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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도 교지를 읽을 수 있나요?73호/시각장애인도 교지를 읽을 수 있나요? 2018. 11. 29. 13:46
유승화 수습위원
성심교지는 지난 시간동안 휴대에 용이하고 가방에 넣을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교지를 출간해왔다. 이번 73호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교지는 비장애인인독자들이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작은 종이에 인쇄된 작은 글자의 교지는 시각장애인의 당연한 권리인‘읽을 권리’를 침해해왔다. 지금까지의 성심 교지는 오로지 비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성심 내에서 교지를 점자책으로도 발간하자는 의견이 몇 번 논의되어 왔지만, 예산 부족 문제 때문에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호에 권대옥 수습위원이 쓴 <당연하지 못한 ‘당연한 권리’ 청각장애학생 수업권> 기사를 계기로 성심은 점자책과 큰 글씨 책을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부천시해밀도서관(이하 해밀도서관)의 도움으로 적은 부수나마 교지를 점자책으로 출판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점자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해밀도서관을 방문하다
52번 버스를 타고 15분 남짓 달려 부천보건소, 건영아파트 역에서 내리면
부천시 해밀도서관(이하 해밀도서관)이보인다. 해밀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통합도서관이다. 해밀도서관 내부에는 자료실과 열람실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쉼터, 문화 강좌실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열람실에는 큰 확대기가 비치되어 있고 컴퓨터에 글을 읽어주는프로그램도 준비되어있어 시각장애인이 공부하기에 편리하다.
해밀도서관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건물이므
로 곳곳에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손잡이와 점자블록이 있다. 시각장
애인을 배려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해밀도서관의 내부를 견
학해보니 가톨릭대학교의 밋밋한 바닥이 그들에게 얼마나 불편할지 느끼
게 되었다.출처 <성심> 해밀도서관
점자책의 제작과정
점자책을 제작하는 과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점역과 인쇄 및 제본. 점역은 점자가 아닌 글로 써진 책을 점자로 번역하는 일이다. 점역을 하기 위해서 우선 책을 스캔한 후 한글파일로 만든다. 이 과정은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스캔한 파일의 정확도가 70% 정도여서 오탈자는 직접 책을 보며 고친다. 그 다음에는 점자제작에 용이하도록 재편집한다. 재편집 된 것을 가지고 점역을 한 후, 다시 한 번 점자를 재편집하고 나서야 인쇄 및 제본을 시작한다. 한 장 한 장 점자로 인쇄된 종이를 손으로 접은후 제본기계로 제본한다. 간단한 일에서 복잡한 일까지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점자책을 출판하는 일은 일반 책을 출판하는 일보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1
따라서 점자책 제작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단순 노동이 많이 필요한 만큼 자원봉사자가 많이 필요하다. 만약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할 장소를 찾고 있다면 해밀도서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처럼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점자책은 한 부를 제작하는데 약 2달 정도 걸린다. 보통 소설책 한 권을 점자책으로 만들면 약 4권의 분량으로 늘어나서 제작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보관도 어렵다. 따라서 요즘은 녹음도서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녹음도서도 제작하는데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관심이 있다면 해밀도서관을 찾아 자신의 목소리를 기부해보면 시각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점자책의 부재
안내문, 메뉴판, 버스 노선도, 지하철 노선도 등 정보를 전달하는 것들 중 글로 쓰이지 않은 것들이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점자로 쓰인 것은 찾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화장실 위치나 승강기 버튼의 숫자 정도가 점자로도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해밀도서관에서는 원미경찰서가 의뢰한 고지서나 안내문이나 모범음식점의 메뉴판을 점자로 인쇄하는 일도 한다. 필자는 학교 안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읽어야하는 고지서나 안내문도 시각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려면 오롯이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음은 류시화 시인의 <나무의 시>의 일부분을 필자가 다시 써본 것이다.
지금까지의 반성
지금까지 학내의 시각장애인은 가톨릭대학교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성심의 독자가 되지 못했다. 예산 부족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성심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
항상 약자와 연대하고자하는 성심 교지는 정작 시각장애인은 읽을 수 없는 글을 써왔다. 그것은 진정한 연대가 아니었다. 이번 호를 계기로 성심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교지를 계속 출간 할 예정이다. 이번 73호의 점자책과 큰 글씨 책은 각 5부씩 인쇄하여 가장 접근성이 좋은 국제관 1층과 니콜스 4층에 각각 2권씩 비치하고 한 권은 보관할 예정이다. 점자로 인쇄된 교지는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가톨릭대 내에서 침해당하는 시각장애인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며, 시각 장애인에게는 앞으로 성심교지가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약속의 증표가 될 것이다.
평등과 배려를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아픈 사람에게 짐을 똑같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은 배려이고,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평등이다. 비시각장애인 학생들이 교지를 읽던 읽지 않던 그들을 위한 교지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도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