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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아웃소싱53호/악마의 맷돌 2010. 6. 11. 16:21
편집위원 박진홍
여기 자본이 있다
2009년 1월 20일 이른 아침 서울 용산
참사가 빚어진 용산 4구역은 용산재개발 사업 지구로 지정되어 삼성물산 주도로 포스코, 대림건설 등 건설대자본이 최소 1조 4천억원의 투자수익을 올릴 것으로 점쳐진다. , 경찰특공대와 세입자, 전국철거민연합 조합원들의 대치 속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후속 보도를 접한 다수 국민은 사태의 원인을 조합-조합원, 행정당국-조합원간의 의견조율실패와 이로 말미암은 전철련의 개입, 불법점거와 화염병·새총으로 대표되는 폭력으로 생각했다. 정부는 사건 직후‘사적 분쟁’에는 보상과 책임자처벌을 할 수 없다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일면적·피상적인 방법으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한계를 가진다. 사적 분쟁에 공권력을 투입해 분쟁 당사자 중 하나를 없애버린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는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한 꼴이다. 결국 국가는 남은 이해당사자, 즉 조합과 투기건설대자본을 위해 철거민들을 청부살해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인 양 잘못을 회피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국가에 관한 근본적 의구심을 품게된다. ‘국가의 존재근거는 대다수의 국민을 위해선지, 소수의 독과점적 대자본을 편애하기 위해선지.’ 임시상가를 요구하며 가게 한 칸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 저항한 사람은 테러리스트로 돌변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철거민을 내쫓고 막대한 부를 증식시키는 대자본은‘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사실 국가의 (대)자본에 대한 편향성은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표출되는 흐름이다. 이같은 경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미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국가로, 대자본이 국가와 국민은 물론이고 사회제도와 그 하부기반을 아예 잠식하고 있다. 작금 한국사회에서의 이러한 현상들을 꼽아봐도 금방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쌍용차 노-사갈등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진압, 한국타이어·삼성반도체 노동자 산업재해에 눈감기, 허울뿐인 재벌규제, 공공부문의 대자본으로의 민영화, 수출 대기업만을 위한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이고, 헌정이래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며 대자본의 딸랑이를 자칭했다고 평가할 만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 사면까지. 날로 점증하는 대자본의 영향력과 그들의 가려운 등을 눈 감고도 긁어주는 국가간의 금지된 스캔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둘 사이의 불꽃튀는 ‘썸씽’이 일어난 필연적 원인과 과정을 되톺는다.
원조 비즈니스 프랜들리
1.한국주식회사
일반적으로 한국 자본주의 발전단계 연구는 국가의 의한 철저한 계획과 통제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을 모든 사건해석의 바탕에 두고 있다. 10·26사건과 군사 권위주의 정권 몰락이 있은 지 근 20여년이 훌쩍 넘음에도‘새마을 운동 발상지’가 지자체 관광 코스로 올라와 있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국가주도형 경제체제는 한국인들의 경제관념에 큰 흉터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경제운용정책은 한국의 국가-대자본, 대자본-노동 및 다원적 관계의 근원으로 분석되곤 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외자차입과 국가보증, 전략적 산업정책하에 한국자본주의의 양적 비대화가 달성되었음은 부정치 못하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케인즈식 자본주의는 일단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적 효익이 배분되도록 하고, 자원배분이 왜곡되어 역선택과 외부효과가 초래되면 국가의 보이는 손이 시장실패를 다잡는 당근과 채찍으로 단순화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이는 손이 시장은 고사하고 정계·재계 등 전방위에서 주도권을 잡은 강권시대의 경제구조를 자본주의라 지칭할 순 없다. 여기선 위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재편과정과 자본의 전략을 중핵으로 다룰 것이다.
