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레던 초행길, 그 추억 한 아름54호/달콤, 살벌 2010. 11. 9. 17:20
편집위원 소영
…
조금 요란스런 우리 아침
정말 손꼽아 기다렸어
텐트에 지도에 나침반에
잊혀진 오래된 옷과 함께
잔뜩 어깨에 짊어지고서
찌든 도시는 잊어버리자
청춘이 아깝다 아깝다 하며
드디어 떠난 이 길 우리 둘 두 다리로 걸어보자한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길은 어딜까
잔뜩 짊어진 배낭은 왜 또 이렇게 무거워
자꾸 배는 고프고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지만
그래도 즐겁다 우리는…
「노리플라이, 낡은 가방을 메고」中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종종 여행에 관한 에세이들의 첫 페이지쯤에서 발견하곤 했다. 그리고 진부하게도 이렇게 또다시 내 글의 첫머리에 저 문장을 달아놓고 말았다. 실제로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얻어왔고, 각국의 여행자들이 밀집한 여행자의 거리에서 문화적 충격도 심심치 않게 받았었다. 세계는 정말 하나의 두꺼운 책이었고, 나는 여전히 책의 첫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더 많이 책 속의 세상을 경험할 시간이 남아있고, 그것은 내게 있어 축복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떠나볼까? 배낭여행, 그 결심까지
여행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여행을 꿈꾸고 또 떠난다. 나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배낭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내게 배낭여행은 동경이었고, 지친 일상에서 나를 버티게 해주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여행관련 서적들을 빌려 읽고, 블로그에서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배낭여행에 대한 나의 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사진 속의 풍경에 언젠가 내가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이제 나도 성인이니 돈만 있으면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홀로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조금씩 모아 마련한 돈은 약 200만 원 가량(실제로 항공권과 여행준비자금까지 포함해 이번 여행에서 쓴 돈은 약 150만 원이다). 사실 난 이 돈을 가지고 많은 갈등을 했었다. 이 돈을 등록금에 보태야 할지, 눈 딱 감고 나를 위해 이 돈을 쓸 것인지.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훌쩍 떠나버리고도 싶었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발목을 붙들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번만은 나를 위해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여행을 꿈꿨지만 정작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젊어서는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갔고, 나이 들어서는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가지 못했노라고. 나는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생의 방학은 길었고, 방학 때마다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들들 볶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행을 택했고, 나만을 위해 모든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떠나자! 배낭여행, 그 출발까지
떠나기 전,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니,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부모님은 반대의 깃발을 드셨다. 친구들도 내 여행계획을 들을 때면 놀라 반문하곤 했다.
“너 혼자서?”
“응, 그래. 나 혼자서.”
문제는 그거였다. 아직은 어린 21살의 여자애가 겁도 없이 배낭여행을 혼자서 가겠다니.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그것도 선진국 유럽이 아닌 개발도상국인 동남아로. 사람들에게는 나의 의지나 소망, 이번 여행의 의미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어린 여자애’, ‘홀로’ 라는 사실이었다. 정작 여행을 떠나는 당사자인 나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인 모양이었다. 친척과 지인들이 전화로 나의 무모한 여행계획에 대해 혀를 내둘렀고, 친구들은 내가 홀로 떠난다는 사실을 걱정했으며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심지어 부모님은 나에게 미쳤냐고 했다. 그리고 홀로 떠나는 여행의 위험성을 구구절절 읊기 시작하셨다(나의 부모님은 동남아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시각을 갖고 계셨다. 여행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느니, 불법 장기매매를 위해 여행자를 납치해서 장기를 모조리 빼버린다느니, 폭력을 당하고 가진 것을 모두 뺏긴다느니. 내가 한창 여행의사를 내비쳤을 때가 태국 반정부 시위 때문에 어수선할 때라 부모님의 걱정이 더욱 하늘을 치솟았었던 것 같다). 아무리 설득해도 부모님은 혼자는 절대 안 된다며 강경한 뜻을 내비치셨다. 그래도 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회유책으로 차라리 엄마의 지인과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같이 갔다 오는 것이 어떠냐, 아니면 돈을 더 모아서 유럽여행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부모님 몰래 여권을 만들고 여권이 발급되자마자 예약해두었던 항공권을 발권했다.
내 항공권 발권일은 5월 17일이었고, 내 여행의 출발일은 6월의 마지막 주였으며, 부모님께 나의 여행사실을 알린 건 기말고사가 끝난 즉시였으니 난 약 한달 간 여행에 대해서 부모님께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셈이었다(은근슬쩍 여행에 대한 언질을 하긴 했다). 근 한 달 동안 여행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부모님은 내가 여행을 포기한 줄 아셨고, 나의 급작스런 여행 사실은 부모님의 뒤통수를 친 격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미쳤냐며 고집 부릴 걸 부리라고 하셨고, 아빠는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했다. 순식간에 나는 남아서 걱정할 가족을 배려하지도 않는 이기적인 애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나의 여행을 인정해 주셨고 걱정하는 마음 한 가득으로 나의 여행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주셨다. 아, 물론 내게 한마디 하시면서 말이다.
