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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 벽에 갇힌 청년 주거난, 깰 수 있을까요카테고리 없음 2021. 12. 6. 20:21
고수안 수습위원
변기는 발코니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욕조와 세면대가 있는 곳은 욕실인지 방인지 구분조차 어렵다. 뒤이어 패널이 “재밌다”라며 리액션을 하고, 자막은 ‘창의적인 인테리어’라는 말로 주거 공간이라 보기 어려운 곳을 ‘한 번쯤 살아볼 만한’ 특이한 구조로 포장한다.
<구해줘, 홈즈!> ⓒMBC
지난겨울, 학교 앞 월세방을 구할 때의 일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불투명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을 마주했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비치자, 부동산 중개인은 “샤워할 때 답답하지 않아서 좋지”라는 말을 꺼냈다. 몇만 원이라도 저렴한 집을 구하려다 보면 제대로 갖춰진 집을 바라는 것이 과한 욕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해줘, 홈즈!> 속 황당한 구조들은 현실에서 세입자들이 마주할 집들과 다르지 않다. 예능은 예능으로 보라고 한다지만, 누군가는 살아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히 웃을 수만은 없다.
늘어가는 청년 주거 독립, 준비되지 않은 사회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1)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는 31.7%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20대 1인 가구 수는 19.1%를 기록하며 전 연령층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1인 가구는 더 이상 일시적인 주거 형태가 아닌, 변해가는 시대의 주요한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1인 가구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비율은 10%를 넘어선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한 가구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집 이외의 생활 장소로서 주택의 요건ⅰ을 갖추지 못한 거처를 말하며, 숙박업소 등의 객실이나 고시원, 쪽방 등이 포함된다.2) ‘주택 이외의 거처’ 뿐만 아니라 최저주거기준ⅱ,3)에 못 미치는 주택이나 옥탑방, 반지하 등에 거주하는 가구도 주거 빈곤 가구로 볼 수 있다.
최저주거기준
제4조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 주택은 안전성·쾌적성 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1. 영구건물로서 구조강도가 확보되고, 주요 구조부의 재질은 내열·내화·방열 및 방습에 양호한 재질이어야 한다.
2.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3. 소음·진동·악취 및 대기오염 등 환경요소가 법정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4. 해일·홍수·산사태 및 절벽의 붕괴 등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이 현저한 지역에 위치하여서는 아니된다.
5. 안전한 전기시설과 화재 발생 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구조와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20대 청년층은 어떤 환경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현행 주거급여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는데, 30세 미만 1인 가구는 주소지를 달리하여도 부모와 한 가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30세 미만은 혼인을 하거나 중위소득 50%의 소득이 있는 경우에만 부모와 개별의 가구로 인정된다. 하지만 주거 급여는 1인 가구 기준 중위 소득 45% 이하의 경우에 지급4)되기 때문에 20대가 1인 가구로 인정되면 필연적으로 주거 급여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사실상 지원이 필요한 대상에게는 지원이 닿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부모와 따로 사는 19세 이상 30세 미만 미혼 자녀에 대해 원칙적으로 부모와 별도 가구로 인정’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부모의 지원이 청년에게까지 수급될 수 있고, 20대 청년의 사회 근로 경험과 취업요인이 축소될 가능성’을 이유로 20대 청년 전체를 부모와 별도 가구로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 같은 보건복지부의 답변은 법적으로 성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20대를 부모에 귀속하는 인격체로 보고 있음과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청년 빈곤을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한 자녀라도 20대라면 부모 세대가 응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울공화국’ 속 청년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전국 4년제 대학 입학 인원 중 수도권 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40.4%에 달한다.5)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비수도권 대학이 지속적으로 인원을 감축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도권 대학은 오히려 정원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간 기준 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기도 했다. 전체 국토 면적 중 11%밖에 안 되는 곳에서 인구의 반 이상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인서울’이라는 말로 대학 진학의 성패를 가르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긴다. 사회의 모든 화살표가 한 곳을 가리키고 청년들은 그것을 좇는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성’에 들기 위한 노력은 자·타의를 막론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또 다른 기형적 환경으로 이어진다. 2019년 기준 주택보급률은 비수도권 110%, 수도권 99.2%로 집계됐다.6) 비수도권 주택 열 곳 중 한 곳은 빈집이라는 뜻이다.
