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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못한 '당연한 권리' 청각장애학생 수업권73호/당연하지 못한 ‘당연한 권리’ 청각장애학생 수업권 2018. 11. 28. 16:00
권대옥 수습위원 ok4u1445@naver.com
청각장애학생과 속기도우미에게 ‘시끄러워요!’
흔한 수업시간, 나란히 앉아있는 두 학생이 있다. 교수님은 열띤 강의를 진행한다. 왼쪽에 앉은 학생은 노트북으로 교수님의 말씀을 다 받아 적는다. 농담에서부터 영어로 된 전문용어까지 타이핑한다.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교수님의 말씀은 확대된 글 화면에 큰 폰트로 ‘박제’된다. 나란히 앉은 다른 학생은 ‘눈’이 쉬질 않는다. 교수님을 응시했다가 강단 앞 칠판과 스크린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교수님이 말씀을 시작하면 옆 학생의 노트북을 보며 필기를 한다. 타이핑하는 학생은 청각장애 속기도우미 학생(이하 속기도우미)이다. 노트북과 교수님을 번갈아 보며 공부하는 학생은 청각장애학생이다. 쉬는 시간, 이들에게 다른 학생이 찾아온다. 노기 띤 얼굴로 쏘아붙인다. “타자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매 학기마다 대나무숲과 에브리타임에 비슷한 글이 올라온다. 청각장애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속기도우미 제도에 일부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키보드 타이핑 소리로 비장애인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댓글로 성토가 이어졌다. “매 학기 속기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내 권리 챙기겠다고 남의 권리 침해하지 말아라.”, “장애학생이라고 배려 받으면 감사해하라.”
익명에 숨은 온라인에서만 불만이 그치지 않는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속기도우미에게 찾아와 소음에 화를 내는 학생들이 빈번하다. 청각장애학생들은 <성심>과의 인터뷰에서 특수교육과 전공수업을 제외한 많은 수업에서 눈치는 물론 항의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속기도우미 제도를 설명하며 양해를 구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청각장애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속기도우미 제도는 청각장애학생들의 수업권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다. 속기도우미의 도움 없이는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법적으로도 [교육기본법]에 의거 동등한 교육을 받을 학습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장애인을 돕기 위한 학습도우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고 불리한 대우를 조장하는 것은 위법하다.
<성심>은 이번 기사에서 본교에 재학 중인 청각장애학생들과 속기도우미 및 뇌병변장애학생을 만나 ‘속기도우미 타자소리 논란’에 대한 생각과 함께 학교와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한 번이라도 저희의 입장이 되어 보셨나요?” - 청각장애학생 인터뷰
<성심> :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속기도우미 제도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시나요?
<청각장애학생 A씨(이하 A씨)> : 전문속기사나 수화통역사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학생들로 구성된 속기도우미 제도는 저희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이것마저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저희의 수업권을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각장애학생 B씨(이하 B씨)> : 속기도우미 제도는 수업권과 직결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속기도우미 없이는 저희에게 학업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무합니다.
<성심> : 속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거나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씨, B씨> : 네, 수업에 방해된다는 항의를 종종 듣습니다. 듣고 상황을 이해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눈치주기는 여전합니다.
<B씨> : 가끔 청각장애학생을 학습을 위한 속기 내용을 비장애인 학생에게도 공유해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도 들어요. 때로는 속기도우미에게 수업내용을 녹음한 후, 집에 가서 타자를 치라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장애학생은 수업을 들어서는 안 되는 존재고, 공부는 집에서만 하라는 이야기인가요?
<성심> : 학기마다 반복되는 속기 소리가 불편하다는 여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A씨> :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불편함을 내비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애학생에 대한 인식이 충분한 특수교육과 전공 수업에서는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교양, 중핵, 교직 수업에서 불만을 종종 듣는데요, 이로부터 대다수의 학생들이 장애인 수업권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미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B씨> : 대다수의 재학생들이 속기도우미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홍보 부족이죠. 가톨릭대에는 특수교육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권 교육이 사실상 전무합니다. 부족한 인식에서 거친 여론이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익명성에 숨은 저희를 향한 비난들을 보고서는 직접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습니다.