“내비 둬. 여행이 다 고생길이지. 지가 고생하고 오겠다는데 실컷 하고 오라고 해.”
그렇게 노트북도, 핸드폰도 없이 6월 28일~7월 28일 한 달 동안 태국, 라오스, 대만으로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불안해. 온통 낯선 것들뿐이야
여행은 떠나온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 주고 낯설고 어색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준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맺고, 처음 보는 곳에 발을 들여 그 곳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설렘은 매우 유혹적인 것이다. 그래서 훌쩍 떠나온 것이고 불안이나 걱정보다는 낯섦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 컸다. 하지만 지독한 비행기 멀미를 마치고 태국의 쑤완나폼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떠나온 지 하루도 안돼서 집 생각이 간절히 났다. (비록 2시간뿐이었지만) 시간이 달라졌고 언어가 달라졌으며 사람들의 생김새도 달라졌다. 출국장에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지만 당연히 나를 맞이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정말 이제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외로운 여행자가 된 것이다. 배낭은 금세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고 불안감은 눈물을 핑 돌게 했으며, 멀미는 머리까지 핑 돌게 했다. 결국 나는 공항 의자에 힘없이 널브러져 ‘낯섦’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실감해야만 했다.
공황상태로 공항에 널브러져있는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됐을 쯤, 벌써부터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운을 내서 가이드북을 펼쳐들고 첫 번째 목적지인 카오산 로드에 가기 위해 짧은 영어로 버스표를 구매했다. 그런데 버스표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나와 판매 직원 사이에서 거스름돈에 관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후에 숙소로 돌아와서 가계부를 작성하던 중 나는 돈이 비는 것을 발견했다. 오로지 버스표 사는 데만 돈을 썼기 때문에 그제야 나는 내가 버스표를 팔던 직원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아무래도 직원은 태국화폐에 익숙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고 사기를 친 것 같았다. 그 나라에 처음 도착하는 곳이 공항인 만큼 공항은 그 나라의 얼굴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믿었던 공항에서부터 사기를 당하고 나니 너무 울적했다. 그 곳은 미지의 땅이었고, 온통 나를 고립시키는 요소로만 가득 찬 것 같았는데 그 날의 나에겐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낼 힘도 여유도 없었다. 한참 만에 한인업소에 도착해 한국인들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이란. 익숙한 모든 것이 싫어 떠나온 여행에서 낯익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행자들의 메카, 카오산 로드
태국의 카오산 로드는 내가 태국으로의 여행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여행서적 <on the road: 카오산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고 나는 카오산 로드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는 차크라퐁 로드에서 타니오 로드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약 300m 정도의 골목길을 말한다. 거리 곳곳에 게스트 하우스, 레스토랑, 옷가게, 타투 가게, 선술집, 노점상 등 없는 게 없어 여행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접한 카오산 로드는 내가 꿈꿔왔던 것과 약간의 괴리가 있었다. 시끄럽고 매우 번잡했으며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고양이만한 쥐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특히나 뚝뚝기사들의 호객행위와 뻔뻔하게 제시하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는 정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1
게다가 교통질서도 엉망이었다(태국은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무의미했다. 길은 무조건 알아서 눈치껏 건너면 된다). 이런 카오산 로드는 굉장히 새롭고도 낯선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런 충격도 하루 이틀이 지나자 잠잠해졌고, 곧 카오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카오산은 자유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음식을 먹어도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는 곳. 밤이 되면 맥주병 하나를 손에 쥐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곳. 카오산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정은 밤이 늦도록 꺼질 줄을 몰랐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카오산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카오산의 자유스러움이 문득 문득 그리워진다. 카오산의 색색의 조명들도, 북적대던 분위기도, 훅훅 끼치던 더운 바람도. 언젠가 다시 카오산 로드를 누빌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머지않을 그날을 기약해 본다.