비수도권 소도시의 주택은 비어 가는데 인구 과밀의 서울에서는 좁은 방에 몸 하나 넣는 것도 힘들다. 청년은 대학 진학을 위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보와 자본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모든 것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 그에 따른 청년의 밀집과 주거독립.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안에서 청년 주거난은 말 그대로 ‘재난’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로 산다는 것
앞서 말한 불투명 벽의 화장실, 혹은 신발장에 서서 요리를 해야 하는 주방, 심지어 싱크대나 세면대가 없는 등의 황당한 구조들은 특히 월세방, 주로 원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공간과 자본을 절약하여 방을 하나라도 더 만들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저 한 몸 누울 공간과 아주 최소한의 의식주(衣食住)만 가능하도록 해놓은 곳에서, 세입자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일시적인 존재’로 살 수밖에 없다.
계약과 생활, 계약 종료 이후 집을 나갈 때까지의 전 과정에서 세입자는 철저히 ‘을’로 살게 된다. 대부분의 월세방은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대략 2주 내로 다음 세입자가 들어가는 방식으로 순환된다. 세입자가 아직 거주 중임에도 집주인은 부동산 중개사무소와 번호키를 공유하며 불쑥불쑥 다음 세입자 후보들을 불러들인다. 이전 세입자도, 다음 세입자가 될 사람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실 기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집주인의 노력에 세입자의 사생활은 여과 없이 ‘전체 공개’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이 관례처럼 진행되다 보니 세입자는 마땅한 대안 없이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 혹은 월세방에 사는 한 계속해서 ‘을’이 된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많지 않은 청년층은 보증금 문제에 특히 취약하다. ‘혹여나 집주인에게 잘못 보였다가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은 보증금을 지불하고 돌려받는 순간까지 내내 세입자를 따라다닌다. 집을 빌렸을 뿐인데 기본적인 권리까지도 담보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장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되돌려 받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등 허점이 많아 현실적으로 제도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집을 소유하는 것은 주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내 집 마련’이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낼 수 없는 목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회는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되어 주거 권리를 찾으라고 말한다. 주거권은 일시적이거나 조건에 따른 권리가 아니며 자본으로 얻어내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집주인이 아닌 누구라도 보장받아 마땅한 ‘생존권’이다.
수도권 인구 과잉 상황에서 기회를 찾아 자본이 모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청년, 1인 가구의 증가에도 무너지는 세입자의 주거권. 이 모든 것에 청년 빈곤은 긴밀히 닿아 있다. 어느 하나 근본적인 대책 없이 청년들의 ‘고생’을 그저 일시적이고, 한 번쯤 겪어볼 만한 것으로 치부하며 ‘그럴 나이’라는 말로 방관한다. 한국의 모든 청년이 대학 진학과 사회로 나가는 준비과정을 부모의 품 안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대 1인 가구를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혼인 전까지의 가구 형태”로 보는 정책 기조는 사회가 맞춰놓은 ‘정상성’을 더욱 견고히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설령 이러한 과정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그것이 ‘일시적인 주거이기 때문에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에 있는 누구에게든지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정한 기회’의 시작이다.
ⅰ) 주택의 요건: 영구 또는 준영구 건물 · 부엌과 한 개 이상의 방 · 독립된 출입구 · 관습상 소유 또는 매매의 한 단위
ⅱ) 주택법 제5조의2 및 동법시행령 제7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함을 목적으로 함. 전용입식부엌, 전용수세식화장실 및 목욕시설을 갖추어야 함.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은 14m²
1) 통계청,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등록센서스 방식 집계결과 보도자료』
2) 통계청, 통계설명자료
3) 국토해양부공고 제2011-490호
4) 주거급여법 제5조 제1항 /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6조 제2항
5) 교육부,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
6) 통계청, KOSIS 지표, 주택보급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