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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언제까지 아파야 하는가.54호/뫼비우스의 띠 2010. 11. 11. 02:33
수습위원 정민
지난 3월 31일. 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없는 날씨가 계속 될 무렵이었다. 한 20대가 세상을 떠났다. 산재신청과 직업병 진실 규명을 위해 삼성전자에 저항하던 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고(故)박지연씨까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으로 숨진 사람은 알려진 것만 해도 9명이다. 또한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투병중이다. 1
초고속 성장 뒤편의 가난과 죽음, 그리고 반올림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실적에서 각종 언론들의 예찬을 받으며 분기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2분기 실적도 1분기의 성적을 갈아치웠다.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산업의 뒷면에 화학 약품 냄새를 맡으며 희생되어간 노동자들이 있다. 박지연씨 같은 경우 고3때 부터 하루에 12시간씩 노동을 하며 방사선과 유해물질에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한 지 2년 7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억대의 병원비를 치르다가 남은 것은 가난과 죽음이었다. 박지연씨는 자신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다른 피해자와 산재소송을 걸었으나 근로복지공단과 삼성반도체는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했다. 박지연씨의 유가족이 삼성의 위로금을 받는 조건으로 산재신청을 취하한 지금도 근로복지공단은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산재인정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피해노동자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직업병 규명을 위한 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산재 의혹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단체가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산재의혹은 2007년 6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유족들이 산재신청을 내면서부터이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 지금의 반올림이라 할 수 있는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운동대책위원회>가 세워졌다. 반올림은 20개정도의 단위가 모여진 하나의 네트워크이다. 반올림에는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 인권단체, 노동조합, 정당 그리고 예전부터 삼성과 싸움을 해왔던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2
박지연씨 사망 이후와 피해자 제보
반올림 소속 단체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유정옥씨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올림은 박지연씨의 사망 직후인 4월 2일 삼성본관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피켓행진을 진행했으나 돌아온 것은 연행과 벌금이었다고 한다.
박지연씨의 사망 이후에, 반올림에서는 한 달 사이에 피해자 제보가 20명이 더 늘어났다. 이는 반올림이 2007년에 발족을 하고나서 박지연씨의 사망 전, 약 3년간 22명의 제보가 들어왔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굉장히 빠른 증가이다. 제보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반올림이 있는 줄 몰랐다가 박지연씨 죽음을 통해 언론으로 반올림을 알게 되어 제보한 경우가 그 중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박지연씨 죽음을 접하고 자신의 피해를 침묵하기가 양심에 찔리고 화가 나서 제보한 경우이다. 그러나 공유정옥씨는 피해자 제보율이 매우 낮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올림이 워낙 삼성 반도체, 백혈병 이렇게만 국한되어 알려져서 그 외의 제보가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 반도체가 아닌 다른 반도체회사 또는 다른 전자 회사에서의 제보, 그리고 무월경, 피부질환,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전자산업에서 흔한 질병들의 제보가 들어오지 않는 것도 제보율이 낮다고 예측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중요한 이유들이 많았다. 3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으니까….또 퇴직한 분들 중에서도 이 분들이 사내결혼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삼성이라는 회사가 워낙 커서 한 다리 건너면 있는거죠. 아는 사람이 뭐 오빠가, 삼촌이 아니면 시동생이 그런 식으로 이렇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그래서 저희 피해자들 중에 남편이 삼성 직원은 아닌데 반도체공장 협력업체 노동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퇴사했고 몸도 너무 아프고 제보를 하긴 했는데 남편이 이제 협력업체에서 압박을 받으니까 ‘산재를 포기하자’ 이런 이유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분들도 계세요. 아예 제보를 못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세 번째 이유는요. 모든 피해자는 아니고 특히 여성피해자들 경우에 제보를 어려워하세요. 나중에 듣고 보면 어려운 이유가 미혼여성이면 부모들이 있고요. 기혼여성은 부모에다가 남편에다가 시부모가 있어요. 그래서 황유미씨나 박지연씨처럼 미혼 여성이고 백혈병에 걸려서 죽으면 부모가 ‘내 딸의 죽음이 억울하다’ 이래서 제보를 하세요. 근데 기혼여성이 죽잖아요. 그러면 이 여성에 대해서 산재를 신청할 권한이 남편에게 있어요. 그래서 이혼을 하지 않는 한, 친정부모가 원해도 남편이 원하지 않으면 혹은 남편이 원해도 예컨대 시부모가 며느리 문제로 아들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을 곤란해 하시기도 하고 실제로 그래서 남편이 제보를 하셨다가 연락이 끊긴 분들도 몇 분 계세요.”
