겠지요.
윤종빈 감독은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제도와 집단, 서열주의가 개인을 억압하는 부조리, 획일화된 남성성을 강조 하는 권위적인 사회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보고자 이 주제를 영화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소재가 나오긴 하지만, 분명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굳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군대를 경험한다. 누군가가 통치하기에 편하게 만들려는 사회 속에서는 개개인의 신념은 꺾여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내가 고참 되면 모든 걸 바꿀 거야.”라는 승영의 다짐을 하며 군대에 들어간다. 군대의 밖에서도 지금보다 더 자유롭기를 바라는 누군가는 사회를 바꾸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도 하고 어느 샌가 세상과 타협을 하기도 하며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탓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그러한 구조에 놓여있는 것을.'51호 > 달콤, 살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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