50년대 이승만 자본주의 국가는 한국전쟁 전·후로 시장기능이 거의 형성되지 있지 않아 분석에서 제외함. 50년대 자본축적과 국가기구의 관계를 파악하고 싶다면, ‘1950-60년대 한국의 자본축적과 국가기구의 전면화 과정’ 김정주(성공회대)를 참조. 1960~70년대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은 기존 미국의 원조경제에서 국민경제로 이행되며 시작된다. 미국주도의 전후(戰後) 원조경제는 삼백산업으로 상징되는 소비재 위주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아울러 감소추세였던 원조물자와 달리, 시장은 원조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어 항시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5·16쿠테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의 혁명 공약에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재건’을 언급했을 만큼 당대에도 최우선 정책목표는 경제성장과 안정화였다. 원조에 의존한 허약한 펀더멘털(fundamental)로 말미암아 다수의 농촌실업자들을 산업발전에 투입해야 했고 외부도움 없이도 자주경제를 실현할 새로운 국가의 역할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학적 배경에서, 성장동력과 잉여노동력을 도시·산업 임노동자로 인도할 대자본은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국가에게 필연적으로 긴요한 존재가 된다. 국가는 요구에 따르지 않는 등 구미에 맞지 않는다 하여 손봐주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이러한 비정상적 역사·정치적 환경은 막 발아한 자본주의를 한국만의 특수한 양태로 규정짓게 한다. 국가에 의한 인위적 부양이 국가의 자본을 축적한다는 일반적 학계의 정설은 한국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한국의 자본축적 매커니즘의 목적이 민간자본에 있었고, 종국“정부에 의한 체계적인 가격왜곡 및 재량적 개입정부가 시장에 재량적으로 개입한 전례는 수없이 많지만 부정축재자처리와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1961.06.20)은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자본이 따르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성은 이 조치에 따라 인수했던 3개의 은행을 국유화시켰다. Amsden : 1989 ”이 대자본의 급성장을 초래하게 된다(표1·2). 국내자본을 조달하여 자본주의 발전을 꾀했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민간(대)자본의 비중을 살펴보면 간혹 군사·권위주의 정권들이 시장친화적이란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한 일면 파악에 그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1) 부문별 국내총고정자본형성(단위:%).한국은행『국민소득연보』
*재정투융자 = 정부투자 + 민간투자 中 재정자금
민간투자
정부투자
재정투융자
자체자금
재정자금
합계
1962
27.5
39.3
57.8
40.2
72.5
1963
68.0
12.4
80.4
19.6
32.0
1964
68.4
7.8
76.2
23.8
32.0
1965
65.1
8.5
73.6
26.4
34.9
1966
67.1
10.8
77.9
22.1
32.9
1967
65.8
15.5
77.3
22.7
34.3
표 2) 법인기업들의 자금조달 추이(단위:%). 한국은행『한국의 자금순환』1971
*외부자금 = 금융기관차입 + 증권발행 + 사채매입 + 외자차입
1961-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내부자금
10.6
40.8
54.5
47.7
33.0
26.5
24.1
외부자금
89.4
59.2
45.5
52.3
67.0
73.5
75.9
금융기관차입
32.2
24.7
19.0
32.4
18.7
29.9
36.5
증권발행
-
17.0
14.6
11.6
8.9
7.2
6.7
사채차입
-
3.6
6.6
2.7
6.5
9.6
3.5
외자차입
-
13.9
5.4
5.6
32.9
26.8
29.2
2. 자본의 전면화와 삼성공화국
폴 크루그만은 “훨씬 적은 시민적 자유와 보다 많은 계획에 기초한 경제들의 우수성” (1994. 76)으로 일컬어지는 신중상주의는 언젠간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세 말기 자본주의의 태동이었던 중상주의와 관료제, 엔클로저 운동을 상기시키는 한국자본주의의 1960~70년대 비약적 팽창은 1980년대 중반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엔 불균형·차별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산업·지역·소득격차가 벌어졌으며 오랜 정경유착
자본은 자신의 이해와 이익을 순수 경제적 관계를 통해서 관철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계가 곪아 부패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50년대 이후 약 30여년간 국가의 계획합리성에 기대 사업을 영위했던 탓에 기업가의 창의와 혁신을 펼칠 기회가 없었던 엘리트 대자본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여지껏 몸집을 불리고 독점사업을 하는 데 최종 허가를 내준 국가주도 자본축적체계가 부패하기 쉬우며 위계적(Top-Down)이고 자유·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아 자본이 국가의 행정부서처럼 일사분란하게 상명하복식 태도를 취해야 했다고 논박한다. 1980년대 후반 민주·노동자 대투쟁 직후에는 과거 자본축적구조를 가리키며, 그것은‘경제성을 위해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논리하에 국내 정치에서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려고 장기적인 독재를 허용할 뿐, <중략> 고도성장은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독재에 대한 역사옹호론으로 변질’한국경제성장과 삼성의 자본축적. 1998. 김인영(한림대) 한다고 설파한다. 더불어 해거드(Haggard)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분석하며 동아시아의 급속한 양적성장은 맑스가 주지하였던‘본래 국가(정치권력)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한 힘에 지나지 않는다’와 꼭 빼닮은‘권위주의적 독재자가 노동계급에게 돌아가야 할 파이를 제한하였다고 하였다. 권력의 장기집권을 위해 꾸준한 경제안정과 성장은 정치적 안정성에 있어서도 매우 중차대한 과제라는 점과 산업정책을 펴는 데 극히 보수적이란 태생적 한계가 자본세력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와 같이 정부에 의한 시장실패를 겪은 대자본과 자본일반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들먹이며 모든 잘잘못을 국가에 떠넘기는 아전인수격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불과 10여년 후 어떤 시대가 밀물처럼 다가올 것인지, 기존 국가-자본의 관계가 전도될 것인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꼭 중세 말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단계의 부르주아지들처럼.
