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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제발 저희랑 대화좀...73호/총장님 제발 저희랑 대화 좀... 2018. 11. 28. 08:51
8월 1일과 9월 4일,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민주적 총장 선출’과 ‘학생 참여 확대’를 내걸고 노숙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것이다. 이 말은 즉, 현재 총장 선출방식은 비민주적이라는 의미이다. 홍익대와 고려대는 각각 어떤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대학교 소속 정관을 살펴보자.
이 법인이 설치 경영하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용한다.
- 홍익대학교, 학교법인 홍익학원 정관 제 34조 제 1항
이 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고등학교기관의 경우 총장, 중등교육기관의 경우 교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면한다.
- 고려대학교,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정관 제 39조 제 1항
정관에 따르면 두 대학교 모두 법인 이사회가 의논하여 총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학내 구성원인 교수나 학생, 직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총장은 학교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휘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대학교를 대표한다. 다소 과한 표현으로, 총장은 학교에 실질적 지배자인 셈이다. 이러한 총장을 선출하는 데에 학내 구성원의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인가?
변명할 거리가 하나 있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다. 두 학교 모두 이 위원회를 갖고 있다. 홍익대는 학교 규정집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임의기구이며, 고려대 또한, 학교 정관과 규정집 목차 중 위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위원회가 총장 선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대학교 방식을 통해 알아보자. 먼저 고려대학교 총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은 법인 4명, 교수진 15명, 교우회 5명, 직원 3명, 학생대표 3명이다. 구성원은 각각 3표씩 행사하여 최종 총장 후보 1~3순위를 결정한다. 그러면 이사회는 그 후보 중 자신들이 원하는 총장을 선출한다. 최종 결정 권한은 이사회가 가지고 있기에,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결정된 최다 득표자와 관계없이 이사회는 총장 후보자 중 한 명을 임명한다. 즉, 정리하자면 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총장 선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한다.
학교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총장을 선출하는 데에 학내 구성원이면서
대학의 3주체인 학생, 교수, 교직원을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에 분노한 학생회가 나서서 단식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잠시 초등학교를 떠올려보자. 초등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반장 선거를 한다. 반장 후보가 나와 “내가 반장이 된다면”이라는 말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1인 1투표를 통해 반장을 뽑는다. 왜 이런 방식으로 반장을 뽑는 것일까? 학교 최고 권력자인 교장이 반장을 지명해도 괜찮지 않을까? 교장이면, 어느 정도 경력이 있기에 어떤 아이가 똘똘하고 리더십이 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아이를 반장으로 지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번거롭게 손을 들어 “제가 반장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후보자 등록, “제가 반장이 된다면 청소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선거 공약, 일주일 동안의 선거 유세 기간, 투표하는 시간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혹은 그 둘의 상관관계를 의심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먼저 민주주의 사전적 의미와 헌법 제 1조를 살펴보자.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랑.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칙,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민주주의 정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와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한다’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국민은 국가로서 있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에 국민이 권력을 가진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다음 부분이 조금 어렵다. ‘내가 권력을 행사했던 적이 있었나?’, ‘어떤 안건에 대한 대통령의 결정이나 국회에서 입법되는 정책에 내 목소리가 영향력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제19대 대통령선거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다. 어떤 후보자가 우리나라 또는 우리 지역을 운영하고 대표했으면 좋겠는지에 한 표를 행사한다. 그리고 이 의견들을 수렴하여 최다 득표자가 선출되는 과정을 통해 국민이 지닌 권력을 재확인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모든 사회와 집단에서 민주주의가 실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적인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하여 운영한다. 국가는 이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방법일지라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회장 또는 반장 선거를 매년 진행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를 포함한 사립대학교 대부분이 ’교장이 알아서 지명하는‘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고 있다.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은 이것뿐일까?
대학 총장 선출방식은 크게 직선제와 간선제, 완전임명제로 나눌 수 있다. 총장 직선제는 학교 구성원이 직접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때, 구성원은 교수만, 혹은 교수와 직원으로만 이루어질 수도 있다. 구성원이 1명 또는 2명을 선출하면 이사회에서 그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교수와 직원, 학생이 모두 직접선거하는 대학은 이화여대와 성신여대이다. 작년과 올해 각각 다른 맥락에서 최초로 대학 구성원 전부 직접투표 방식을 이뤄내 대학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하였다. 두 대학은 교수, 직원, 학생, 동문 모든 구성원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점이 같으나 주체별 투표 반영 비율이 다소 다르다. 이화여대는 교수 77.5%, 직원 12.2%, 학생 8.5%, 동창 2%이고 성신여대는 교수 76%, 직원 10%, 학생 9%, 동문 5%이다. 특히 이화여대는 반영 비율 결정 과정에서 (교수)1:(직원)1:(학생)1로 하자는 주장이 학생 측에서 나왔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렇게 1, 2위를 선출하면 이사회는 보통 최다 득표자를 총장으로 최종 임명한다.
