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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시 만나, 커피동물원72.5호/꼭 다시 만나, 커피동물원 2018. 8. 28. 16:01
꼭 다시 만나, 커피동물원
권대옥 수습위원 ok4u1445@naver.com
1. 작별인사
기슨관에 자리한 커피동물원이 지난 6월 22일을 끝으로 휴업에 들어갔다. 커피동물원도 제2국제관 공사를 피할 수 없었다. 2009년 개점 이후 9년 만의 첫 장기 휴업이다. 학교 측과 성심수도회(커피동물원 총괄운영)는 공사 기간 중 임시 영업을 위한 대체 부지 마련에 노력했으나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 결국 커피동물원은 입구에 휴업 공지문을 붙였다. 학생들은 그제야 당황스러운 이별을 실감했다. <성심>은 8월 1일, 커피동물원 2호점 ‘로스트앤파운드’에서 성심수도회 김정미 수녀님과 오랜 기간 커피동물원에서 일했던 직원 분을 만나 커피동물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2. 커동 이야기
(1) 수녀님과 거리의 아이들
김정미 수녀님은 본교 교직원이었다. 본교 통합 이전 성심여대의 재무과장을 역임했다. 힘들었던 IMF 극복 이후, 수녀님은 학교 재정 대신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싶어졌다. ‘마음으로 만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재무과 업무를 그만뒀다. 그때부터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리를 떠도는 많은 청소년들은 성공보다 실패에, 칭찬보다 상처에 익숙하다. 사회적응을 어려워하며 경제적으로 취약하다. 가정환경마저 불안정하다. 하루하루 버거운 삶에 미래를 설계할 틈도 없다. 이러한 청소년들을 위해 김 수녀님을 비롯한 성심수도회는 쉼터를 만들었다. 1999년에 단기 쉼터가, 2005년에 중장기 쉼터가 문을 열었다. 쉼터 청소년에게 진정 요구되는 것은 ‘자립’이었다. 쉼터와 수도회는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2) 커동맘과 동물 친구들
2007년 어느 날, 김정미 수녀님은 임병헌 전 총장 신부님을 찾았다.
“청소년 쉼터 아이들의 직업훈련을 위한 커피숍을 열려고 합니다. 교내의 작은 공간을 빌릴 수 있을까요?” 수녀님의 질문에 총장 신부님은 답했다.
“가장 좋은 자리를 가져가세요. 새로지은 국제관의 30평 정도가 어떠신지요.”
수녀님은 총장님의 흔쾌한 대답에 당황했다. 솔직히 넓은 공간에서 커피숍을 시작할 자금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아담한’ 부지는 현 기슨관 커피동물원 자리였다. 학교는 무상으로 이 터를 빌려줬다. 그때부터 오픈까지 2년간, 수녀님과 쉼터 청소년들의 ‘무한도전’이 시작되었다. 부족한 자금은 지역사회 모금과 각종 프로젝트 선정으로 충당했다.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했고 타 대학 입점 커피숍을 벤치마킹하며 오픈 준비를 마쳤다. 회의 끝 결정된 커피숍의 이름은 ‘커피 동물원’이었다. 청소년들은 각자 좋아하는 동물 별명을 달고 일을 시작했다. 수녀님은 커피동물원의 어머니, ‘커동맘’이 되었다.
(3) 가대인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다
2009년, 2년간의 준비 끝에 커피동물원은 문을 열었다. 커피동물원의 목표는 명확했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 학교의 배려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그래서 3원칙(1.커피동물원은 10대 청소년 직업훈련공간이다, 2.환경보호에 앞장선다, 3.공정무역 재료를 사용한다)을 정립했다.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원칙들이다. 커피동물원만의 원칙에서 ‘우러나온’ 커피 맛과 사회적 취지에 공감한 많은 학내 구성원들은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 사이 많은 청소년들이 커피동물원을 거쳤다. 낯선 근로계약서를 써 보고, 불규칙한 생활을 고쳤다. 또래들과 회의하고 성장하며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커 나갔다. 수녀님은 “아이들이 자기 월급에서 세금이 나가는 걸 보고 행복해하더군요.”라고 말씀하셨다.