한국현대사에 있어 자본주의 경제를 추동한 주체는 중앙정부였으나 자의든 타의든 다 차려진 밥상머리에 앉아 숟가락에 올려주는 반찬만 입에 넣었던 기업들도 허용된 범위 안에서 혁신을 거듭하는 선구적 대자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해외에선 한국 대자본(chaebol)의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오글(Ogel)은“한국자본주의는 독점을 특화한 기업 자본주의”란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재계는 발끈하겠지만 실제로 국내총생산 대비대자본의 비중을 고려해 본다면 그의 말이 허무맹랑한 말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표3).
표 3) GDP대비 30대 재벌, 5대재벌의 비중(금융보험업제외). (단위 : %) 김상조 2005
1987
1990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자산
/GDP
30대 재벌
55.1
61.9
69
75.8
88.8
93.4
79.6
72.3
58
54.9
5대 재벌
29.9
34.1
39.1
43.2
54.5
62.5
51.5
42.3
35.8
34.6
매출액
/GDP
30대 재벌
66
61.7
73.1
78.6
83.9
88
72.4
78.8
67.5
65
5대 재벌
41.9
37.6
48.7
52.6
57.8
66.9
54.6
56.5
44.1
44.6
부가가치/GDP
30대 재벌
10.8
12.1
14.2
12.8
11.6
13.4
11.4
10.9
9.8
11.4
5대 재벌
6.1
6.7
8.7
7.6
7.5
7.6
9.1
7.6
6.7
8.2
3. 근대국가의 집행부는 부르주아의 전체의 공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회에 불과해
스테판(Stefan) 『국가와 사회』 1990~2000년대는 한국 자본주의 지형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 몇몇 대자본과 계급분파를 제외한 노동자·민중이 경제위기의 독박을 쓴 암흑기였다. 그 격변기 중심에는 1997년 말 외환위기사태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IMF구제신청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 특정 경제주체의 전적인 과오를 물을 순 없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사실은 국가와 자본간의 관계양상이 대립적 의존관계에서 한발 움직였다는 것이다. 흔히 문어발 확장으로 일컫는 과도한 사업다각화는 자본의 기획·추진 아래, 국가의 방관에 의해 초래된 외환위기 전주곡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YS·DJ정부의 비상경제위원회로 대표되는 시장개방과 세계화, 외자의 유입과 유출 장려, 대대적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이제 국가-재벌관계,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 논의로는 1990년대 자본축적 문제를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새로운 연구이론의 필요성이 대두함에 따라 맑스주의 국가론에 따른 근본적 의문들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한계는 무엇인지’, '대자본-시장주의의 재상산원리가 국가기제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와 같은 근원적 물음은 1990년대 자본축적 문제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금융위기와 자본사이의 경쟁, 산업구조조정의 악조건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과 국민·참여정부 사이의 이중관계야말로 자본주의 국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참여정부는 희망돼지저금통 모금에서 보여지듯,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기대를 안고 출범하였으나 국익을 앞세워 한미FTA·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등 대자본에게 백기투항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복지·정치 일반에 대한 개혁정책을 진전시켜 나감에 따라 ‘좌파신자유주의’, ‘삼성과의 연합정권’이란 평을 받았던 것이다.
맑스주의 국가론에 입각한 자본주의 국가연구의 선구자인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국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이 보장되어야만, 그래서 노동자계급과 인민 대중에 대한 착취가 유지되어야만 존재한다. 생산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관계들로서의 재생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다”라며 심지어 자본주의 자본축적관계가 존속하는 한 급진좌파 사회주의세력이 아무리 국가기제를 원활히 작동시킨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권력의 한계는 대자본 카르텔에 기초해 응축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적 자본축적체계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재생산을 강요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이 구조를 변화·축소·와해시킬 명분도 의무도 없다. 국가의 구심성·장치통일성은 결국 국가의 존재이유를 대자본의 충복으로 만들 것이다. 또한 특수한 물질적 응집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피지배계급 억압을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의 삼성공화국화는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 사실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자본주의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자본과 앞에서 다룬 한국만의 특수성을 두루 고려한다면 그 뿌리 끝엔 정실자본과 성장중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공범(국가·대자본)들이‘파이를 키워 나누자’는 지겨운 변명을 다신 입에 담지 못하게끔 그들의 알리바이의 진위를 분석해야 할 때다.