상식을 벗어난 방해
삼성은 이렇게 어렵게 제보한 소수의 유족들과 피해자들을 ‘위로금’이라는 명목으로 유혹하려고 했다. 직업병을 치료하느라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이들에게 이 유혹을 물리치기란 쉽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위로금을 준다는 사실이 아니다. 돈이 많은 기업이 자신의 기업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진 노동자를 위해서 돈을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권장할만한 일이겠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주는데 조건을 건다. 산재를 포기하고 언론과 시민단체에 접촉하지 말란다.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다. 4
“박지연씨 같은 경우도 집이 가난했어요. 그래서 지연씨가 공장에 간 거고 투병생활을 2년 하면서 집이 뭐 망할 것도 없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초기에 산재신청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벌써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셨어요. 그나마 회사에서 와서 조금씩 돈을 모금해서 갖다 주고 이런 것까지도 저희를 만난 이후에 한번 끊겼어요. 그래서 어머님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모금도 하고 그랬는데 많이 못 걷지요. 노동자들 뭐 집회하는데 가서 다 해고자들, 비정규직들이니까. 뭐 백 만원 이백 만원 모이면 드리고 이랬는데요. 근데 막판에 지연씨가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니까 회사에서 그때서야 노골적으로 나온 거예요. ‘이제 지연이 곧 갈 것 같은데 돈 드릴 테니까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되지 않겠냐. 산재만 포기하면 돈을 드리겠다’ 그래서 지연씨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합의서를 쓰고 돈을 받기로 하신 거죠. 그런 분들이 있고, 한혜경씨 라고 뇌종양 피해자 같은 경우는 이분은 엄마와 딸이랑 둘이 살고, 엄마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딸이 장애 1급이기 때문에 24시간 옆에서 같이 돌봐야하는 상태고, 집에 수입은 전혀 없고, 정부생계보조금을 받아서 생활을 하셨는데 수급권이 박탈되었어요. 보험금을 한 삼십만 원짜리 타서 엄마가 치료를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그래서 이 분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죠. 이런 분들을 위해서 모금을 하고 있어요. 회사가 그래서 돈을 계속 제안을 하고 있지만, 어머님은 ‘주면 받겠다. 대신 기자들 오라고 할 테니까 기자들 앞에서 줘라. 조건 없이 줄 것이면 그냥 정말 위로의 마음으로 줄 거면 차라리 그렇게 해서 이걸 해명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대요.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렵게 용기를 내서 제보하고 위로금의 유혹을 물리친 피해 노동자들도 있지만 산재인정의 길은 멀어 보인다. 삼성반도체 피해노동자들 중에서 아직까지 산재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없다. 산재신청을 한 14명의 피해노동자들 중 6명은 불승인을 받아 다시 신청을 한 상태이고, 8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삼성의 방해는 위로금만이 아니었다. 반올림은 지난 7월 19일 고(故) 연재욱씨의 기일을 맞아 ‘반달(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이라는 공동 행사를 준비했다. 집회신고까지 한 정당한 집회였지만 삼성은 전세버스를 동원하여 반달의 발대식도 방해했다. 7월 20일에는 삼성LCD공장에 산재 진실을 밝히라고 외치는 유족들의 절규 앞에 삼성은 확성기로 댄스곡을 크게 틀며 귀를 막았다. 이에 대한 대응을 묻자 공유정옥씨는 “굴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되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실제로 반올림은 삼성이 공장이나 삼성본관에 365일 허위집회신고를 해서 시민단체나 노동자들의 집회를 막아온 관행을 법원 판결을 통해 깨뜨리기도 했다. 5 6
재조사, 또 하나의 은폐수단인가
삼성은 이렇게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부인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대한 직업병 산재의혹이 점점 커지자, 삼성은 건강연구소를 출범시키고 작업환경을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삼성이 조사하겠다는 작업환경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과거의 작업환경이 아닌 새로 지어진 작업환경이다. 또한 시민단체의 참여 없이 ‘외부 우수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조사하겠다고 했다.