‘북부의 장미’로 칭송받는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고산족 트레킹을 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각광받고 있다. 치앙마이에선 트레킹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오직 트레킹을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나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트레킹에 참가했다. 나는 여행하는 한 달 동안 한국에서 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했었다. 스노클링, 카약킹, 오토바이 운전(필자는 면허가 없다), 다이빙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경험 중 단연 최고는 치앙마이의 트레킹이었다. 치앙마이의 1박2일 트레킹은 최고로 힘들었고 최고로 열악한 환경이었으며, 최고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자랑했다. 또한 최고로 많은 벌레에게 물리게 해 준 곳이었다. 사실 나는 체력장에선 늘 상위에 머물렀었기 때문에 체력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리쬐는 햇빛과 습한 공기 속에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도 아프긴 했지만 무엇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져 힘들다는 불평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앞사람만 따라 올라갔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며 감탄할 겨를조차 없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트레킹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산을 오르기를 몇 차례. 저녁쯤 도착한 방갈로는 다시 한 번 나를 경악케 했다. 나뭇잎을 얼기설기 얽어 만든 지붕은 비가 오면 그대로 안으로 비가 들이닥칠 것 같았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벽과 바닥은 안에서 밖이 다 보였으며, 그마저도 오래돼서 걸을 때마다 바닥이 내려앉았다. 이불은 습기 때문에 눅눅하고 냄새가 났다. 3
물은 메콩강물을 끌어올리는지 손바닥에 물을 받으니 모래와 나뭇잎이 보이는 흙빛 물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열악한 상황을 감수하고 온 것은 나니까. 내가 선택한 여행이었고, 내가 원해서 온 트레킹이니까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방갈로 안의 개미떼들과 모기들은 나를 참을 수 없게 했다. 왜냐하면 그날 나는 방갈로에서 불개미 한 마리에게 물리고 말았는데, 물린 곳이 얼마나 아려오던지 마치 벌에 쏘인 것 같았다. 손가락이 푸르뎅뎅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하면서 욱신욱신 거려왔다. 밤새 개미들에게 물어뜯기면 어쩌나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행하던 언니가 살충제를 가지고 있어서 개미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었지만 모기를 피할 수는 없었는지 트레킹 이후 내 다리는 피부병을 앓는 사람마냥 변해있었다. 하지만 이 힘든 기억만 가득했던 트레킹이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밤하늘 때문이었다. 그 곳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고산지대였기 때문에 촛불을 켜서 생활해야 했다. 때문에 초저녁부터 주변에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은 별들이 정말 쏟아질듯이 흩뿌려져 있었다. 밤하늘에 그렇게 별이 많이 떠있는 것을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아,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선명히 보이는 곳. 문명의 혜택이 닿지는 않지만 최대의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 밤하늘을 빼곡히 채운 별들의 장관에 절로 탄성이 나왔고 곳곳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운치를 더했다. 사진에 그 황홀할 정도의 아름다운 광경을 담고 싶었지만 카메라엔 별이 단 한 개도 잡히지 않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직접 두 눈으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경이리라. 나는 여행을 통해 이런 경이로운 순간들과 조우할 수 있음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사람, 그리고 만남과 헤어짐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지만 외로워지고 싶기도 했다. 여행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들을 변모시켰고, 여행지에서의 나는 풍요로운 마음으로 한결 너그러워져 있었다. 나는 여행길에서 스치며 만났던 사람들의 친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인연이 되어 만난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소중한 인연이 됐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내 손으로 밀어냈는지도 모른다. 사실 홀로 떠난 여행에서 사람을 온전히 신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 사람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 있는데, 외국인과는 말도 잘 안 통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의심부터 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처음 사귄 프랑스 친구 피엣이 생각난다. 피엣을 만났을 당시는 내가 여행을 시작한지 겨우 5일밖에 안 되던 때여서 처음 다가온 외국인이 반가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혼자라는 사실에 겁이 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피엣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피엣의 순수한 호의를 곡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바다에서 피엣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전날 그를 닫힌 마음으로 대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피엣을 바다에서의 짧은 조우 이후로 만나지 못한 채 방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행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데, 나는 그 기회를 내 스스로 놓쳐버린 것이다. 비단 피엣뿐만은 아니었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같이 했던 독일인 마르크스와도 급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또한 태국 국경 치앙콩에서 만난 일본인은 여러 다른 지역에서 계속 우연히 마주쳤고 대화도 몇 번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그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난 그렇게 또 한 번의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또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땐 사람들과의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리라.
비록 처음 출발은 홀로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난 늘 혼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가 돼서 돌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약 열흘 가량 한국인들과 동행했었는데 다른 이들과 발맞추어 걷던 그 길들은 든든하고 편안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실로 행복한 일이었다. 또한 동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비록 길에서, 보트 안에서, 버스정류장에서 10분 정도 나눈 대화였을지라도 나에겐 귀한 경험이었고 행복한 추억들이었다. 여행을 통해 나는 ‘사람’과 ‘인연’에 대한 값진 교훈을 얻어온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여행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이란
여자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주변의 우려를 한 몸에 받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든, 남자든 혼자라는 것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니까. 특히 여자는 위험에 노출될 일이 많기 때문에 여행지에서의 긴장과 경계는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나도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번 위협적인 일을 겪곤 했는데, 그 일들 중의 대부분은 낯선 남자의 치근거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은 ‘혼자’ 라는 것이 주는 이점 때문이다(물론 불편한 점도 많지만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가장 큰 이점은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머물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동행을 하다보면 취향이 달라 가고자하는 도시나 둘러보고 싶은 관광지 등의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가 불편해 지곤 한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면 모든 것을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있어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진다.
또한 홀로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의지해야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을 좀 더 돌아볼 수 있었고, 내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들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혼자 돌아다니다보면 사람이 그리워지게 되는데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귈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이렇듯 여행을 통해 내가 얻는 선물들은 모두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다음 여행의 순간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홀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는 앞으로 나를 이끌어줄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무한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대들도 한 번쯤은 모든 것을 떨쳐두고 무작정 떠나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혼자가 아니라도 좋다. 친구와 함께든, 가족과 함께든, 혹은 낯선 이와의 동행이든 여행은 떠나온 그 순간부터 가치가 있는 거니까. 낯선 곳에서 누리는 자유는 실로 달콤하다. 그대들이 그 달콤함을 꼭 한번 느껴보기를 바라며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나의 여행일기를 마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