일단 아무개 언론사 기자가 신입사원들에게 보여주고 외우게 시켜야 한다고 극찬한 시구를 먼저 보자.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없다/ 앞만 보고 가자 (2010.03.24)
이런 시구가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작가는 과거에 쓴 시의 내용을 복사 후 붙여넣기했다.
경제적 국경은 사라져…/ 이류와 삼류는 힘없이 쓰러지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뚜렷해…
경제우선, 실리추구의 시대물결에/ 동참하지 못하는 국가와 기업은 좌초해…
이제 우리 국민과 정부, 기업은/ 힘을 합쳐야 합니다 (2004신년사)
국민과 국가경제, 기업을 위한 마음과 시대흐름을 꿰뚫는 혜안이 돋보이는 두 작품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손끝에서 나왔다. 위의 작품 내용을 접한 후, 신문과 뉴스·매스컴에서 1/4분기 성장률 둔화·실업률·기저효과·OECD 대비 GDP수치와 그래프를 오버랩하면 어떤 내적 변화가 생길까.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이러다간 망한다.” 즉 현 상황에서 좀더 빠르고 창발적인 재화와 용역이 시장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가정은 고사하고 기업과 국가가 풍비박살 날 것이라는, 대자본이 즐겨 사용하는 강박관념레퍼토리다. “처·자식빼고 다 바꾸라
그만큼 변화와 혁신경영에 주력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정작 발언한 CEO가 몸담고 있는 기업은 이 조언을 무색케 하는 것 같다. 쇄신을 한다면서 황제경영으로 회귀하더니 낡아빠진 변명을 계속하는 걸 보면 말이다. ”는 대기업 CEO가 대학생이 존경한다는 인물에 매해 뽑히는 것도 이런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는 대자본이 국외로 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국내투자를 원하기 때문에 돈 벌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기업은 온갖 유연성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진흙탕싸움에 몰입해야 한다. 사회는 G-20을 넘어 G-7으로의 진입을 갈망하며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대자본 법인세율 인하에 동조한다. 사회구성원들은 파편화된 여러 자아를 부단히 만들어서 대자본 입맛에 자신을 변형시키고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에 매몰되고 있다. 이제는 상식을 뛰어넘어 일상이 되어버린 전전 사회에의 대자본·신자유주의화는 97년 외환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룬다. 국민들은 망국을 피하기 위해 구국의 마음으로 돌반지를 기꺼이 내며 ‘대자본=국민경제’란 새로운 등식을 기존 공포의 동원공식과 연결·확장시키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경제법을 농락·희롱한 이건희가 스포츠계와 삼성계열사 사장단협의회, 국민 대다수의 암묵적 동의하에 사면된 것이다.
삼성(대자본)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 대자본의 아웃소싱, 껍데기 대한민국 민주주의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연합·공조로, 경제파탄 정부로 낙인찍혀 지지율 반등에 실패한 참여정부, 중동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박정희의 향수를 자극한 이명박,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라 욕하는 사례에서 보이듯, 자본은 이성과 정의, 원칙을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대자본은 노골적으로 국가기능을 각개격파해 내편으로 포섭하고 있다.
참여연대, 한국방송 <삼성보고서> 따지고보면 거의 모든 사회에서 지배계급들의 카르텔과 장벽관행은 존재하기 마련이나, 한국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보통의 그것과는 상이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대자본의 시스템 재생산원리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 중 밀리반드(Ralph Miliband)가 주장한 내용은 이 문제에 새로운 접근방식을 열게 해 준다.Ralph Miliband『자본주의 사회의 국가』 참여연대와 한국방송의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대자본 : 필자삽입)의 힘은 그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발현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취업한 고위공직자·법조인·언론인·삼성계열사 사외이사 등이 있으며 이들은 로비부터 대자본의 이해를 위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존립근거까지 무시하는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입법부는 대자본에게 유리한 관련 법안을 상정·개정하고 언론은 칭찬일색, 비판엔 함구하고 있다.동아일보는 특히 태안 삼성중공업기름 유출사고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비판이 잇따르지만 사임·경질 후에 언제나 든든한 대자본의 품이 있기 때문에 가책없이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자본은 인적네트워크를 기존 인사 영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진 않고 있지만 향후 삼성장학생들의 귀추가 주목된다. 대자본의 사회지도층 포획, 인적네트워크의 자발적인 복종과 재벌·정실자본주의 시스템 재생산은 결국‘삼성(대자본)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로 의식화된다.