<성심> :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학생 수업권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학교 측의 제도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A씨, B씨> : 모든 학생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인간학이나 영성과목에 ‘장애이해교육’ 챕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교양과목을 개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심> 영어 기초필수교양 수업(구 GEO, 현 Global Communication)에 고충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A씨> :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에게는 한국어도 외국어입니다. 청각장애학생들에게까지 듣기, 말하기 수업 위주인 GEO수업을 강제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함께 수강한 속기도우미도 외국인 교수님의 말씀을 영어를 옮기는 것은 물론 번역까지 해야 하니 참 힘들었습니다. 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해 듣기, 말하기가 아닌 다른 방식의 영어 기초필수교양 과목이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B씨> : 제 분반의 경우, 외국인 교수님들이 배려를 해 주셔서 필담을 통해 진행하거나, 발표의 경우 스크립트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럼에도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GEO 수업을 듣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성심> :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A씨> : 학교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소수자가 다수에 맞추어야 한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교는 아직 장애학생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나 비장애인 학생들의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사실 ‘속기도우미 타자소음 논란’은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될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B씨> : 비장애인 위주로 ‘당연하게’ 돌아가는 사회에 장애인들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고충이 많습니다. 이번 논란도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장애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장애인들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면 신체가 불편해질 것입니다. 지금 당장 빠른 인식개선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청각장애학생 인터뷰에 동행한 속기도우미 C씨 역시 속기 타자소리에 대한 비장애인 학생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청각장애학생의 수업권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실 배려라는 단어에도 상하관계가 내재되어 있어 적절하지 못하죠. 저희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은 물론 사투리나 영어로 된 전문용어까지 듣자마자 옮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누락은 물론 오타가 생기면 청각장애학생에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속기도우미들이 속기가 느려지지 않기 위해 키스킨을 착용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강 르포 - 청각장애학생과 동행하다
필자는 아직 청각장애학생과 같은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청각장애학생이 수업을 듣는 데 있어 어떠한 불편함이 있고, 이를 위한 속기도우미의 역할이 학습권 보장에 있어서 얼마나 결정적인지 파악하고자 직접 청각장애 학생이 듣는 수업을 청강했다.
청강한 첫 번째 수업은 A학생이 듣는 소형 교직 강의였다. 때마침 해당 수업에 시범적으로 인공지능 속기가 도입되었다. 교수님의 말씀을 자동으로 노트북 화면에 옮겨주는 기능이었다. 이 기능이 상용화된다면 청각장애학생은 속기도우미 없이도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기대는 출석을 부를 때부터 사라졌다. ‘출석’을 ‘추석’으로 잘못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오류가 빈번했다. 소리가 인식되어 옮겨지는 텀이 느렸으며, 교수님이 빨리 이야기하면 서술어를 놓쳤다. A학생 역시 수업이 지날수록 인공지능 속기 대신 속기도우미의 속기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 A학생은 필자에게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아직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비장애인 학생들의 속기에 대한 공감 및 장애인 학습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술의 발달로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마음이 결코 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청강한 두 번째 수업은 B학생이 듣는 대형 전공기초 강의였다. B학생의 속기도우미는 빠른 타자를 위해 키스킨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이야기했다. 속기도우미 바로 옆자리에 자리했는데, 일정 소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속기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는 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개론과목 특성상 교수님의 어려운 외국어 용어 사용이 종종 있을 때마다 속기도우미의 오타가 자주 발행했다. 당황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또한 영상매체 시청 및 PPT 수업자료가 있었는데 청각장애 학생이 모니터스크린과 교수, 속기도우미를 끊임없이 번갈아 보면서 필기까지 하는 모습에 청각장애 학생 수업권이 지금 상황으로도 열악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을 도입하라
대다수 비장애인 학생들은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장애학생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교육 환경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교류와 낮은 인식은 장애학생 수업권에 대한 무지가 되었다.
<성심>과의 인터뷰에 응한 장애학생들은 가톨릭대가 장애인식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학생이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인간학이나 영성에 장애이해교육 챕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장애학생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같이 공부하는 곳이고, 이를 위해 비장애인 학생이 장애학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는 모든 학내 구성원들이 알아야 할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서부터 장애학생 수업권 보장의 중요성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장애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뇌병변 학우가 비장애인 학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대에 재학중인 이정호입니다. 핵황달로 인한 패혈증으로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청각장애 학생 속기 문제를 듣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평소 필기할 때 도우미 학생의 도움을 받습니다. 장애학생의 수업권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특수교육법에 위반됩니다. 굳이 법령을 찾지 않아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애초에 나와서는 안 될 논쟁이 나온 것에 화가 났습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장애인과 교감, 소통을 해본 적 있는가 말입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집니다. 역시사지를 넘은 이해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비장애인 학생들과 장애인 학생들의 접점이 늘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톨릭대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