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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노동운동은 자존감 지키기 운동53호/W 2010. 6. 11. 16:01
-메이데이는 하나의 기회이다
편집위원 수화
돈이 없다면 학문도 사랑도 그리고 희망도 없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건 국가가 합법적으로 술과 담배를 자유로이 허용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대학생활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캠퍼스의 낭만은 돈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밥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대학생에게 열띤 학문탐구와 자유연애는 사치이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사랑도 하기 힘든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슬픈 대학생, 그리고 20대. 이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우리는 알바를 하는 대학생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학 내내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알바를 한다. 집을 떠나와 자취를 하는 학생이라면 여러 가지 생활비를 알바로 해결하기도 한다. 물론 돈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가며 즐거이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모두 돈을 걱정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갖은 노력들 즉 노동을 한다.
그렇다. 우리는 학생이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자이다. 학생과 노동자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묘하게 중첩된 하나의 주체인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극에 치닫고, 캠퍼스 생활에서도 절대 필수 조건이 돈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더욱 굳건히 존재하는 자아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는 슬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노동운동은 개가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한 몸짓
여러분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에 공감하며 스스로를 위로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학비를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만 하면 지금의 상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자위한 적은 없는가. 이번에는 필자가 들은 어느 학생의 실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한 여학생이 용돈을 벌기 위해 PC방 알바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원래하기로 하였던 용무와는 관계없는 손님들의 담배 심부름 등을 요구하였다. 여학생은 손님과 주인에게 이런 것은 원래 얘기했던 것에서 벗어나는 용무이니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고 한다. 괜히 이런 말들을 했다가 주인이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PC방의 손님이 여학생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등 집적거리는 일이 생겼다. 여학생은 당황하여 이를 주인에게 말하였으나 주인은 그래도 손님이니 웃으며 상냥하게 정도 것 하라고 했다고 한다. 여학생은 그 정도 것의 정도를 몰라 어쩔 줄 몰라했고, 그 일 이후 결국 그 학생은 PC방 알바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러분도 이 여학생과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단기적으로 하는 알바이니 언제 그만두어도 상관없고 또 다른 알바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는 경험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참을성이 한계를 드러낸다면 어떡할 것인가? 옮기고 옮긴 알바는 늘 힘들고 고되며, 여러분의 참을성 이면에 숨은 불합리가 가득 차 있다면? 개처럼 일하는 오늘을 외면하며 정승과 같이 쓸 내일을 꿈꾸는 그 알량한 희망의 약발이 닳는 그 날엔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이 버는 그 알바 비용은 결코 여러분의 참을성의 대가가 아니다. 여러분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얻는 정당한 임금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노동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요구가 바로 노동운동이다.
자존감에서 운동은 시작된다.
노동운동을 얘기하면 우리는 흔히 머리에 띠를 두른 채 투쟁을 외치고 단식 농성을 하는 장면 등이 떠오른다. 물론 그러한 방식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은 우리에게 우리의 일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분명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본인의 노동 현실을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또한 자각하며 요구하는 이 모든 행위는 노동운동의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시작은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들은 노동운동의 첫 걸음을 떼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라는 단어에서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와 파업을 하는 노조들만을 떠올리기가 십상이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존재해 온 노동운동의 행태는 더욱이 우리도 노동자이며 노동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주춤거리게 한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운동이 그렇듯 노동운동 또한 당사자 운동이 되어야 한다. 머리에 띠를 두른 채 투쟁을 외치는 강성 노조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운동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그 운동을 지지할 순 있어도 지지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다. 더욱이 대학생활 내내 앞날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조급한 대학생들이 본인의 일도 아닌 다른 노동자들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이들의 무관심에 대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욕하며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앞날에 대한 깜깜함으로 불안한 이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슬프게도 별 호소력이 없다. 그것은 이들의 탓도 아니고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운동의 탓도 아니다. 굳이 그 잘잘못을 따지자면 일하면 일할수록 불안해져버려 주위의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잔혹함에 그 책임이 있으리라.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운동, 즉 당사자 운동을 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온전히 인식해야만 된다. 그것은 대학 졸업 뒤 취업을 하면 ‘예비’ 노동자가 된다고 외치는 목소리와는 차이를 가진다. 이는 불확실하며 알 수 없는 내일이 아닌,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으레 관심 가져야 할 다른 노동자들의 처지도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 자신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거창한 대의명분에 휩싸인 오늘날의 노동운동에 공감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의미의 노동운동의 첫 발걸음이기도 하다.
인디 메이데이, 그 속에서 발견한 가능성 그리고 희망
속칭 88만원 세대라 불리우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움직임은 요 근래 그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 두각이 단적으로 나타난 예로서 작년에 처음 개최된 인디 메이데이를 들 수 있다. 인디 메이데이는 5월 1일 메이데이
1886년 5월 1일, 미국노동총연맹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한 것을 기념하는 데서부터 유래되어 매년 5월 1일에 전 세계 노동자가 파업과 집회, 시위를 통해 국제적 단결과 혁명적 역량을 과시하는 노동자 투쟁의 날이며 축제의 날이다. (노동절)날 홍대 앞 거리에서 희망청(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희망청은 함께일하는재단과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이 함께 만든 비영리단체(NPO)로서 청년+일+희망을 키워드로 20대가 모여 청년들의 건강한 사회적 데뷔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의 주도로 ‘일하지 않는 자들의 메이데이’라는 타이틀로 이루어진 행사이다. 인디 메이데이의 프로그램은 크게 일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참여전시, ‘20대의 일이거나 일이 아닌’ 음악을 매개로 하는 공연 및 퍼레이드, 그리고 ‘지금 청년의 일을 논하다’라는 주제 하에 이루어진 포럼, 세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세지는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라는 노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이 날의 인디 메이데이는 오늘날 젊은 층의 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당사자 운동이 하나의 운동으로 중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날 홍대 앞 거리에 모인 젊은이에게 직접적으로 물은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없다’, ‘지긋지긋’이라는 구직단념자의 대답에서부터 ‘일 좀 주세요’, ‘뭐든 하고 싶다’라는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답들 그리고 ‘아트다’, ‘놀이 Play’, ‘Fun&Learing' 등 일을 일의 영역을 넘어선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생한 대답이었다.
이날의 행사는 거대 노총의 지위 아래 거대 담론을 외치는 여느 노동절 행사와는 달랐다. 노동에 관한 거창한 대의명분과 피부로 와닿지 않는 노동자의 계급의식 따위가 아닌 우리 사회에 외롭게 서있는 젊은 노동자들 그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행사였다. 이는 노동운동이 진정한 당사자 운동으로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의 맹아이기도 하였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니 즐거운 운동!
매년 5월 1일 수많은 단위에서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이 날은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다시 한번 외치는 자리임과 동시에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축하하고 기념하여 즐기는 축제이다. 그리고 축제는 그 주인공들이 즐거워야 함이 당연하다. 인상 쓰고 심각해야만 운동의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의 자각에서 시작되어 당사자들이 즐겁고 흥나는 운동, 그것이 오늘날 침체되있는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다.
그렇다면 2010년 대학에 다니고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은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매년 돌아오는 메이데이는 노동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일 것이다. 친구들과 알바를 하며 겪었던 불합리했던 상황들을 공유하며 이야기해보는 것, 그래서 알바를 하며 실질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노동법에 대해 같이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 더 나아가 평소 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 등을 전시하는 소규모의 전시전을 기획하는 등 그 방법론적인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움직임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혼자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노동운동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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