자전거 페달질을 멈추면 중심을 잃고 넘어지듯이 자본주의 국가도 끊임없이 (대)자본을 부양해야 하므로 결국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들의 이익과 이해관철을 위해 봉사한다. 대자본은 국민과 국가기제 일부를 내편으로 만들어 모든 사회시스템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아직 완전하진 않다. 국가기제는 자본주의를 한단계 뛰어넘어 위상을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에 있어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만큼 중차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미FTA와 그에 따른 후속조치인 美소고기 수입조치를 전후해 일어난 거대한 촛불민심을 억누른 공권력도, 국가의 탈을 쓴 자본의 겉치레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추진도 모두 국가에 의해 실행될 수 있는 것들이다. 상식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자본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장친화적·시장중심·경제와 복지 등 사회 전방위를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80-90년대와 90년대 말 외부의 압력과 강제로 말미암아 시장을 연 남아메리카(멕시코)와 한국(동아시아)을 분석하면 국가개입은 (대자본의 입장에서) 늘 선(善)으로 여겨진다. MB폰을 개통시켜 기업운영 애로가 있을 때 “잠잘 때도 머리맡에 핫라인용 휴대전화를 놔두고 언제든지 불편사항을 듣겠다”고 밝혔듯 국가는 대자본을 국가운영 최우선 파트너로 삼아 친자본적 경제체제를 밀어붙이는데 이를 크게 3가지의 역할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재편의 사회적 수용을 위한 국가의 역할 : 멕시코 살리나스 정부 시기를 사례로. 박병수. 02 세계화의 추세와 자본의 전략. 정성진. 99 첫째는 대자본이 멍석을 깔아놓은 위기와 공포감에 불을 더 지르는 것이다. 신성장동력·GDP 2만 달러 같은 전망을 내놓으며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그래서 국가·기업·국민이 마치 유기체처럼 허리띠를 졸라매자 보채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방만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높은 대외의존도를 이용한 FTA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교묘히 꼬드긴다. 둘째는 친자본화를 국가운영 목표로 둠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이를 통한 동의 창출이다. 지방에 특구를 지정하거나 농민지원금·유가환급금 따위의 겉치레·생색내기 조처는 일시적인 여론반발을 억누를 순 있겠지만 종국에 물거품이 된다는 교훈을 멕시코의 국민대단결프로그램이 알려 주고 있다. 셋째는 저항세력의 편을 갈라 내부싸움을 부채질하는 분리통치·신노사주의라 할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임노동자이고 사업장마다 노동조합이 있다는 전제는 대자본화된 국가에겐 언제나 뇌관을 안고 있는 셈이다. 최근 날치기처리된 노동조합법과 비정규직관련법안도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이들에 대해 일부에선 세계화된 대자본화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 맑스주의의 혁명적 대안이나 케인즈의 자본통제론, 새로운 국가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느것도 실현된 바가 없는 이론에 그쳤거나 단단한 벽에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든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대자본과 세계화의 연합공세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지만) 국가마저 대자본 손에 떨어졌으니 마지막 카드는 민주주의제도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피와 땀으로 일궈낸 한국의 정치사를 상기하면 무척이나 견고하게 작동할 것 같은 민주제는 매도값에 팔려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골목까지 파고드는 SSM 규제 눈감기, 경제교과서를 친자본화 할 전국경제인연합회 편들기, 국가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붙어 최저임금을 한푼이라도 깎으려는 작태,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CEO출생을 축하하겠다는 한국방송 등 민주주의를 욕보이는 추태는 끝도 없다. 한국은 20여년이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라 자랑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양적 비대화는 몇몇 국가에 국민경제를 볼모로 맡겨 대외의존도를 치솟게 해 한국의 국가자율성을 저하시킴과 동시에 97년 외환위기를 부채질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빈곤과 양극화·복지정책 축소·노동유연화가 초래한 불안정한 삶으로 처참하게 파편화되어 민주주의나 정치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자본에 포섭된 저널리즘과 국가기제도 현 시스템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으나 악순환을 끊을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일차적으론 기존 대자본이 잠식한 껍데기 민주주의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선 지배적 관념을 분쇄할만한 대안 헤게모니를 이번 기회에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일부 정당에선 경제부문의 민주화와 국가권력의 개입으로 대자본화된 민주주의를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를 대의하는 입법·사법·행정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계급의 소유물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를 발판으로 삼은 대자본(재벌)·기득세력에 대한 문제의식에 눈뜨고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성장제일주의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가 한국민주주의를 대자본의 수정에서 건지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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