간선제는 학교 구성원 대표와 외부위원으로 이루어진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위원회 구성원은 보통 교수, 학생, 교직원이 있으나 대학마다 위원회의 구성원과 구성 비율이 다르다. 대학마다 다른 방식으로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투표를 거쳐 총장 후보자 복수를 선출한다. 여기서 추천된 복수의 후보자 중 한 명을 총장으로 임명한다. 위에서 말한 고려대학교가 총장 간선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직선제와 간선제의 차이점은 모든 구성원 의견을 직접 반영하느냐, 아니면 위원회를 통해 간접 반영하느냐로 이해할 수 있다.
직선제도 간선제도 아닌 완전임명제가 있다.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대학 구성원의 참여 없이 이사회에서 직접 총장을 임명하여 완전임명제라고도 한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학교 제99교인 72%가 완전임명제로 총장을 선출하고 있다. 완전임명제는 직선·간선제와 완전히 다르다. 직선·간선제는 ‘학교를 총괄하고 대표하는 총장은 학교 구성원이 뽑는다’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 차이에 있을 뿐이다. 완전임명제는 ‘학교를 법적으로 소유하는 법인 이사회가 총장을 뽑는다’라는 전제를 갖는다. 완전임명제는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학교 구성원의 의견 수렴은 선택사항에 불과하다.
민주공화국에서 완전임명제는 허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존재하는 간선제와 직선제도 피해갈 수 없다. 간선제는 고려대와 같이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허울 좋은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직선제는 ‘교수’ 혹은 ‘교수와 직원’과 같이 구성원 일부를 배제하는 경우도 그 방식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경우도 있다. 앞서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수와 학생, 직원 투표 반영 비율을 1:1:1로 하자는 주장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2016년 ‘정유라 특례 입학’ 사건으로 점거 농성 시기 교수에게서 들은 ‘학생이 주인이라고? 4년 있다가 졸업하는데?’라는 말도 한몫을 할 것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선거권자 1명의 표 가치는 교수 1표, 직원 0.567표, 학생 0.025표로 환산된다. 이는 교수 목소리와 학생 목소리의 크기와 힘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총장 선출 시 모든 구성원의 참여에서는 민주적이지만, 참여 비율은 여전히 비민주적이다. 그래도 우선은 참여 구성에 있어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시 홍익대와 고려대 총학생회장의 단식 투쟁으로 돌아가자. 학교를 운영하고 대표하는 총장 선출에 있어서 학생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대학. 그렇게 선출된 총장은 학생과 교수, 직원이 아닌 자기를 임명한 이사회에 귀를 기울인다. 학교를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법인 혹은 이사회이지만, 학교를 점유하는 사람은 학생과 직원, 교수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학교법인 혹은 이사회가 지봉로43에 위치한 건물들을 학교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 공간이 학교가 되지 않는다. 교수가 연구하고 학생이 배우며 직원이 행정 업무를 진행할 때 그 공간이 학교가 된다. 그렇기에 학교를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점유하고 있는 학생과 교수, 직원이 대학 사회 구성원이며 이들의 의견을 반영한 학교 운영이야말로 민주적 운영이다. 홍익대와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이러한 학교 민주적 운영을 위해 단식 투쟁에 나선 것이다. 우리 가톨릭대학교는 어떨까? 먼저 학교법인 정관을 살펴보자.
이 법인이 설치, 경영하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용하며 그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중임을 할 수 있다. 다만, 초·중등학교의 장은 1회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 가톨릭대학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정관 제 37조 제 1항
정관 외에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있는지 규정정보 시스템을 살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가톨릭대는 완전임명제로 총장을 선출한다. 학교 구성원에게 총장 후보자 정보나 이사회 결정 과정은 은폐된다. 이사회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총장 임명 관련 게시글에서도 알 수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가장 최근인 원종철 총장의 임명에 관한 게시글을 찾아보면 공지사항과 보도자료에 게시되어 있다. 그 일자를 보면 공지사항은 2017년 1월 2일, 보도자료는 2016년 12월 13일이다. 공지사항은 주로 학생들이 보는 공간이며, 보도자료는 ‘언론에 제공되는 가톨릭대 관련 보도자료를 보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라는 설명이 있는 공간이다. 학교 구성원보다 먼저 언론에 총장 취임을 알리는 학교, 지금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는 계속 불통학교를 경험하고 있다. 국제 앞 나무 심기, 도서관 주말 운영시간 변경, 제2국제관 공사, 홍보물 규정, 융복합 전공 교수 해고, 사회학과 교수 미충원, 종교학과 폐지 등. 각각의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은 나중이다. 우리는 우리와 관련 있는 일임에도 우리와 사전에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학교 방식에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가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고, 그 이유를 묻기 전에 학교는 설명하지 않는다. 학교는 일단 일을 진행시킨 다음에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이렇게 변경되었으니 따르라’고 말한다.
불통의 원인은 학생 기구 부재에도 있지만, 총장 완전임명제도 한몫을 한다. 학교법인 이사회가 임명한 총장이 학생 의견을 수렴할 이유는 없다. 자기를 임명한 이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총장에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학교를 학교법인, 이사회, 총장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