또한 지난 조사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 역학조사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했다. 황유미씨의 유가족들이 산재보험 유족보상을 청구해서다. 그러나 조사 시엔 근무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전체 반도체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를 하기로 했었다. 조사과정을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은 채 시행된 조사는 산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결과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역학조사에서는 기준치를 넘는 벤젠이 검출되었다. 삼성은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조사는 언급하지 않으며 공단의 조사만 언급했다. “산재여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단이 판단할 문제”란다. 이렇게 지난 조사와 삼성의 대응을 살펴보기만 하더라도 이번 조사가 정확하게 나올지는 미지수인 듯하다. 7
“반올림이 지금까지 제기해온 문제들에서 회사나 정부가 단 하나도 답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과거작업환경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있어요. 못줘요. 안주거나 못주거든요. 지금 피해자 분들은 예전에 일했던 분들이에요. 지금 건강연구소에서 1년 프로젝트로 20여명의 전문가들을 불러갖고 한다는데 옛날 장비들도 몇 개 갖다 놨다고 그러고. 절대로 예전에 작업환경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찾지도 않을 것이고 찾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이 사람들이 하는 연구는 불 보듯 뻔한 게 현재 작업 상황에서 발암물질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있더라도 잘 관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 그걸 이런 전문가들의 이름으로 보고서를 내주는 거. 근데 사실 이 코스가 지금까지 전자산업에서 뭐 IBM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밟아온 코스에요. 그러니까 피해자들이 공식적이고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사를 하자고 할 경우에 회사는 자체적으로 컨소시움을 만들어서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혹시 외곽에서 피해자들 편에서 어떤 연구자가 나와서 데이터를 우연히 입수해서 이런 문제들을 드러내는 연구를 하면 이걸 법적으로 묶어요. 영업비밀이라고. IBM에서 있었던 일이거든요. 딱 법으로 묶어서 ‘이것은 영업비밀이다’라고 하면서 못 내게 해요. 그럼 이게 법정싸움으로 2~3년 가죠. 그러면 자기네가 다른 연구자를 섭외해서 그 사람에게 연구비를 주고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회사 쪽에 유리하게 분석하는 연구결과를 막 내요…그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거를 찾아보고 ‘아 반도체는 암이랑 관계가 없구나. 지금까지 나온 논문들이 다 그러네’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8
공유정옥씨는 “삼성이 이번 재조사를 피해 노동자들의 행정소송에서 악용할까봐 우려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금 삼성은 행정소송의 피고 측 참고인으로 되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재조사 기간인 1년 동안 산재의혹에 대한 여론이 식은 틈을 타서 잘못된 증거를 만들어 소송에 악용할 수도 있다. 삼성의 재조사의 문제는 다른 데 있기도 하다. 논란의 핵심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삼성의 재조사 논리는 삼성 반도체 작업장이 현재 발암물질에 노출된 환경이면 피해 노동자의 직업병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겠다. 이는 현재 작업장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핵심을 놓치는 논리이다. 현재 산재 의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 반도체에 그토록 많은 피해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피해 노동자들이 만약 다른 곳에서 일했을 경우 그런 병에 걸렸겠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삼성은 재조사의 결과와 상관없이 피해 노동자들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지난날의 작업환경에 대하여 사죄해야 할 것이다.
“산재나 직업병은 무과실 책임주의라고 해요. 사업주가 과실이 없어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거예요. 고의성에 전혀 상관없이 잘 하려고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프거나 다치면 산재보험료를 내는 걸로 책임을 지거든요. 일류기업답게 상식에 맞추어서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 그 이유
지금까지 박지연씨가 숨을 거둔 이후에 반도체 피해노동자들과 반올림 그리고 삼성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굵직하게나마 다루어 보았다. 그래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는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런 피해를 입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심을 하기엔 조금 일러 보인다. 삼성반도체의 산재와 그 의혹을 은폐하고 무시하려는 그들의 행동은, 현재 많은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 삼성이 20대에게 저지르는 횡포이다. 삼성이, 아니 삼성이 아닌 또 다른 기업이라도 그들에게 했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의 폭력을 우리에게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우리는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과 삼성의 폭력을 기억하고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삼성 백혈병' 사망자 한 명 더 있었다…최소 9명」2010-04-01 [본문으로]
- 반올림(SHARPs)은 Supporters, Health, And Right of People in semiconductor industry 를 뜻한다. 활동영역에는 Solidarity, Help, Action, Research, Publicity가 있다. [본문으로]
- 여성의 월경주기의 3배 이상의 기간동안의 월경이 없거나, 6개월 이상 월경이 없는 경우로 정의한다.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도 이 병의 한 원인이다. [본문으로]
- 『한겨레 21』 819호 「돈으로 죽음을 덮으려는 삼성」 참조 [본문으로]
-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물일곱에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본문으로]
- 『프레시안』 「법원, 삼성 반도체 공장 앞 집회 '허용'」 [본문으로]
- 『한겨레21』 795호 「삼성이 가린 백혈병 진실, 법정에서 가린다」 [본문으로]
- 특정사업수행 목적의 국제협력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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