3. 미니인터뷰
(1) 김정미 수녀님
<성심> : 커피동물원에서 일하는 직원 분들이 어떤 청소년들인지 궁금합니다.
김 수녀님 : 커피동물원은 청소년 직업훈련의 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일찍 학교를 떠나거나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 청소년 하나하나 다 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한 의지와 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심> : 청소년들의 성장을 바라보면 느낀 소감은 무엇인지요?
김 수녀님 : 어려움을 겪다가도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모습에 ‘생동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희망적인 힘입니다. 두 걸음 앞으로 나간 뒤 한 걸음 뒤로 갑니다. 그래도 다시 두 걸음 나아갑니다. 예기치 못한 청소년들의 힘에 저도 힘을 받습니다.
<성심> : 청소년 자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 수녀님 :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자립이 아닙니다. 여행을 갔다 와도, 병원 치료를 받더라도 다시 안정적으로 일상에 돌아올 정도가 되어야 자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저축도 해야 하고요. 커피동물원 바리스타만으로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성심> : 지금까지 커피동물원을 애용한 가대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수녀님 : 지면을 통해 가대인들에게 제대로 인사드릴 수 있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약 2년 뒤, 학교 측과 새로운 장소를 협의하여 다시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바리스타 ‘참새’ 씨
<성심> : 커피동물원에서 일하면서 어떤 점을 배웠나요?
참새 : 예전에는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커동에서 일을 하면서 성격이 밝아졌습니다. 다른 알바를 하면서도 커피동물원에서 배운 인간관계, 사회성, 사람을 대하는 법이 큰 도움이 되었네요.
<성심> : 커피동물원 근무가 자립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참새 : 청소년들은 일반적인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많이 겪어요. 최저시급이나 주휴수당을 안 챙겨주는 곳이 많거든요. 커피동물원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법부터 시작합니다. 경제적 자립은 물론이고 향후 사회에 나가서도 배워야 할 권리와 책임감을 배울 수 있죠. 이런 곳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성심> :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참새 : 커피동물원의 취지를 정확하게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번은 국제관 엘리베이터에서 학생분들이 ‘커동 직원들은 미혼모나 소년원 시설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어 놀란 적이 있었어요. 잘못된 오해와 편견입니다.
<성심> : 시설이나 기관에서 온 청소년들이 바리스타 일에 잘 적응했나요?
참새 :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힘들고, 레시피를 외우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하지만 못하는 것을 아는 만큼 더 붙들어 매고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렇게 실수를 이겨내고 노력하며 성장하는 모습들이 엄청 대견했어요.
<성심> : 기슨관 공사로 커피동물원이 문을 닫았는데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참새 : 오랫동안 일 한 만큼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함께 추억을 남기며 일했던 공간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사실에 속상했어요.
4. 특별했던
커피동물원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었다. 가장 ‘가톨릭대’다운 공간이었다. 커피동물원이 걸어온 길은 본교의 건학이념인 ‘인간존중’에 부합했다. 그리고 교육정신인 ‘진리, 사랑, 봉사’ 실현에 앞장섰다. 대학과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상생한 배움터였다. 대학은 지역사회 청소년 자립이라는 좋은 취지에 기꺼이 부지를 제공했다. 청소년들은 직업훈련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자립에 도전했다. 향후 다른 일터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기초적 노동 권리를 학습했다. 학내 구성원들의 지지는 든든한 후원, 그 이상이었다.
가톨릭대의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커피동물원. 최소 2년, 아니면 기약할 수 없는 휴식에 들어간 커피동물원과 가톨릭대의 동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길 소망한다. 카페라떼와 호두스콘, 에그 샌드위치가 벌써부터 그리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