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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펴내는 글79호(2021)/펴내는 글 2021. 12. 2. 12:40
우리가 지식이라고 믿는 것은 어떤 권위에 기반할까요? 그 권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우리의 지식은 어디로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할까요?
성심 79호를 집필하며 위의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특권입니다. 고등교육을 받는 집단에 속해있다는 특권이요. ‘특권’은 언제나 위계와 배제되는 이를 만듭니다. 성심은 언어를 통한 발화의 기회라는 ‘특권’을 가졌음을 잊지 않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쓰는 글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폭력을 가할 수 있음을 되새겼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 쓰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성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으며 썼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은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살고 있는 세계가 확장되는 일입니다. 세계가 확장되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실패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 실패하더라도 삶의 존엄이 지켜지게끔 하는 돌봄, 다음번엔 더 안전하게 실패하도록 안내해주는 지식 등이 주어져야 합니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성공의 기회’가 아닌 ‘실패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실패해도 환대받는 사회, 실패해도 안전할 수 있는 사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실패의 기회’를 보장받고 있을까요? 단언컨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실패의 기회’는 일부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어 있습니다.
‘지식 권력’과 ‘실패의 기회’. 나에게는, 당신에게는 이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지금의 세계가 만든 이 단어들로부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이 단어들이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어디에 있으며, 어떠한 존재인지 물어야 합니다. 지금의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 단어들은 앞으로의 세계를 지금과 다르지 않게 구성할 것입니다. ‘실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지식’은 특권층이 점유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소외하고 배척하며 수많은 타자를 만들 것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폭력을 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답을 찾고자 애써야 합니다. 완전한 답은 영영 찾지 못할 테고, 우리는 실패를 반복할 테지만요. 우리의 불완전함은 우리가 답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홀씨>는 답을 찾는 여정에서 남긴 성심의 기록입니다. 각각의 글은 홀씨입니다. 성심의 홀씨는 바람을 타고 독자에게 날아가 작은 꽃을 피웁니다. 독자가 보내올 홀씨도 있습니다. 당신이 보낼 홀씨는 <성심 79호>를 읽고 감응한 마음입니다. 성심의 글을 읽고 어느 쪽으로든 당신이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야기에 마음이 따라 움직이는 일은 언어의 확장이자 세계의 확장이기 때문입니다. 넓어진 세계에서 우리는 더 나은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우리 정말로 더 잘 사랑해야 한다. 처음에 사랑했던 것보다 더 많이.”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사랑은 어쩌면 실패와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못나고 모난 마음이, 구질구질하고 약한 마음이 늘 함께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불완전하더라도 그 사랑의 범위를 넓히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잘 사랑할 수 있길, 더 잘 실패할 수 있길 바랍니다. 성심은 불완전한 사랑이 만들 변화의 힘을 믿습니다.
편집장 박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